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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작가 Oct 28. 2020

소리의 인식

없는 차원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이유 없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평소에 자주 듣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면 음악이 꺼지는 취침 타이머를 맞춘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잠에서 덜 깬 채로 몽롱한 상태에서 가만히 음악이 들려왔다. 듣다 보니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깜빡한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늘 내게 새로움을 준다.) 그날은 무엇보다 박자 감각의 이상이 느껴졌는데 특정 부분에서 평소에는 엇박인 부분이 그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정박으로 느껴졌다. 무의식 중에 내가 박자를 타는 시점이 원래보다 반 템포가 밀린 것이다. 


나는 분명 예전과 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예전에 듣던 그 음악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즐겨 듣던 바로 그 음악이라는 건 인식할 수 있었지만 무언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정박으로 박자를 타니 너무나 지루했고 한편으로는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평소보다 딱 반 템포 밀려서 인식한 것일 뿐인데 이토록 다른 음악이 되다니. 나는 본래대로 박자를 타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멍한 상태여서 그런지 잘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 음악을 더 듣고 싶지 않아 볼륨을 꺼버렸다. 하지만 일시정지를 누르지는 않았기에 소리를 내지 않은 채로 여전히 음악은 재생되고 있었을 것이다.



10년 전 수술실에서 마취가 되는 과정 중에, 나는 소리와 관련된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경험을 했다. 나는 수술대에 누워있었고 일정하게 진동하던 바이탈 기계음 소리가 어느 순간 점점 멀어져 가는 사이렌 소리처럼 길게 늘어지더니 어느새 희미해져 갔다.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오직 나에게만 볼륨이 꺼져버린 것이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사실 그 몇 초 동안에도 바이탈 소리는 일정하게 울렸겠지만, 나는 분명히 박자의 뭉개짐을 인식했고 이내 소리는 한 점이 되어 나에겐 없는 차원이 되었다.


결국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한다면 내게는 없는 차원이 되는 걸까. 음악의 박자, 바이탈의 기계음 소리, 그 어떤 떨림과 울림도. 그렇다면 다른 누구도 대신 일깨워 줄 수 없으리라.


스스로 박자를 되찾고, 바이탈의 소리를 듣는 수밖에.

⠀⠀⠀⠀⠀⠀⠀

나는 아침에 일어나 그 음악을 다시 켜고 전과 다른 기분으로 박자를 탔다. 아마 10년 전의 나 또한 마취에서 깨어나며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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