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으로 본 기업의 인정
기업 스캔들에서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적 문제라고 에둘러 말하고,
소비자의 의구심이 높아질 때쯤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대외적 압박이 들어오면 조사 중이라는 문장으로 버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결국 인정의 순간이 옵니다.
폭스바겐도 그랬습니다.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 대량 리콜 사태를 기억하시나요?
https://www.bbc.com/news/business-34324772
2015년 9월, 독일 자동차 기업 Volkswagen이
미국에서 판매된 디젤 차량 약 50만 대에 대해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발표와 함께 불과 며칠 만에 폭스바겐의 주가는 급락했고,
시가총액은 약 169억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시장은 이미 이 사건이 단순한 리콜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배출가스 조작 사실 이른바 ‘디젤 듀프(diesel dupe)’가 터졌습니다.
조작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폭스바겐의 디젤 차량에 시험 상황을 감지하는 소프트웨어,
디피트 디바이스(defeat device)가 탑재되어 있었고
이 디바이스가 시험 테스트 상황임을 감지할 때에만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도록 설계되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배출가스 기준을 실험실 테스트 중일 때만 줄이고
실제 도로 주행 시에는 엔진이 정상 성능으로 전환되었던 것입니다.
실제 도로 주행 때 배출한 질소산화물은
법적 허용치의 최대 40배에 달했습니다.
폭스바겐은 결국 미국에서의 배출가스 시험 조작 사실을 자백했고, 연달아 문제들이 터집니다.
이 장치는 미국 내 48만 2천 대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약 1,100만 대,
그중 유럽에만 800만 대의 차량에 장착되어 있었다는 점도 함께 밝혀졌습니다
.
이 자백은 기술 문제를 넘어 신뢰의 문제로 확산되었습니다.
폭스바겐은 오랫동안 ‘저배출 친환경 디젤’ 이미지를 앞세워 대규모 마케팅을 진행해왔는데요,
친환경을 약속한 브랜드가 의도적으로 시험을 속였다는
사실은 소비자 신뢰뿐 아니라 규제 체계 전반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습니다.
회사는 곧 대응했고, 미국 법인 대표의 공개적인 인정과 그룹 최고경영자의 사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자백의 대가는 엄청난 마이너스 수치로 나타났습니다.
폭스바겐은 전 세계 리콜과 초기 대응 비용으로 67억 유로를 충당금으로 설정했고,
그 결과 15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EPA는 차량 한 대당 최대 3만 7,5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어,
이론상 벌금만으로도 180억 달러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소비자와 주주들의 집단 소송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총비용은 당시 기준으로도 “산정 불가”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이 사건은 미국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캐나다 등 여러 국가가 동시에 조사에 착수했고,
폭스바겐은 유럽에서만 850만 대,
미국에서 50만 대의 차량을 추가로 리콜하게 되었습니다.
스캔들 이후 폭스바겐의 주가는 약 3분의 1가량 하락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습니다.
폭스바겐은 왜 이 사실을 인정했을까?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자백의 대가는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이 글은 폭스바겐 디젤게이트를 출발점으로,
경영에서의 ‘자백’이 어떤 심리적 계산과 경제적 비용을 동반하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자백은 윤리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말했을 때 잃는 것과 말하지 않았을 때 잃을 것을 저울질한 결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폭스바겐의 사례는 그 사실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자백은 위기를 끝내는 행위가 아니라, 때로는 진짜 비용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백의 이전으로 시점을 돌려서
왜 기업은 처음부터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부인하다가 결국 자백할까요?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이 ‘나쁜 의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아주 익숙한 성장(혹은 함정)의 메커니즘으로 설명합니다.
바로 Barry M. Staw(1981)가 정리한 ‘몰입상승 효과(Escalation of Commitment)’로
설명해볼 수 있습니다.
https://thedecisionlab.com/biases/commitment-bias
*몰입상승 효과 :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나 실패할 것이 확실한 일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심리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손실이 커지면 그만두겠지.” “이쯤 되면 인정하겠지.”
