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a Mar 12. 2021

감동, 따스함 그리고 고단함이 뒤섞인 이민자의 삶.

영화 「미나리」



잔잔한 감동과 따스함, 현실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고단함이 뒤섞인 이민자의 삶을 엿보다.




각종 상을 휩쓸며 「기생충」 다음으로 크게 주목을 받은 만큼 그 기대가 컸다. 비록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 이민자들의 내용을 담고 있고, 감독과 배우들이 한국계 미국인인 만큼 애정이 갔다. 반면 한국계지만 엄연히 국적은 미국인인 감독과 배우들, 미국인 스태프들, 제작사도 미국 기업인 이 미국 영화가 (심지어 브래드 피트 제작인데), 한국어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에는 화가 났다. (이는 명백하게 골든 글로브가 백인들의 축제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며, 크게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이라 생각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카데미 본선 노미네이트에 기대를 걸어 본다.


미국 영화임에도 한국인의 이야기를 담았고, 한국어로 이루어졌기에, 내꺼인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느낌이 드는 동시에 한국의 많은 것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므로, 응원한다.




[실제 이야기]


이 영화는 정이삭 감독의 부모님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이민 첫 세대의 정착기를 그대로 담으려 했다는 감독의 노력은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민자들이 외곽으로 빠져야 했던 이유와 그들이 해야 했던 노동, '빅~~가든'을 만들기 위한 시도와 그를 통해 낯선 땅에 뿌리내려 정착하고자 하는 소망, 종교 활동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들 (그게 영적인 부분이든 개인적인 부분이든), 이민 1세대 부부가 겪었던 갈등과 그 험난함을 지나가기 위한 싸움들, 아이들이 겪었을 혼란, 3대가 이국 땅에 모인 이야기까지. 무엇 하나 빠뜨리지 않고 섬세하게 담아냈다.


S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를 보았다. 기획사에서 반기지 않아 처음에는 제대로 된 지원조차 하지 않겠다고 했던 이 영화에, 윤여정 배우가 사비를 들여 나이 든 몸을 이끌고 오랜 비행을 하면서까지 'Nobody'가 되길 자처한 이유는 단 한 가지,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덧붙인 말은 "그래 Isaac, 너의 이야기면 됐다.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였다.


스티븐 연 배우의 인터뷰 또한 찾아보았다. 대본을 읽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꼭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처음 영화를 찍는 순간부터 영화를 마무리할 때까지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고도 했다. 백인들의 땅에서 유색인종으로 살아가야 했을 설움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짐작으로나마 공감할 수 있고, 영화 「미나리」에서 그의 연기를 보면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사람 냄새 풍기는 담은 이 이야기가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는 것을 보면 국가와 문화가 달라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비슷한 것 아닐까. 정이삭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는 사람들 간의 연대를 만든다.



진정성, 이것이 영화 「미나리」가 가진 힘이다.




[미장셴]


자연은 푸르고 따스하며, 인간의 건물은 어둡고 스산하다. 푸르른 여름의 잔디와 녹음, 맑은 물이 흐르는 숲 속 작은 공간과 그를 둘러싼 나무들, 제이콥이 가꾼 한국 채소로 가득한 밭과 순자가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물가에 심어 놓은 푸르른 미나리밭. 그와 비교되는 어둑한 집과 병원과 교회, 토네이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한껏 움츠러들어야 하는 바퀴 달린 집, 차가운 빛이 감도는 건물 내부. 영화를 보는 동안 자연의 따스함에 취해 있다 냉철한 현실로 소환되는 일을 반복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의 손길이 닿는 곳들 중 따스한 부분이 많다. 불안전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집의 겉모습과는 달리 깔끔하고 정갈하게 꾸민 집 내부, 당시의 패션 센스가 돋보이는 모니카의 의상들과 귀여운 데이빗의 부츠, 먹음직스럽게 차려진 교회 음식들,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익은 밭의 채소들.


많은 장면들 중 미장셴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역시 헛간이 불타오르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은 잔잔한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강렬한 인상을 주며, 동시에 긴 여운을 남긴다. 헛간 전체를 집어삼키며 타오르는 거센 불길을 보며 가슴 철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허망하게 타오르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성립 가능한 이야기일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예쁘게(?) 타오르는 불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실 이 장면 하나가 영화 「미나리」의 미장셴을 대표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섬세한 묘사와 대조를 이루는 장면들, 그리고 영화 전체를 감싸는 따스한 빛의 조화가 미장셴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빛을 영리하게 사용한 것이 가장 뛰어나다.




[배우]


윤여정 배우가 등장하며 영화 「미나리」는 2부를 맞이한다. 그녀가 등장하기만 하면 분위기가 일순 전환된다. 무겁던 분위기가 금세 풀어지고 쿡쿡 웃음이 새어 나온다. 강렬하게 에너지를 쏟아부은 연기가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는 영화를 보는 동안 편안함을 안겨주지만, 큰 감탄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의 진가는 영화가 끝난 후부터 시작된다. 유쾌했던 할머니의 모습과 뇌졸중을 겪고 힘에 겨운 할머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던 그녀가, 힘든 고비를 넘기고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함께 잠들어 있는 딸의 가족을 바라보며 짓는 마지막 표정은, 가히 삶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여정 배우의 연기는 영화 「미나리」가 가진 진정성을 더해주며 그 빛을 발한다.


