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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l 09. 2024

괜찮다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9

만 24개월 전후의 시기인 한국 나이 세 살의 3월. 당시에는 그때 어린이집 첫 입학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게 대부분 엄마들의 생각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나는 주변에 아직 어린듯하여 더 데리고 있고 싶다고 말하면 '저 엄마는 좀 유난스러운 것 같아.'라는 걱정 어린 시선을 받았다.

"아니, 왜 아직도 데리고 있어? 그러다 나중에 후회해! 좋은 어린이집은 대기가 길어서 빨리 입소 신청 해놔야 하는데 서둘러!"

"엄마도 쉬는 시간이 있어야지. 그래야 스트레스 안 받고 아이에게 더 잘 챙겨줄 수 있어. 그리고 아이도 자꾸 떨어져 봐야지 언제까지 끼고만 있을 순 없잖아. 친구들과도 지내봐야 사회성이 늘어."

다 맞는 말 같았다. 내가 아이를 더 예민해지도록 키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더 빨리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실 바쁜 남편을 뒤로하고 홀로 아이를 보는 일이 힘들기도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음먹은 그때의 결정. 아직 태어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일이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이다.

엄마 껌딱지인 내 아들은 그 시기에도 공갈젖꼭지를 하고 엄마가 조금만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했다. 아기 상어와 뽀로로의 도움을 빌려도 절대 떨어지지 않아 아이를 안고 화장실 볼일까지 봐야 했다. 돌이켜보니 너무나 아기였고 당연한 일인데 그땐 뭐가 그렇게 조급했을까?


처음 입학한 어린이집은 밥이 잘 나오고 오래된, 동네에서 좋다고 소문난 어린이집이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환경이었다는 걸 사건이 일어난 후 알게 되었다.

교실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한 교실에 두 반이 있는 구조였다. 그 교실에서 10명의 아이들이 노는데, 혹시 한 아이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한 선생님이 9명의 아이를 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예뻐 잘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엄마와 헤어질 때는 원래 다들 운다며 눈물 젖은 한 달을 보냈다. 공갈젖꼭지는 떼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억지로 뗐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는 고통스러운 헤어짐을 겪었고 나 또한 보내고 다시 데려올 때까지 전전긍긍하며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래도 가서는 잘 놀겠지라고 걱정을 뒤로한 채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어 연락이 올까 휴대전화만 바라보며 지냈다.


두 달 정도 지났을까.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얼굴에 밴드가 붙여져있었다. 담임 선생님께선 놀다가 장난감에 긁혔다고 했다. 놀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 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순간 담임 선생님이 원장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밴드를 떼니 이건 누가 봐도 손톱자국이었다. 상처도 심했다. 어린이집에선 나중에 씨씨티비를 돌려보니 친구가 손톱으로 할퀴었고, 우리 아이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께선 미처 보지 못했다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어린이집에 화가 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미운 마음이 컸다.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난 왜 이것밖에 안 되는 엄마일까? 남들의 말에 휘둘리고 나 잠깐 편하자고 아이를 힘들게 하고 몸과 마음의 상처까지 만들어준 못난 엄마라며 끝없이 자책했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에 가슴이 시렸다.


그날로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놀이터를 갔다. 오전에는 아이들이 많지 않은 한가한 놀이터.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그네에 앉는 아이의 모습.

'지금은 혼자 올라가기도 힘들어 내가 안아서 올려주어야 하지만 나중엔 서서도 타겠지? 사람마다 저 마다의 속도와 시기가 있으니 우리는 조금 더 같이 놀자.'라고 생각했던 맑은 하늘의 그날.

초등학생이 된 지금도 아이와 함께 잔다. 화장실에 혼자 가기 무섭다고 하면 함께 가준다. 가끔 옷을 입혀달라고 하면 잔소리를 하지만 못 이기는 척 입혀준다. 아이에게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엄마한테 옷 입혀달라고 해?"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서."

딱 여섯 살까지 엄마와 있고 싶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조르던 아들은 이제는 친구들과 놀아야 해 빨리 가자고 아침마다 나와 둘째를 들들 볶는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 계신다. 도서관 봉사 활동에서 만나 종종 이야기를 나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분이라 소중하다.

"아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요. 우리 아이들도 커서까지 같이 잤거든요? 그런데 본인이 마음의 준비가 되니까 어느 날 자연스레 떨어져요. 지금 다 컸는데 저하고는 잘 대화하고, 잘 지내요. 다른 또래 엄마들이 오히려 부러워하고 아이 어떻게 키웠는지 물어봐요. 아이가 유별난 게 아니에요. 또 어머님이 그렇게 키운 것도 아니에요. 자책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대신 아직도 엄마랑 잔다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좋은 소리 못 들으니까 이건 우리끼리만의 비밀로 하자라고 해주세요. 아이가 스트레스받으면 안 되잖아요. 호호"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늘 확인받고 싶었다. 거의 대부분은 조언을 해주었다. 정말 나를 위한 조언인가 싶은 말도 있었지만 그것도 날 위해 하는 말이니 감사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들은 괜찮다는 이 말이 가지고 있는 따뜻한 힘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이 말이 그렇게도 듣고 싶었다.

때로는 걱정 어린 잔소리, 현실을 모른다는 따끔한 말과 섣부른 조언보단

괜찮다는 한 마디,

할 수 있다는 격려,

한 번 더 도전해 보라는 응원과 지지가 더 강력한 위로를 준다는 것을.

가끔 마음이 퍽퍽해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엄마가 타주던 따뜻한 코코아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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