하지만 Staw는 정반대로 설명합니다.
한 번 선택한 경로(course of action)에 들어선 사람(혹은 조직)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 오히려 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손실은 멈추려는 중단이 아니라
추가 투입의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경제학에서 자주 다뤄지는 매몰비용(sunk cost)이 작동합니다.
경제학에서는 과거 비용은 미래 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Staw는 이렇게 말합니다.
매몰비용은 경제적으로는 끝났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조직은
과거의 실패를 그냥 지나간 일로 처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실패를 회복해야 할 과제로 다시 끌어올립니다.
그래서 손절을 취해야 할 타이밍에
반전을 선택하게 됩니다.
Staw는 자기정당화(self-justification)를 강조했습니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을 때, 그 결정에 내가 깊이 관여했을수록
사람은 더 강한 압박을 느낍니다.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의 선택이 전부 무너진다.”
그래서 사람은 두 가지를 합니다.
첫 번째, 실패의 의미를 바꿉니다.
두 번째, 동일한 경로에 자원을 더 투입합니다.
자원을 더 넣어 “결국 성공했다”는 결말을 만들면, 처음의 선택도 정당화되죠.
정리하면
자백하지 않는 행동은 단순한 부인이 아니라 내가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되기도 합니다.
Staw는 나아가 정당화를 두 가지로 나눕니다.
스스로에게 “나는 합리적이었다”고 말하는 내부 정당화와
타인에게 “우리는 무능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외부 정당화입니다.
기업은 특히 외부정당화의 압박이 훨씬 큽니다.
시장, 규제기관, 언론, 소비자, 투자자.
이 모든 시선 속에서 기업은 늘 평가받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장이 조직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인정하면 끝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해결될 수 있다.”
“지금은 일시적 변수다.”
이 단계에서 부인하는 것은 판단이라기보다
생존 전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Staw가 특히 흥미롭게 지적한 부분이 있습니다.
조직에는 '일관성의 규범(norms for consistency)'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규범 하에서는
한번 결정된 결과를 바꾸려는 리더보다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리더가
더 결단력 있고 유능해 보인다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여기서 기업은 함정에 빠집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수정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는데도,
조직은 그 행동을
“오락가락한다” “리더십이 약하다”로 해석합니다.
최종적으로 부정적 결과가 쌓여도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마지막에 성공하면 그 리더는 성공하게 된다고 믿는 것이죠.
Staw는 이를 일종의 ‘영웅 효과’로 설명합니다.
그러니 기업은 더더욱 지금은 바꿔선 안된다는 압박 속에서 부인을 지속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번 더 시선을 전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자백'을 도덕적인 옳고 그름보다는
그 제도와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써 바라보고 해석합니다.
Lucian E. Dervan은 허위 유죄 인정(거짓 자백)과
형사사법제도의 유죄협상(plea bargaining) 문제에 관한 연구로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논문 Bargained Justice: Plea-Bargaining’s Innocence Problem and the Brady Safety-Valve는
자백을 둘러싼 우리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흔듭니다.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1664620
먼저 Dervan은 일반적이지 않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백은 죄가 있을 때 하는 선택이 아니라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선택의 경향이라는 논지입니다.
만약 죄를 짓지 않은 무죄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자백을 선택하고 있다면,
그 문제는 개인이 도덕적인 문제를 지닌 것이 아니라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니)
자백을 유인하는 제도의 구조적 문제가 있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자백을 유인하는 제도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유죄 협상, 플리 바게닝 제도였습니다.
미국의 자백 제도는 1970년 연방대법원 판결 Brady v. United States를 통해 합헌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판결은 “유죄 협상(plea bargaining)은 헌법적으로 허용된다”는 원칙을 세운 사건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Dervan이 주목한 부분은, Brady 판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전제 조건,
‘안전밸브(safety-valve)’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유죄를 협상할 수 있도록 하되,
검사는 피고인에게 자백의 대가로 과도한 유인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그 압력이 피고인의 자유로운 선택 능력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라고 밝혔습니다.