그녀의 뛰어난 연기와 분위기, 그리고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존재감 자체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지만, 그녀를 잘 몰랐던 외국인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인가 보다.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을 던져주며 「미나리」의 순자였다면 어떻게 말했을지 묻는 질문에 센스 넘치는 대답을 하는 모습과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 불리던데'라는 질문에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내 이름은 윤여정이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라고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노련미와 재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엿보았다. 상을 휩쓴 건 당연한 일인 것을, 어쩌면 한참 늦은 일일지도 모를 텐데.


영화 「미나리」의 온기는 8할이 윤여정 배우 덕분이다.




입을 오물거리며 한국어를 귀여운 앨런 킴은 「미나리」의  다른 주역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편한 6~7살의 데이빗이라는 캐릭터는 그를 연기한 앨런 킴의 실제 이야기와 다름없을 것이며, 그래서 더욱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일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에는 미나리가 뭔지도 몰랐다던 앨런 킴이 한국적인 정서를 폴폴 풍기며 귀여운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을  있었던 이유는 어리지만 배우로서 가진 그의 열정과 영화를 이끄는 감독의 능력이 발휘한 시너지 효과가 아닐까. 아역배우상을 받아 수상소감을 말하던  눈물이 나는데도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앨런 킴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많은 영화에서 만났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이 들었다.





매력적인 마스크의 한예리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일관한다. 가족을 이끌고 시골로 들어와 바퀴 달린 집에 살게 한 제이콥을 원망하다가도, 이내 지지해 주는 모습을 보인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 말할 뿐 실은 본인의 욕심이 투영된 (빅 가든이라 주장하는) 농장만 바라보는 제이콥에게 가족과 농장 중 택하라고, 앞날이 뻔히 보이는데 이제 지쳤다고 눈물짓는 장면에서 감정을 꾹꾹 눌어 담되 폭발시키지 않음으로써 무게를 담아낸 연기가 인상 깊다. 위태롭고 짜증이 많으며 영화 내내 웃는 장면을 찾아보기 힘든 모니카라는 캐릭터가 밉지 않게, 오히려 정감 가게 느껴진 이유는 한예리 배우의 연기 덕분이다.



가부장적인 제이콥 캐릭터를 소화해낸 스티븐 연의 연기도 기대만큼 좋았다. 무엇보다 스티븐 연의 한국어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 감탄할만했으며 (물론 성인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인이라는 설정에 비해 한국어가 어색한 부분이 꽤 있었지만 전작 「버닝」에서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이 인상 깊다.), 이민자 제이콥에 따른 한국식 영어 발음을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덧붙여, 다른 캐릭터에 비해 비중이 적다고 여겨지는 딸 앤은 영화 「원더」의 비아를 떠오르게 한다. 아픈 동생이 가족의 중심이 될 때 느껴지는 소외감이 캐릭터의 비중으로 표현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나리]


아무렇게나 심어도 잘 자라는 미나리.


영화를 보고 나니 그제야 제목에 담긴 의미가 조금 이해된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이민을 결심한 많은 이들의 바람, 미나리처럼 낯선 땅에서도 자리를 잡고 잘 자라나길 소망하는 마음이 담긴 뜻깊은 제목이다.


머리를 쓴다고 자부했지만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는 제이콥, 뛰어노는 것이 당연한 어린이임에도 달리면 안 되는 데이빗, 남편을 따라 시골로 내려왔지만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니카, 그 사이의 앤, 딸 내외를 돕기 위해 바다 건너 낯선 땅으로 먼 길을 떠나온 순자.


이 가족이 뿌리내리길 기도해본다.




[온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는 장면이 많다.


"딩동 브로큰, 브로큰 딩동", 산에서 내려온 이슬물, "아빠는 빅~~가든을 만들 거야", 지랄~ 염병~을 외쳐가며 신나게 화투를 치는 순자와 나중에 그걸 따라 하는 데이빗, 혼나려고 회초리를 가지고 내려오다가 넘어져서 부러뜨린 회초리를 가져오는 데이빗, 대체할 회초리를 찾아오라고 하자 강아지풀을 가져오는 데이빗, '스트롱 보이'라는 칭찬을 듣고 뿌듯해하며 기뻐하는 데이빗의 귀여운 표정과 그런 칭찬을 처음 들었음을 눈치채는 할무니, "할머니 피피는 무슨 맛이야?" (특히 이 대사를 할 때 웃음을 참으려고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말하다 결국 웃음이 새어버리는 앨런 김이 너무나도 귀엽다)


가족들의 삶을 따라가며 감정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 온기가 남는다.


애초에 영화  「미나리」에 대한 리뷰는 길게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영화 자체가 따스한 온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분명 전쟁 그다음 세대가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일생일대의 결심을 하고 낯선 땅의 바닥에서부터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의 수많은 벽들을 깨부수며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는, 당시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낸 리얼리티 영화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온기만이 남는다.  온기를 많이 이들이 느꼈고  여운이 길게 남았기에  영화가 높이 평가되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이들이 이 온기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철'보다 차갑고 단단한 세상과 '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