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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a Oct 27. 2021

꿈을 향한 아름다운 비상

영화 「코다」그리고 「미라클 벨리에」



CODA (Child Of Deaf Adults)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




코다.


청각 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러한 용어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작년에 개봉한 '나는 보리' 덕분에 개념 자체가 낯설지는 않았다.


가족 모두가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는데, 혼자만 귀가 들리고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물론 장애를 가진 다른 가족들이 더욱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고 보아야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가족들의 의사소통을 책임지고, 부모를 대변하는 일은 많은 인내와 책임감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 「나는 보리」에서는 보리가 아직 어리기에 이러한 책임감과 부담감에 대한 이야기보다, 수어를 통해서만 대화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 귀가 들리는 보리가 느끼는 은근한 소외감을 다룬다. 보리는 '차라리 나도 귀가 안 들렸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연기까지 한다.


영화 「코다」와 「미라클 벨리에」는 사춘기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만큼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과 꿈, 그리고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루비와 벨리에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서로 다른 세 명의 코다는, 그들의 존재조차 몰랐던 다른 이들에게 알려준다. 여기, 이런 삶도 있다고.





노래.


코다의 루비 그리고 벨리에가 가족들은 들을 수 없는 노래를 꿈으로 가지는 것은 곧 가족과 꿈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뜻과 같다. 노래가 들리기 만무한 가족들의 지지나 공감을 얻기 힘든 상황에서, 꿈을 위해서는 그동안 짊어지고 있던 책임감을 벗어던져야 하는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생활이 함께 걸려 있는 문제기에 더욱 쉽지 않다.


본인의 꿈을 포기하고 가족의 곁에 남기로 한 어린 소녀에게 철없는 엄마가 보이는 순진한 웃음은 엄청난 무게로 코다를 짓눌렀을 것이다. 사실은 태어났을 때 너도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길 바랐다는, 너의 귀가 들린다고 했을 때 앞이 캄캄했다는 엄마의 말은 날카로운 잔인함으로 마음에 상처를 냈을 것이다. (물론 귀가 들리지 않는 자신에게서 태어난 건청인 자녀를 어떻게 키울지 막막했던 엄마의 마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본인이 장님이었으면 미술을 했었겠다는 엄마의 비난을 듣는 벨리에를 보는 것은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다. 코다인 루비와 벨리에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가족들이 느낄 불안함과 당혹스러움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독립심을 키우고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기에, 가족들이 코다에게 의지하는 정도가 무척 심각하며, 그 부담감과 무게는 어린 코다에게 모두 지워지는 것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래한다. 자신이 잘하고 원하는 것, 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노래를 들을 수 없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르게 된 오디션에서 루비와 벨리에가 수어를 하며 노래하는 장면은 단연코 두 영화의 명장면이다.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각각의 장면에서 결이 다른 감정으로 눈물이 흘렀다.


또한 딸의 꿈을 응원하고 싶은데,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아빠가 진동을 통해 딸의 목소리와 노래를 느끼는 장면은 큰 감동을 준다.




둘의 노래는 조금 다르다.


「코다」의 루비는 설명과 소개의 노래를 한다. 가족들에게 항상 해왔던 것처럼 애정을 담아 사랑스럽게 노래를 설명한다. 그 눈빛과 손짓과 표정에 담겨 있는 가족을 향한 루비의 따스한 마음이 가득 느껴져 눈물이 흐른다.

 


 「미라클 벨리에」의 벨리에는 성장과 통보의 노래를 한다. ‘비상’을 통해 자신의 날아오름을 말한다. 벨리에의 비상은 꿈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장애 가족의 보호자 역할에서 떠난다는 뜻 또한 담고 있어, 모두의 가슴을 울린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서, 품 안의 자식이라 생각하는 부모에게 자신의 꿈과 열망을 말하며 앞으로의 각오를 전하는 모습이 더욱 울컥하게 만든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자녀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고, 아직 부모는 못되어 온전히 그 마음을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나이를 좀 먹다 보니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짠한 마음 또한 어느 정도 와닿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벨리에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가사 덕분에, 노래의 분위기 때문에, 날개와 날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하는 수어 때문에, 이 장면은 볼 때마다 매번 눈물이 흐른다. 벨리에의 ‘비상’은 오래도록 귓가에 울리고 머릿속에 남아 마음을 따스히 적신다.


생각해 보니, 2년 전 겨울, 친구와 둘이 와인을 마시며 ‘방구석 1열’ 「미라클 벨리에」 편을 본 적이 있다. 보지 않은 영화를 다룬 편은 잘 보지 않는데, 그냥 보고 있다가 엉엉 울었더랬다. 신나게 수다를 떨며 티브이를 보다 어느 순간 둘 다 말이 없어져 버렸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서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본 것도 아닌데 울고 있는 서로의 모습이 민망해서 깔깔 웃었다. 그 영화를 이제야 보았다.





장애.


비장애인 사이에서 편견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많은 의미가 담긴 눈길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는 삶.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기 편한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 듯하다. ‘평범’이라는 굴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호기심과 불편의 눈길이 쏟아진다. 그 어떤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겠으나, 나 또한 가끔 쳐다보게 되니 눈길을 거두기가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이 영화는 말한다. 장애를 가진 것이 ‘평범’과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 속에 속한다는 것을. 그들도 꿈과 삶이 있음을.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것을.


다만, 삶을 사는 데 있어 조금의 다름이 있고, 그 다름을 위해 조금의 노력이 필요하며, 그 한가운데 ‘코다’가 있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일부 장애를 가진 이들이 가지는 과도한 의지, 피해 의식 또는 모두가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을 위해 양보해야 한다는 이상한 대우 의식이다.


일종의 불편함을 가진 이들의 편의를 위한 제도들과 다른 이들의 배려가 있기 마련이나, 독립된 개체로서 공정한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 일원이 되기 위해, 독립된 삶을 위해 그 자신 또한 애쓸 필요가 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의무가 있다.  그 어떤 누군가에게 짐으로 남지 않아야 한다. 그게 가족이든 코다이든 이웃이든 친구든.




응원해, 코다.



덧,「코다」는 진짜 청각 장애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덧,「코다」와 「미라클 벨리에」는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코다」는 조금 더 대중적이고 밝은 청춘 로맨스 느낌이고, 「미라클 벨리에」는 무겁고 차분하고 진중한 느낌이다. 할리우드와 프랑스 영화의 전형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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