협상에 따른 자백은 허용되지만
조건부로만 허용된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Dervan은 그 '조건' 조차도 무너졌다고 봤습니다.
오늘날의 자백 제도는
이미 무죄자들이 유죄를 인정하는 결과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는 Brady 판결이 설정한 안전밸브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입니다.
자백은 더 이상 실제 범죄 여부가 아니라 협상의 계산으로 다뤄졌습니다.
- 재판에 갈 경우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
- 장기 구금, 과도한 형량, 사회적 낙인
의 비용과
- 자백 시 제공되는 즉각적이고 확정적인 ‘감형’과 절차 단축
이라는 이익 사이에서 계산해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 죄를 짓지 않은 이들도,
‘확실한 작은 손실 (죄를 인정하고 감형)’이
‘불확실한 큰 손실 (길어질 재판과 사회적 낙인)’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순간,
자백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그래서 Dervan은 단언합니다.
자백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제도적 선택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이제 다시 폭스바겐의 사례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폭스바겐의 자백은 갑자기 회사가 잘못을 뉘우치는
윤리적 각성이라기보다,
조사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각국 규제가 어떤 방식으로 결합될지 모르는 리스크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평판 손실
이 모든 변수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시점에서 내려진
합리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시점의 벌금 또는 리콜 사태가 미래의 리스크보다 낫다고 본 겁니다.
이 때 기업의 자백은
잘못을 고백하는 행위가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한 리스크 관리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백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진짜 더 큰 비용이 전가됩니다.
다음으로 이어질 질문은 자연스럽습니다.
자백 이후, 기업이 저지른 죄로 인한
가장 큰 비용은 무엇인가입니다.
숫자는 빠르게 집계됩니다.
폭스바겐은 리콜·소송·규제 대응 비용을 위해 초기에 수십억 유로를 충당했고,
미국에서는 차량 대수 기준으로 최대 수백억 달러 규모의 민사 벌금 가능성까지 거론됐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더 깊게 들여다보면, 기업이 치른 비용의 중심에는
단순한 벌금이 아니라 ‘윤리적 붕괴가 불러온 신뢰의 붕괴’가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Cavico와 Mujtaba(2016)는 이 스캔들을 “법 위반 사건”을 넘어
기업 문화가 ‘기만을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지점까지 어떻게 붕괴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추적합니다.
누가 결정했는지, 왜 내부에서 제동이 걸리지 않았는지, 왜 내부 고발자가 없었는지,
그리고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조직”에서 왜 편법이 운영 규범이 되었는지.
이 질문들은 결국 하나로 수렴합니다.
기업이 무너지는 순간은, 규정을 어겼을 때가 아니라
그 사실을 알면서도 “괜찮다”고 합리화하는 문화가 만들어졌을 때입니다.
그래서 사후 대응의 핵심도 단순 보상 패키지나 리콜 계획이 아니라,
투명성, 책임 인정(하위 엔지니어 탓으로 돌리지 않기),
재발 방지 거버넌스, 내부 제보 채널, 윤리·컴플라이언스 체계 재설계 같은
‘신뢰를 다시 쌓는 구조적 비용’으로 이동합니다.
즉, 벌금은 비용의 시작일 뿐이고,
진짜 큰 비용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조직이 장기간 감내해야 하는 구조적 재건 비용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신뢰의 할인’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과 비용 구조의 변화입니다.
신뢰가 깨진 기업은 같은 제품을 팔아도 프리미엄 가격을 유지하기 어렵고,
판매 촉진을 위해 더 큰 할인·보상·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동시에 규제기관과 시장은 그 기업을 더 위험한 주체로 평가하면서 규제 리스크 프리미엄을 붙이고,
이는 자금 조달과 투자 판단에서 자본비용(WACC)의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더 직접적인 타격도 있습니다.
