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면 듣는 대표적인 세 가지 말이 있다.
첫 번째,
“요즘 참고 사는 부부가 어디 있어?”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가 절대 못 참을 거 같다고 생각했던 부분도 막상 살을 맞대고 살다 보니까 참아지는 경우도 있다.
예전처럼 결혼하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막상 살다 보면 막상 거슬리는 일이 생기더라도 한쪽 눈을 감고 넘어가기도 하고, 대충 못 들은 척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도 한 번 참아보기도 하며 살게 된다는 거다.
두 번째,
“야, 다들 이혼하고도 잘만 살아. 참지 마! 네가 뭐가 아쉬워서 그러고 살아”
이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내 주변에도 역시 이혼한 지인들이 많지만 다들 잘 산다. 그러니까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리기도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혼이 흔하긴 하지만, 흔한 것처럼 쉬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있는 경우엔 두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다들 이혼하고 잘 살고 있다는 이유로 부부 사이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냥 이 사람이랑 끝내고 말지” 하며 결론지어 버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세 번째,
“너만 그런 거 아냐. 다들 그렇게 살아.”
이 말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때는 모든 부부들은 우리 부부처럼 지지고 볶으며 "너만 힘드냐? 내가 더 힘들지" 하면서 사는 줄 알았다. 쇼윈도 부부라는 말은 연예인들만 쓰는 표현인 줄 알았지 우리 부부가 쇼윈도가 될 줄 몰랐다. 가족 모임이나 부부동반 약속이 있기 직전에 싸우면 우리가 그야말로 쇼윈도가 되어버렸을 때의 충격이란..
그런데 더 충격적인 건 다들 나처럼 사는 줄 알았는데, 진짜로 사이가 좋은 부부가 있다는 거였다.
신혼부부도 아니고, 아이가 다 큰 경우도 아닌 우리처럼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말이다.
가깝게 지내는 부부였는데, 남녀 모두 같이 활동하던 모임 내에서 만난 커플이라 둘 다 내가 잘 아는 경우의 부부였다. 2살 터울인 우리 아이들과 엇갈린 2살 터울로 우리 애들이 3세, 1세 일 때 그녀 부부는 2세, 신생아였을 때다. 각자 애 둘을 낳고 오랜만에 만난 그녀. 단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여느 유부녀들의 대화처럼 육아를 하며 변해가는 부부관계, 남편과의 갈등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언니 근데 나는 아기 키우면서 오빠랑 사이가 더 좋아졌어.”
무슨 말인고 하니 남편이 아빠로서 보여주는 모습들을 보면서 감동적일 때가 많더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측은할 때가 있다는 거였다.
나라고 남편에게서 보이는 아빠로서의 모습과 가장의 책임감이 고맙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저 육아로 인한 피로도와 부담이 더 커 그에 대한 고마움을 오래 느끼지 못했을 뿐.
아이를 키우며 부부 관계가 더 좋아진 그녀와 정반대인 나와의 가장 큰 차이가 있었다. 바로 상대방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을 때 그녀는 바로 표현을 했다는 거다.
그녀 역시 남편에게 화가 나는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워킹맘에 맞벌이 부부인 터라 시부모님이 육아에 도움을 주시느라 가까이 사는데, 워낙 인품이 좋으신 분들이라 근처에 사는 걸 쉽게 결정했지만, 막상 가깝게 지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답답한 일이 쌓인다고 했다. 하지만 회사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남편은 예전만큼 살뜰하게 본인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그로 인한 갈등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상대를 비난하는 싸움이 아닌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오래 하면서 표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표현을 한다. 아무 맥락이 없는 순간에도 항상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을 하다 보니 싸울 일도 줄어들고 상대방도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실 나도 제법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모든 감정적 표현이 아이에게로 향해 남편과는 이성적 대화만을 나누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도 쌉T형 인간인데 그나마 있던 F적 감성은 모두 아이에게 집중되느라 남편은 진짜 비즈니스 파트너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던 거다. 의식적으로 남편에게 F를 끓어 올리긴 어려우니 비즈니스 파트너라 해도 필요한 매너적 표현이라도 익혀야 되는 게 아닐까. 지금 관계라면 비즈니스고 뭐고 당장 때려치운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의 개매너, 똥매너의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사이좋은 부부는 바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오는 할머니 부부이다. 할머니 역시 말 끝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에게도, 손녀와 대화를 할 때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고마운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싸우자고 덤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