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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l 12. 2024

방황하는 별들아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11

방황하지 않고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일직선을 그리며 살아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셀 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방황하는 우리들.

주변의 바람 가득한 소음과 목표에 미치지 못해 적당히 타협한 나 자신의 결과물, 욕심만큼 받쳐주지 못해 억울한 환경을 탓하며 '그때 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어.'라고 씁쓸하게 위로한 채.

"차라리 한 가지만 제대로 타고나지! 어설프게 이것도 괜찮은 것 같고, 저것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재다능이 좋은 게 아니야!"라며 그나마라도 주어진 재능에 감사하지 않은 채.


그렇게 알 수 없는 점을 여기저기 남기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라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최종 목적지는 인생의 종착지역. 도착 전에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나의 재능은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성공과 명예, 부까지 얻는다면 너무나 땡큐다.

누구는 20대에 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누구는 대학 병원에 취직하고, 누구는 대학로에서 조연출 딱지를 떼고 첫 연출을 맡고, 누구는 광고에 출연하고, 누구는 세계 여행을 떠나고, 누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아!!! 나는? 아직도 길을 잃고 있네.

시도는 참 많이 했는데,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네.

허망하다.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구나. 아, 더 노력했어야 했나 봐. 아니면 운이 따라주지 않았나?

누굴 탓해. 다 내가 못난 탓이지 뭐.'


20살. 연극과를 진학했다. 낯선 이름의 지방대였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무엇이든 다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연기를 배우러 갔는데 선후배와 동기들과의 사회생활이 더없이 중요한 곳이었다. 뉴스에 나오는 기합 정도의 소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는 더 아프고 서러웠다.

대학 중퇴와 함께 길을 잃고 걷다 남편이 건네준 손을 잡고 결혼과 육아에 올인했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 인생 알고 싶은데, 살아보고 싶은데. 한 3년은 엄마이자 취준생으로 살았다.

컴활 자격증, 영어 코칭 지도사, 독서 논술 지도사, 세무사 준비, 사이버 대학 졸업, 현재 진행형인 자격증 시험들. 알바도 하고, 면접도 보고 그래도 노력은 했네.

아니, 사실은 이 악물고 노력했다. 죽을힘을 다했다. 그래서 더욱 다리에 힘이 풀린다.

어휴, 그런데 아직 제자리다. 아직 그대로다.

떼돈을 벌고 싶은 것도, 육아가 싫은 것도 아니다. 전업주부가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살아내기 위해 생긴 대출을 갚고 아이들 잘 돌보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만 해도 벅찬데 이런 고민하는 나도 내가 싫다.

나라는 사람을 알고 싶을 뿐인데.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말고 어디 가서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하고 내밀 수 있는 소박한 명함 하나 갖고 싶은 건데.

"복에 겨운 고민이네! 남편이 벌어다 주고 먹을 걱정 없으니 할 수 있는 신세한탄 말이야! 부럽다. 부러워."

"남편도 가끔은 집에서 쉬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적당한 자격증 취득해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취직해요."

차마 어디서도 꺼낼 수 없는 나의 철없는 고민. 현실적 어른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갈팡질팡 어지러운 점투성이.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있었다.

시간의 열차는 야속하게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방황의 끝은 언제냐고 물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묵묵히 앞으로 향할 뿐.

내가 남긴 점들이 그렇게나 엉망인가 싶어 하나 둘 되짚어본다. 그리고 이어 본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창문 너머 보이는 무수히 많은 하늘의 별들. 수천억 개의 별 중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별은 고작 6천 개라고.

색깔도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별. 뒤죽박죽 엉망인 별. 갈피가 전혀 없는 별.


그렇지만 그 별들을 이으니

아름다운 별자리가 완성된다.

뒤죽박죽, 갈피가 없어서 더 아름다운 별자리.

열차에 탄 방황하는 우리는 사실 별자리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과거에 살고 있었다. 내가 했던 실패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내가 종착지에 가져갈 건 별이 아닌 별자리.'



어느 날, 누군가 나에게 방황해도 괜찮다고 말해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다시 돌아와 다른 방향으로 가보고, 또 아닌 것 같으면 반대로도 가보고. 그렇게 살라고.

과거의 실수에 사로잡혀있지 말고, 또 너무 미래에만 살지 말고 오늘을 살라고.

오늘도 하나의 점을 그린다. 제자리 걸음같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완성될 날이 오겠지?

어렵다. 이 길이 맞나 불안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시간 낭비이진 않을까 걱정된다.

또 실패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면 어쩌나 싶지만,

완성 못해도 괜찮겠지? 별 조각 한가득 바구니에 담아서 종착지에 가져간다면, 그것도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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