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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나루 Aug 16. 2019

커피는 쉼표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한



이 극단의 표현은 18세기 프랑스 어느 정치가의, 과장의 수사를 유감없이 발휘한 유명한 커피 예찬이다. 커피는 색깔로 보면 그리 예쁘고 착한 색이 아니다. 검은빛이라는 자체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의뭉스럽기도 하기에 '악마처럼 검고'라고 표현했겠지만 이미 커피색은 인증받은, 세련된 고유의 색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렇다면,
'지옥처럼 뜨겁다' 이것은 커피의 어떤 속성을 표현한 것일까, 그건 아마도 실제 온도와는 크게 관계없이 깊고 그윽하면서도 쓰디쓴 특유의 원두 맛에 비유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맛과 향과 색깔이 조합한 예술성을 '천사의 아름다움'에 빗댔을 듯하고, 커피에 젖어 들어 릴랙스 한 여유와 부드러운  마음을 '달콤한 사랑'에 비유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저 예찬 문구가 터무니없는 과장이 아니다.

느낌은 자유로우니 표현이 자유임은 물론이다.
누군가 저 표현에 브레이크를 걸며 딴지를 걸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자유다. 그러고 보면 자유란 얼마나 위대한지. 또 표현의 기술은 얼마나 예술인지. 또 얼마나 커피맛이 매혹적이면 저런 극단의 감성적 표현을 당당하게 하는지.

정확히 단맛도 신맛도 쓴맛도 아닌 오묘하게 섞인 미감이어서 더 매혹적이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음식이나 전부를 홀라당 드러내면 매력 없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그런 듯 아닌 듯, 보일 듯 말 듯, 첫맛인 듯 끝 맛인 듯, 오묘하게 감겨드는 신비로움을 겸비할 때 치명적 유혹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커피가 어떻게 사람에게로 왔을까? 커피의 유래를 보면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을 보자면,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의 양들이 빨간 커피 열매를 씹으면 기분 좋은, 흥분한 상태로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시원이다.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아랍으로 또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오늘날 나의 아침 식탁에도 어김없이 올라 무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해주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커피는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아 무턱대고 마실 수만은 없는, 일종의 기호식품이다.
담배나 술 등과 같이 과하면 부작용도 있지만, 좋은 효과가 압도적이라 해도 꼭 효과에 기대 서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당기는 원천적인 매력 때문에 너도 나도 손에 커피잔을 들게 되는 것 같다. 독특하게 발산되는 향기와 쓴맛 신맛 고소함이 어우러진 특유의 맛이 감히 인간의 마음을 훔치게 되었다고 할까.

십여 년 되었나, 하와이 다녀온 친구가 선물이라며 커피 원두를 사다 주었던 게 커피 사랑에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엔 드립으로 내려 먹거나 가공된 알갱이를 물에 타 먹거나 커피 문화로써 믹스 커피가 만연돼 있을 때였고, 막 테이크 아웃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갈아서 드립으로 내리는 거야 이미 오래전부터였지만 압착 커피는 커피 전문점 아니면 드물었다. 압착 커피의 맛을 알아버리고 머신을 사서 이제껏 커피 사랑에 빠져왔는데 사실,

커피는 음미되는 맛도 맛이지만 분위기와 기분을 무시할 수 없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면 그 순간의 의미와 가치가 절로 당당해진다. 이것은 아깝게 허비하는 시간이 아닌 꼭 필요한 시간임을 반증하기 때문이리라.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 하던, 먹고살기 바빴던 시절의 사람들이 요즘의 커피 문화나 등산 등의 취미 활동을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볼 수 있겠지만 문화란 시대적 산물이 어쩌랴.

나는 중간급의 커피 애호가이다. 그래서 가끔 커피를 소재로 시를 쓰거나 산문을 쓰기도 한다. 어느 해보다 뜨겁게 달궈진 지구의 여름날 아침, 높은 불쾌지수까지 더해 하루라는 시간이 더위만큼이나 무더운 무게로 다가오 순간,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주문을 걸어야 했다. '하나하나 천천히... 다 잘 될 거야, 알 이즈 웰~~'
천천히 원두를 갈아 내리고 원액을 받아 얼음 조각을 넣고 앉아 커피 향을 맡는 순간, 박하향처럼 싸아하게 환해지는 기분. 갑자기 무더위로 둔해진 감각이 다시 깨어나듯 상승된 기분에 느긋한 낙관주의자가 된다. 수순처럼 뭐라도 쓰고 싶어 진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아름답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의 속성을 다시 한번 가늠해 본다. 그리고 무딘 껍질을 벗겨내고 더위를 식혀준 향기로운 커피 향을 붙잡아두기 위해 커피의 내력을 뒤적이며 글의 서두를 구상 한다.


#커피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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