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Quo vadis?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 요한복음 16:5
지친 듯 혹은 모든 것을 잃은 듯 넋을 놓은 가족이 비친다.
이내 전쟁이 발발하고 아빠와 아들 둘은 짐을 싼다. UN 캠프에 도착하자 통역사로 일하는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 가족만 들여보내 달라 애원하지만 형평성 문제의 이유로 거절당한다. 한낱 차단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산가족이 된다.
UN 중립지역도 UN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니 안전지대가 되지 못한다. 세르비아군은 진격해오며 보스니아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아이다는 가족들을 주민 대표로 보내보고, 트럭에도 숨겨 보고, UN 사무실에도 숨겨 보지만, 소용없다. 세르비아의 믈라디치 장군은 결국 UN 베이스까지 진격해왔고, 보스니아인들을 보스니아군이 점령한 지역까지 버스로 이동시켜줄 것을 약속한다.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들과는 다른 버스에 태워진다. 남자들은 버스에 탑승하기 전 몸수색을 당한다. UN 군과 함께 떠나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버스에 타려는 아이다를 제자였던 세르비아 군인이 온 힘을 다해 말린다. 그리고 스레브니차 대학살이 발생한다.
전쟁.
이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과 대규모 학살을 ‘아이다’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다.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뿔뿔이 흩어지고 학살당했는지 아이다의 가족을 통해 보여준다. 전쟁으로 인해 죽어 간 무고한 시민들,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적극 지원을 결정하지 못한 UN(United Nations;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 같은 국가에 속해있음에도 민족주의를 핑계로 내전을 일으킨 세르비아군, 현재까지도 스레브니차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일부 세르비아인들.
이기적인 서로가 모여 비극적인 결말을 낳았다.
“전쟁에 승자는 없다. 다만 과부만이 있을 뿐이다.”
영화 ‘Arrivl’ (한국 제목 ‘컨택트’)의 대사 중 하나다. 짧지만 강력한 충격을 준다. 전쟁을 일으킨, 아직도 일으키고 있는, 앞으로 일으킬 예정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전쟁을 일으킨 대가는 결국 자신들(혹은 너의 자손들)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라고.
절제.
영화는 전쟁의 참혹함을 절제된 화면과 소리로 전달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함을 유지한다. 외침과 갈등, 총소리 등이 등장하지만, 자극적이거나 과하지 않고 적정선을 지킨다. 빨간색보다 황량한 갈색과 무미건조한 회색이 영화를 지배한다. 보여주지 않고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전달하는 전쟁과 학살의 잔인함과 부도덕함은 오히려 배가 된다.
폭력의 전시로 인간의 존엄성까지 무너뜨린 영화들을 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를 보여주며 적나라하게 널브러진 시체와 사방으로 튀는 피 같은 폭력들을 전시하지 않고도 충분히 그 잔인함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피해자와 희생자들에 대한 배려와 위로를 전달하는 고결한 태도를 알려주고 싶다.
감정을 절제하며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던 아이다가 가족들의 유골 앞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아가…’라는 짧은 한마디가 울려 퍼지던 순간,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은 아이다와 함께 무너진다. 부모에게 자식은, 그 자식이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되어도, 심지어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아가라는 말이 참인가 보다.
답답함.
영화를 고요하게 관람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함이 마음속에 존재했다. 아이다를 제외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이다와는 달리, 자신감 없고 나약한 모습만을 보이는 남편, 끝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첫째 아들, 도와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UN 본부, 안전지역인 UN 캠프 안으로 들어오려 애쓰는 보스니아 주민들,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빵을 뿌리고 버스로 이동시켜주겠다며 현혹하는 믈라디치 장군과 세르비아인인 그 부하들, 비어 있던 아이다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가 아이다가 찾아와 집을 비우라고 하자 ‘위험하지 않겠냐’고 되묻던 세르비아인 여자, 아무런 저항 없이 죽임을 당한 보스니아 남자들.
마음이 무겁다 못해 슬펐다. 같은 나라의 국민으로 지내던 이들이 민족과 뿌리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전쟁을 일으키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와 북한이 겹쳐 보였다. 남한과 북한은 심지어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치른 뒤 다른 나라가 되어 버렸다. 수많은 학살이 있었을 테고, 많은 양의 피와 눈물을 건너 휴전과 종전을 맞이했지만, 껄끄럽고 어색한 이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들, 평소에는 먼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하며 눈과 귀에 담아 보지도 않았던, 희생되어가는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 본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았을 텐데, 어떤 운 때문에 전쟁의 희생자가 되어야 했던 걸까.
시대를 조금만 다르게 타고났다면, 혹은 태어난 장소가 달랐다면, 충분히 ‘내’가 될 수도 있었던 그들을 마음속 깊이 위로하며, 그들에게 안도와 평안이 찾아들었길 기도한다.
+ 엔딩 크레딧에 네모칸 되어 있는 이름들,
혹여 학살 희생자들인 것일까 하는 의문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아시는 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