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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l 17. 2024

황소? 망아지? 다람쥐!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12


지난 주말, 자격증 시험을 보기 위해 고사장으로 향했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취업 준비와 자격증 시험. 이 세계에 발을 들이고 점수 하나로 기쁨과 좌절, 자신감과 자괴감을 얻었다.

간절히 원한 것도 있었고 미리 준비해두면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라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준비한 것도 있었다. 때로는 벼락치기로 때로는 몇 달을 밤을 지새우며 준비했다.

나는 늘 불안이 원동력이 되었다. 부족한 경력으로 면접에 떨어질까 봐, 남들 보다 뒤처질까 봐, 아이들 다 키워놓고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이 줄어들까 봐, 혹시나 나중에 내가 원하는 것이 생겨도 나이가 걸림돌이 될까 봐. 비교 대상은 늘 나보다 훨씬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차라리 이루고 싶은 딱 한 가지 목표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한다. 온전히 남은 인생 바칠 수 있는, 힘들어도 열정 가득한 마음에 흠뻑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말이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 예전에는 있었던 것도 같은데 희미해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꿈같은 꿈을 꾸기에는 철없는 십대가 아니기에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 버린 것 같다.


이것은 망아지가 강을 건너는 고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망아지가 강을 건너려 하자 황소는 강이 얕으니 아무 때나 건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반면 다람쥐는 강이 너무 깊어 친구가 빠져 죽었으니 절대 건너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망아지는 강을 건너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여기서 인생이란 강을 건널 것인지 말 것인지는 강이 어떤 상태인가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누구인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망아지라면 용감하게 건너면 됩니다. 만약 작은 다람쥐라면 무턱대고 건너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망아지라면 다람쥐의 충고 때문에 강을 건너지 못해서는 안 되지만, 다람쥐라면 망아지가 건너는 것을 보고 자신도 강을 건너려 해서는 안 됩니다. - 사람을 품는 능굴능신의 귀재 유비


여러 시험을 보았다. 어떤 시험은 젊은 취준생들이 주를 이뤘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꽤 늦은 나이에 속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아줌마였다. 평균 보다 많은 나이로 전업 수험생들과 무모한 도전을 한다는 생각이 더욱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얻은 것은 목표 점수 도달 실패와 끝없이 추락하는 자존감과 자괴감, 줄어든 잠과 늘어난 폭식으로 인한 건강 악화였다.

그렇다고 간간이 합격해 취득한 자격증들도 나를 크게 기쁘게 해주지는 못했다. 뿌듯함은 잠시 자리하다 밀려오는 실패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을 콕콕 쪼아대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달아났다. '이건 남들도 다 있는 자격증인데 이력서 한 줄 채우는 정도밖에 되지 않아. 큰 게 하나 있어야지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어쩌면 난 다람쥐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지난 주말의 시험은 정기 기사 시험으로 다양한 직종의 자격증 시험이 함께 치러졌다. 나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불합격을 염두에 두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 시작 50분 전쯤 시험장에 도착해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대기실에는 이미 여러 수험생들이 있었다. 분위기는 진지하고 차분했다. 발소리를 죽이고 앞쪽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펼쳐 보았다. 10분쯤 지났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내 옆자리에 어느 아저씨께서 앉으셨다. 50대 중반은 되어 보인 옆자리 수험생은 머리가 희끗했다. 뒤를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시험 시작이 30분이나 남았는데도 자리는 절반 이상 채워져있었고 대부분이 중년이었다. 놀랐다.

내 옆의 수험생은 노트 한 권과 필통을 살며시 내려놓으며 자리했다. 살짝 보니 공부 내용을 빼곡히 적어 정리한 노트였다. 살짝 긴장한 모습으로 노트를 보고 있는데 얼마 뒤 후배처럼 보이는 수험생이 옆자리 수험생에게 다가왔다.

"시험공부 많이 하셨어요?"

"아니, 뭐... 나이가 들어 그런가 자꾸 까먹네. 한다고는 했는데 될지 모르겠어."

그리고 그 둘은 함께 바람을 쐬러 갔다.


그 노트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남들 다 있는 자격증 하나 있다고 취업이 될 리 없다 생각한 적이 있다. 변호사, 회계사 같은 자격증만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난 남들과 다르다는 마음이 내 깊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마저도 시험 준비가 힘들다고 투덜대며 내가 하겠다고 신청한 것인데도 시험날이 다가오면 가족들에게 짜증과 투정을 부렸다. 합격하면 내 탓, 떨어지면 남 탓을 했다. 환경을 탓하고 조건이 열악함을 억울해하고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며 하늘을 미워했던 적도 있다. 나의 오만함이었다.


대기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열정과 의지로 가득했다. 그들에게 늦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열심히 노력해 원하는 목표에 한 발짝, 두 발짝 가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젊은 수험생들과 비교하면 턱없는 체력과 기억력에 더 많은 좌절을 겪어야 하겠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다들 열심히도 살고 있었다.


난 간신히 턱걸이로 합격했다. 기쁨보다 깨달음이 더 컸다. 나 자신을 망아지라 착각하고 오만했던 나라는 것을, 조금은 날로 먹으려는 심보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람쥐는 숲에서 행복하다.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망아지는 푸르른 들판에서 행복하고 흰동가리는 바닷속에서 살아야 한다. 

내가 다람쥐임을 아는 것. 그것이 이번 시험에서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다. 

내 옆자리 수험생은 합격했을까?

다음 2차 시험에서도 얼굴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다람쥐여도 행복하면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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