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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녀름 Sep 24. 2023

사명감이 꼭 있어야 하나요?

간호사 일기

“오늘도 힘들어 죽겠네.”

“출근하고 화장실 한 번 못 갔어요. 진짜 죽겠어요.”



나이트번 간호사에게 인계를 끝낸 시각, 여기저기 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LEVEL D를 벗으며 눌린 머리를 다듬었다. 아얏. 또 머리카락 걸려서 뭉텅이로 빠졌네.



“선생님은 안 힘드세요?”

나는 손가락에 걸린 머리카락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라고 안 힘들겠어? 하루하루가 고비다.”



금방 종식될 줄 알았던 코로나19 사태가 두 해를 넘기자 희망은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일일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고, 병원 일선에 있는 의료진들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병동 내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노출자를 조사해서 감염관리실에 보고하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잠복기를 고려하여 확진 당일을 포함한 최근 3일간 환자의 이동 동선을 파악하고, 의미 있는 노출자를 선별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평일에는 보통 수간호사가 하고, 주말에는 책임 간호사가 도맡았다. 그와 동시에 평간호사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기존 업무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첫 번째로 확진자를 분리해야 했다. 만약 다인실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그 환자를 1인실로 옮기거나, 그나마도 빈 병상이 없다면 회의실로 옮겨야 했다. 내가 일했던 병동은 평상시에도 예비 병상이 거의 없는 감염 병동이기에 확진자를 1인실로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확진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 회의실로도 부족해 그나마 병상이 남아 있는 병동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있다. 비좁은 회의실에 각각 다른 병실의 침대가 나란히 놓일 때면 두 명의 담당 간호사가 LEVEL D를 입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오가야 했다. 

 


두 번째 해야 할 일은 확진자를 분리한 뒤 남아 있는 나머지 입원 환자, 보호자에게 해당 병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으니 일주일 동안 외부 출입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하는 일이었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만큼 이 과정이 제일 힘들고 마음이 아팠다.

 


“이 좁은 병실에서 일주일이나 갇혀 있으라고요? 여기가 감옥도 아니고 그냥 퇴원시켜 주세요!”

“커튼만 교체하고 제대로 소독도 안 하지 않았어요? 장기 이식 환자보고 코로나 확진자가 있었던 병실에 있으라는 소리가 말이 되나요?”

여느 날처럼 오늘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확진자와 하루 넘게 지냈기 때문에 병실 소독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지만 성난 환자들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

 


물론 그들의 억울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도 밀폐된 공간에서 확진자가 있었던 공간에 있으라고 하면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내 집보다 깨끗하게 소독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다. 이미 의료진뿐만 아니라 감염관리실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는 마찬가지로, 확진자가 발생할 때마다 병실 소독과 공조기를 가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의 통제력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2020년 초반,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직 미지의 대상이었을 당시 대구,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로 확진자가 발생했다. 의료 강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한 지역의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된 일은 전무후무한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전국에 있는 의료진들이 자원봉사를 자처했고, N95 마스크와 고글 자국으로 얼굴 곳곳에 흉터가 난 의료진 모습이 실시간으로 중개되면서 모든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의료진들의 노고에 찬사를 보냈다.

 


이러한 시기에 ‘덕분에 챌린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챌린지’는 코로나19 진료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의료진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고마움과 존경을 담은 수어를 사진이나 영상으로 표현하는 국민 참여형 캠페인이다. ‘덕분에 챌린지’가 성행하면서 간호사 직업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용감히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군인처럼 사람들이 코로나바이러스에 맞서 싸우는 의료진들을 코로나19 영웅이라며 치켜세울 때마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비록 최전선은 아니더라도 병원 일선에서 일하는 나도 작은 영웅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사명감이 가슴속에 치오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될수록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누군가 확진되면 휴일에도 불려 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정해진 근무 시간은 보장되지 않았다. 말없이 한 명이 사라지면 남아 있는 사람들로 어쩔 수 없이 그 공백을 메워야 했다. 

 


오래된 신화를 보면 영웅에게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난과 시련이 따랐다. 그 영웅은 눈 앞에 펼쳐진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해나갔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승리를 쟁취했다. 그러나 의료 전선에는 승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에게 늘 새로운 감염병이 찾아왔듯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또한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 것처럼. 

의료진들은 영웅이니 전사니 칭송받길 원하지 않았다. 이미 신종 감염병은 민간에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개인의 희생에 기대기보다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과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가 절실한 때였다. 

 


간호사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족한 인력을 쪼개고 쪼개서 확진자를 보는 사람 따로, 노출 환자를 보는 사람 따로 배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가 확진자를 담당할지가 문제였다.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나 한 번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적 없는 사람들이 많아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제가 할게요.” 

모두들 주춤하는 사이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괜찮겠냐는 눈빛에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어차피 저 확진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괜찮아요.”

한창 간호사 수가 부족한 시기에 누구 한 명이라도 확진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가면 부서에 큰 피해였다. 확진 후 얼마간은 증상이 계속되어도 검사상 양성이 나올 수 있어서 PCR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혼자 살고 있기도 하고. 누가 보더라도 내가 적임자였다.

 


하지만 예상외로 가장 힘든 일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온종일 LEVEL D를 착용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확진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일이었다. 입원 전날 PCR 검사를 하고, 일주일마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검사를 받았는데 왜 본인들이 걸렸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격리 기간 내내 입술을 불룩 내밀었다. 심지어 어떤 환자는 간호사들 때문에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다며 병원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지금 순간에도 간호사를 비롯해 일선에 일하는 의료진들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와 고군분투하며 가족 또는 친구들을 거의 보지 못한 채 병원에 매달려있다. 혹시나 본인이 확진자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될까 걱정하며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포장해서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쉽지 않겠지만 환자와 의료진들이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한발 물러서 서로를 이해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

“뭐가 그렇게 불만이래요? 그럴 거면 자의 퇴원하라고 해요.” 