“클린 디젤”처럼 약속 자체가 가치였던 제품은 신뢰 붕괴와 함께 잔존가치(중고가) 하락이 발생하고,
이 비용은 소비자 보상과 법적 분쟁으로 다시 기업에 되돌아왔습니다.
결국 자백 이후의 가장 큰 비용은 ‘벌금’이 아니라,
신뢰가 사라진 시장에서 다시 정상 가격으로 거래되기까지 치러야 하는 장기적 프리미엄입니다.
이 사례는 무려 사이언스 지에서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015.18426
사실
폭스바겐 이전에도 동일한 문제는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었습니다.
2011년 EU 공동연구센터(JRC):
디젤 차량의 실주행 NOx 배출량이 기준의 최대 14배
2012년:
Euro 6 기준을 충족한 최신 차량조차
실제 도로에서는 기존 기준 대비 약 260% 초과
2014년 ICCT 분석:
일부 차량은 최대 25배,
평균적으로는 EU 기준의 약 7배
즉, 폭스바겐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험 제도 안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그 틈을 활용한 사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조작이 입증된 기업은 폭스바겐뿐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조적인 회의가 컸습니다.
유럽은 미국보다 규제가 느슨했고, 실험실 중심의 시험 방식은
조작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기업들의 고의적인 디피트 디바이스 사용 여부는 당시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가장 분명하게 달라진 것은 시험 제도였습니다.
EU: 2017년부터 실주행 배출시험(RDE) 의무화
미국 EPA: 모든 신규 디젤 차량에 대해
디피트 디바이스 탐지를 전제로 한 추가 주행 시험 도입
실주행 시험은 분명한 진전이지만, 시험 조건이 좁아질수록
새로운 회피 전략이 등장할 가능성도 함께 커집니다.
기술적으로 디젤은 완전히 실패한 선택은 아닙니다.
CO₂ 배출은 가솔린보다 낮고, BMW 사례처럼 기준을 충족하는 차량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폭스바겐 스캔들 이후 디젤은 친환경 전략으로서의 신뢰를 상실했고,
규제는 강화되었으며 연구·개발 비용은 급증했고
디젤은 더 이상 ‘환경 해법’이 아닌 논쟁적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신뢰가 사라진 시장에서 다시 정상 가격으로 거래되기까지의 시간과 구조적 비용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모든 산업과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백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사회에 어떤 기술, 기업, 산업에 대해 안일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뻔히 예상되는 결말을 덮어두고 보고 싶었던 것만 봤던 것은 아닐까?
라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시하는 순간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을 준 넷플릭스 '자백의 대가'에
소소한 고마움을 표하며...
2026년이 밝았습니다.
2025년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개인적으로 작은 일상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나름의 목표 의식을 새롭게 다지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브런치에 개인의 평이나 이야기를 쓰지 않고 '관점이 있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춰
소재를 다듬고, 문단 구성을 짜고 또 내용을 정리해나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은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 자신 스스로를 드러내고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내가 준비가 되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에 가까워져 가고 있습니다.
글은 말과는 달라서 내가 떠올린 생각에 대한 정제와 가공이 많이 필요합니다.
이 때에 전달하는 이의 태도와 관점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들이 글 속에 배어나게 됩니다.
저의 원래 일상의 문체는 매우 감정적이여서,
그것을 학문적인 방법으로 단련하는 것에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그렇다보니 본 주제의 내용들을 써나갈 때에는 '지식의 전달자'의 위치와 입장에서
제한적으로 글을 씁니다.
간결하고 힘있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흥미롭게 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직 갈 길이 먼 듯합니다.
2026년에는 조금은 '나'를 드러내는 글들도 올려봐야지 라는 생각과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어봐주시는 지금 그 순간에.
제가 남긴 과거의 감사가 현재의 당신에게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