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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l 19. 2024

최종 병기, 화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13

스스로를 생각했을 때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전적으로 나의 기준에서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화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더 화를 내지 않으려 신경 쓰고 노력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화는 득이 될 것이 하나 없고 서운함만 주기에 되도록 말로 나의 입장과 생각을 이야기하려 한다. 쉽진 않다.


요즘 가장 곤란할 때는 아이들이 싸울 때이다. 8살, 5살 남매는 한창 지지고 볶고 싸우기에 전념이다. 

"엄마, 나는 귀여운 햄스터야 찍찍!"

"아이고 귀엽네~ 우리 딸 진짜 햄스터 같아."

"야, 무슨 말이야. 왜 귀여운척해. 너는 귀여운 햄스터가 아니고 커다란 햄스터야. 아니다, 기니피그야! 푸하하."

"동생 놀리지 말랬지. 얼른 사과해."

"뮈안훼~"


동생은 가만히 있는다. 사실 겉으로는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다.

오빠가 방에서 공부할 때를 노려 오빠가 아끼는 우쿨렐레를 슬쩍 꺼낸다. 방학 동안 배워보고 싶다고 장만한 우쿨렐레. 산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요즘 오빠가 가장 아끼는 물건. 그 사실을 잘 아는 둘째는 오빠가 싫어할 것을 알고 몰래 연주하다 들키고 만다. 오빠가 달려와 소리를 지르고 빼앗아도 절대 뺏기지 않는다. 아무도 5살로 보지 않는 둘째의 키와 체격은 오빠에게 지지 않는 충분한 힘도 가지고 있다. 소리조차 지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오빠의 화만 돋울 뿐. 이것이 철없는 오빠를 가진 여동생의 복수하는 법이다.


"둘 다 그만 싸워. 그니까 서로 배려하면서 이야기해야지. 오빠도 동생한테 얄밉게 이야기했고, 동생도 말로 싫다고, 하지 말라고 해야지 그러면 안 돼. 박수는 절대 혼자 소리 못 내. 서로 잘못한 거야. 얼른 화해해."

예전엔 이만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하지만 이젠 허공 속의 메아리일 뿐이다.

"야! 너 이 씨! 오빠 거 놔라!!!"

결국 육탄전이 시작되고 나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선다.

"그만해!"

이렇게 휴전이 되었나 싶어 다시 설거지에 집중한다. 오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동생도 살금살금 따라 들어간다. 한동안 조용해 잘 있나 싶었는데 우당탕탕.

"엄마, 오빠가 내 팔 꽉 잡았어. 으앙."

"아니 쟤가 내 그림 망가뜨리려 했다고!"


수세미를 던지고 방으로 간다. 방은 엉망진창. 책상 위에는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과 과자 봉지, 그리고 육탄전의 잔해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최종 병기를 꺼내든다.

"너네!!! 엄마가 화 안 내고 좋게 이야기하니까 엄마 말 안 듣는 거야? 그만 싸우랬지! 누가 동생한테 힘을 써!!! 말로 해야지!!! 그리고 책상은 왜 이렇게 어질러져 있어! 엄마 책상도 아닌데 왜 만날 엄마가 치워줘야 해? 5분 준다. 5분 안에 책상과 방 정리한다. 실시!!!"

누가 군인의 딸 아니랄까 봐 아이들에게도 말투가 이렇다니... 쓰면서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엄마가 이렇게 화를 내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이 그렇게 빠르게 방 정리를 마친 모습을 처음 보았다. 완벽한 정돈이었다.

"너희 이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 왜 여태 안 했어. 엄마가 화 내야지만 이렇게 하는 거야? 앞으로는 좋게 이야기할 때도 이렇게 잘 정리해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이들의 표정을 보니 눈썹과 눈이 세모 모양으로 씰룩거린다.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툭 건드리면 눈물이 또르르 떨어질듯한 모습에 벌게진 오동통한 두 볼을 보자니 웃으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무서운 표정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의 심각한 팔(八) 자 눈썹을 본 나는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너무 귀여워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서로 미안해해."

"미안해..." "미안해..."

"다음부터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엄마도 큰 소리 내서 미안해."


언제 싸웠냐는 듯이 다시 사이좋게 노는 남매.

"오빠. 오빠가 왕자님이야. 아빠는 두꺼비~ 히히."

"그래? 오빠가 티니핑 그려줄까요, 공주님?"

하루 중 8번 싸우고 2번 사이좋으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는 거겠지? 첫째의 서운한 마음도, 둘째의 속상한 마음도 모두 이해가 가기에 어느 한쪽 편만 들 수가 없다. 싸울 때마다 나는 솔로몬의 지혜를 모두 끌어모아 발휘해야 하는데 참 어렵다. 결국 화를 낸 날이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정말로 감당이 안 될 때, 나의 최종 병기는 아껴두었다 적시에 쓸 수 있도록 잘 보관해둬야겠다.

자주는 안 쓸게, 얘들아~♡


태풍이 지난 후 찾아온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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