어느 날 담당 의사가 확진자 병실을 나서며 진저리치듯 말했다. 평소 의료진들에게 적대적인 환자가 코로나에 확진되어 모두가 긴장 상태였다. 간호사에게 한바탕 큰 소리를 내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의사에게도 모진 소리를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식 환자인데 이대로 퇴원시켜도 되는 건가. 나의 걱정스러운 눈빛을 읽었는지 그는 모니터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환자도 동의했고, 내일 아침까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퇴원 준비만 해주세요.”

그 말이 사실인지 환자는 퇴원 설명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환자가 화를 냈던 이유는 사실 퇴원하고 싶은데 우리가 치료를 명목으로 붙잡아둔 것이 아니었을까? 퇴근 후에도 내일 환자가 퇴원할지 안 할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오후. 출근 전 담당 환자를 확인하던 찰나 퇴원한 줄 알았던 그 환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묻자 데이번 간호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식 환자는 아파도 받아주는 병원도 거의 없으니까 여기 있겠다고 한 거죠. 저는 그럴 줄 알고 퇴원 약도 미리 반납했어요.”

환자가 퇴원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병실에 들어서자 홀로 창밖을 내다보는 뒷모습이 보였다. 나를 볼 때마다 눈을 부릅뜨며 사소한 실수를 찾아내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하루 만에 삶의 의지마저 모조리 빼앗긴 사람의 모습이었다.

 


코로나에 확진된 이식 환자는 3일 동안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시간에 항바이러스제인 렘데시비르(베클루리)를 투여받아야 했다. 부득이 퇴원하거나, 렘데시비르에 부작용이 있는 경우 조심스럽게 다른 약을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이식 환자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하기 때문에 진통제 한 알도 맘대로 복용할 수 없다. 그래서 환자가 아무리 격리 생활을 힘들어해도 그나마 효과가 인정된 렘데시비르 투약이 끝날 때까지 퇴원시키지 않으려는 것이 의료진의 입장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국내에는 경구용 항바이러스제인 팍스로비드 복용 사례가 많지 않아 원내에서는 집중 관찰이 필요 없는 일부 환자에게만 처방하고 있었다. 

 


의사에게 퇴원하라는 이야기를 들고 그는 오랜 시간 고민했으리라. 퇴원하자니 혹시 모를 경구약 부작용이 무섭고, 퇴원을 무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그러다 화를 거두고 현실을 마주한 그는 마지막까지 버릴 수 없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존심을 져버리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그의 마른 등을 쓰다듬었다. 우리에게 수많은 환자가 있지만, 그 한 명의 환자에게는 우리가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면, 아무리 미운 말을 들어도 그들을 미워할 수가 없다.

 


 

/

2년이 지난 지금, 한때의 코로나19 영웅은 어떠한가. 한창의 뜨거운 열기가 다소 사그라들었다고 한들 코로나 확진 환자를 간호하는 나에게는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 속 이야기 같다. 

 


장갑을 두세 겹 착용해서 손이 둔해진 탓에 평소에 잘만 하던 정맥주사에 실패하거나 가운에 걸려 미끄러질 뻔한 모습을 보일 때면, 나의 사소한 실수 하나가 나보다 더 능수능란한 분들까지 욕되게 하는 것 같아서 괜스레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언제 어떤 일로 민원이 들어올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일이 많다. 

 


항상 유니폼을 입으면 슈퍼맨이 된 마냥 두려울 것 없던 내가 민원 하나에 벌벌 떨게 될 줄이야. 그 배경에는 기가 차고 코가 찰만한 민원들이 있었다. 종종 커피(반드시 에스프레소로 내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일 것!)나 담배 심부름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단연 ‘수면 양말 사건’이다. 

그날은 유독 병동이 시끄러웠다. 간호사들이 옹기종이 모여들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무슨 큰일이 났냐며 묻자 친한 후배가 이것 좀 보라며 모니터를 가리켰다. 병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익명의 민원이었다.

 


‘밤마다 간호사들 발소리로 잠을 못 잘 지경이니까 간호사들에게 수면 양말을 신으라 하세요.’

 


일반인들도 볼 수 있는 게시판인 만큼 병원 수뇌부에서는 이 민원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수면 양말을 신고 미끄러질까봐 조심스럽게 걷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양말은 개인이 고를 수 있나? 두툼하면 발이 덜 아프겠지? 



“지금 간호부에서 대체 간호사를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따위 민원을 받아드릴 거냐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대요.”

내가 바보 같은 상상을 하는 사이 그 후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하게도 며칠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서 생각해봐도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반나절 다리가 퉁퉁 부어도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간호사들에게 발소리가 거슬리니 수면 양말을 신으라니! 웃고 넘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간호사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저마다 크기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한다. 사명감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책임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월급을 받고 일하는 수많은 직종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진들은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저마다 사명감을 가지고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만이 병원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간호사가 간호사를 포기하는 이유는 사명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열악한 근무환경, 불공평한 대우, 악성 민원, 스트레스…….



오늘도 여러 가지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병원을 떠난다. 내일도 마찬가지겠지. 누군가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나는 간호사라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라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말할 것이다. 사명감으로 버티기에 병원은 너무도 가혹한 공간이며, 저마다의 한계는 명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출근하지만, 오늘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다. 아직 나의 한계는 다다르지 않았지만 먼저 떠난 이들처럼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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