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8
서른 한 살이 된 지금. 사회 초년생이라고 하기엔 많고, 경험 많은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적은 그런 나이.
분명 성인인데 동사무소에서 오는 안내장 하나에도 가슴 떨리는 그런 나이이다.
학창 시절에 그려 본 삼십 대의 내 모습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하나, 둘쯤 낳아 남편과 오순도순 살며 내가 하고 싶은 직업에도 열정적인 모습, 지금 보다 훨씬 살고 싶은 인생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해결해야 하는 업무도 완벽하게 해내고 회사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며 보고서도 뚝딱 작성해 내는, 검은색 정장에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구두를 신은 어른의 모습을 상상했던 그 시절.
지금은 입시로 지치는 지루한 나날이지만 그때가 되면 행복할 거라고. 분명 난 세련된 아내이자 엄마,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그렇지만 적지 않은 삶을 살아 보니 나의 의지와 바람보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훨씬 더 많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았다.
남들 대학 졸업할 시기에 졸업은 고사하고 결혼해 엄마가 될 줄이야. 그렇게 남은 이십 대를 육아로 지새우며 의도하지 않게 경력이 단절된 나의 모습을 십 대 시절에는 누가 미리 알려줘도 믿지 않았을 거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법, 남편의 월급을 관리하는 법, 출생신고, 지원금 신청, 갑자기 새벽에 열이 오른 아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콩나물 무치는 법,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 보험 가입, 어린이집 입소 신청 하는 법 등.
어른과 엄마로서 해결 해나가야 할 숙제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였다.
그 누구도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오롯이 나 혼자 그리고 부부가 함께해야 할 일이었다.
어른은 저절로 되는 거라고 믿었던 나는 여섯 살에 기역, 니은을 차근차근 배우던 그 시절처럼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도 직접 배워야 한다는 것을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수 있게 된 지 한참 만에야 깨달았다.
어른의 세상은 생각보다 더 치열했다. 앞에선 웃은 채 서로가 알지 못하도록 경쟁하며 살아남아야 한다. 이타심 가득한 세상이 아니었다.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뒤통수 맞고, 또 때리고.
그렇게 현실을 느꼈다. 정이 먼저가 아닌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나와 우리 가족이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한 세상 속에서 힘도 빽도 없는 서민은 누가 정한 지 제대로 알 길이 없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들에게만 더 가혹한 처벌이 있다는 것을, 이것이 미성년자 딱지를 뗀 대가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은 아직 누군가의 뒤로 숨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잘 모른다고, 그러니 도와달라고.
그렇지만 기역, 니은을 알아가듯 내가 혼자 해내야 하는 것들이기에 이를 악물고 경험치를 쌓는다.
겁이 많은 나는 스물아홉 겨울에 뒤늦게 운전면허를 땄다. 그것도 기능 시험은 한번 떨어졌다. 정말 따고 싶지 않았는데 아이가 아플 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바로 기동력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부지런히도 연습했다. 그렇게 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구매한 후 일주일에 다섯 번은 연습을 한 것 같다. 싫어도 계속 운전할 상황을 만들고 무서워도 참고 실수도 해보고, 그러면서 점차 실력이 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의 차를 탈 때보다 내 차를 몰고 다닐 때 경적이 많이 들린다는 사실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
어른이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아이. 새롭고 낯선 일이 닥치면 겁이 난다.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앞선다. '나뿐만이 아니겠지, 모두 처음과 실수와 실패가 두렵겠지.'
스스로 다독인다.
그렇게 오늘도 거친 파도에 맞서는 항해사처럼 파도를 다루는 법과 파도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지혜를 배우려 용기를 낸다.
결국 삶을 살아낸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직도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마카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