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아 Jul 11. 2024

달팽이의 꿈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10

비가 추적추적 오는 요즘이다. 걸을 땐 신발이 젖고 운전할 땐 앞도 잘 보이지 않아 반기지 않는 비 오는 날.

운전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던 아가씨 시절에는 비 오는 날을 퍽이나 좋아했었다. 한가한 날에 자주 가던 카페에 앉아 달콤한 카라멜 마키아토와 케이크 하나 주문하고 가장 구석진 창가 쪽에 자리를 한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도서관에서 눈에 띈 하늘색 표지가 내 마음을 기분 좋게 했다. 그렇게 한 장, 두 장 읽으며 카페의 잔잔한 음악과 빗소리가 어울려 불안한 나의 마음을 달래주곤 했다.


더 어린 시절에는 어땠을까? 비가 오고 난 뒤 놀이터는 두꺼비집 만들기 딱 좋은 흙이 준비되어 있었다.

동생과 함께 모종삽을 들고 장화를 신고 젖은 놀이터로 향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것은 미끄럼틀도, 그네도, 뺑뺑이도 아닌 적당히 단단해진 짙은 갈색의 흙.

그렇게 한참을 앉아 손으로, 삽으로 땅을 파고 두꺼비 집을 만들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종종 땅을 파다 지렁이를 발견하기도 한다. "꺄악 지렁이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지렁이도 구경하고 다시 덮어주고, 두꺼비 집에 넣어 주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을 반기던 그 시절.

지금은 아이들 등교도 더 힘들고, 운전하기도 불편해 그다지 반기지 않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비 오는 날이 좋은가 보다.


달팽이에 푹 빠진 아이들은 비가 오는 것을 무척 기다린다. 한동안 해가 쨍쨍했는데 추적추적, 오락가락 흐린 날씨 덕분에 아파트 단지 작은 나무 아래에 생긴 달팽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달팽이 마을. 

아이들은 종종걸음으로 보러 간다.

무섭지도 않은지 달팽이 등껍질을 휙 잡아 안전한 나무 아래로 옮겨 준다.

"여기 있으면 새한테 잡아먹혀. 엄마! 얘는 엄마 달팽이고, 얘는 아기 달팽이야."

그렇게 한참을 보고 새가 볼까 나뭇잎 이불을 덮어 가려주고 학교 끝나고 올 때까지 잘 기다리라며 인사를 한다.


어느 날 둘째가 말했다.

"엄마 달팽이의 꿈은 뭔지 알아? 비가 오는 거야."

그 말이 내 마음속에 뭉클하게 자리 잡았다. 달팽이의 꿈.

달팽이도 비가 올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겠지? 촉촉한 빗방울이 나뭇잎 사이로 떨어져 부드러운 땅이 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행복하겠지? 따가운 햇빛을 피해 그늘에 숨어 답답하게만 지내다 비가 오면 세상 밖으로 나와 구경하고 놀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면 참 좋겠지?

느리지만 한 걸음, 두 걸음. 느려도 행복하겠다. 비가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겠다. 비가 와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달팽이는 참 행복하겠다.

친구를 만나서도 아니고, 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아서도 아니고, 맛있는 나뭇잎 덕분도 아니고 그저 날씨가 좋아서.

비가 오는 날이라 행복한 달팽이.


"얘들아, 너희 꿈은 뭐야?"

"나는 경찰."

"나는 승무원."

꿈이 직업이 되어 버린 아이들.

날씨가 좋다는 것만으로 행복함을 느낀다면 참 좋을 텐데.


"얘들아, 그럼 너희는 언제 그냥 행복해?"

"엄마랑 간질간질 놀이할 때."

"바나나 응가가 나왔을 때."

하하하. 그래. 참 좋지.


비가 오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며.

달팽이를 보기 위해 5분 일찍 나서는 아이들을 보며.

그렇게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고 오늘도 뚜벅뚜벅 함께 걷는다.


숨어있는 달팽이를 찾아 보세요^^


작가의 이전글 괜찮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