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일기
"이럴 줄 알았으면 수술 안 받을 걸 그랬어."
오늘도 볼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건강하시려고 수술받으셨잖아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며칠만 지나면 오늘보다 훨씬 더 나아질 거예요."라며 애써 환자들을 다독인다.
외과 병동에서 일한 지 6년이 넘은 지금은 힘든 수술 후 환자들의 한탄 섞인 말들을 들으면 그들의 말보다 마음이 들린다. '평소보다 조금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암이라니. 의사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해서 수술받았다지만 너무 억울해.', '아들딸한테 간을 받았는데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 맞는 건가.' 유독 의욕 없이 병실에 누워만 있는 환자들과 이야기해보면 그들 내면에 저마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병동으로 이동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환자들의 투정 아닌 투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응급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들어선 사람들로 밤낮 구분 없이 가득했으며,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었다. 심장이 뛰지 않아서 심폐소생술을 받거나,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어서 기계 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들의 조그마한 틈도 보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응급실에서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렵기 마련인데 살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선택이라는 이유로 환자들의 불안한 눈동자를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나 간이식외과 간호사로 일하면서 입원부터 퇴원까지의 기나긴 여정 동안 환자들이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달라질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수술은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 큰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수술 후 달라진 신체 변화에 그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고, 전신마취 후유증으로 의식이 변해 몇 년이 지나도록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수술만 받으면 끝날 줄 알았는데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상황에 실망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저랑 같은 수술을 받은 사람들은 언제쯤 회복이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내심 당황스럽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사람에게 회복은 삶을 되찾는 것이 회복이며, 암 환자에게 회복은 완치판정이 된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를 ‘회복’이라고 정의하는지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 달라요. 환자분께서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요.”처럼 누구나 김빠지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의학 기술의 발달로 환자들은 질병의 경과와 예후에 따라 다양한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선택과 책임은 환자의 몫이지만 의학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에게 무작정 치료 방법을 정하라는 것은 절벽 아래로 등 떠미는 것과 똑같다. 간호사의 역할은 절벽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아 환자들이 안전하게 절벽을 넘어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담당 간호사로서 환자들이 어떤 선택을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경우 내 가족처럼 생각해서 함께 고민을 나누고 두려움을 덜어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오랜 기간 함께한 만큼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다.
4번째 간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였다. 중학교 전까지는 누구보다 밝고 활발한 아이였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잦은 피로감과 식욕 저하로 찾아간 병원에서 ‘원발성 경화성 담관염’을 진단받았다고 한다. 원발성 경화성 담관염(Primary Sclerosing Cholangitis)은 염증성 질환으로 만성적인 염증이 진행되면서 담관의 울혈을 초래해 간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으로 간이식 수술만이 유일한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분은 결국 아버지, 어머니를 거쳐 한 살 터울 여동생에게 간을 받았다. 그마저도 일 년 만에 재발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뇌사자 간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려왔던 퇴원을 해도 며칠 만에 고열로 다시 응급실을 통해 입원을 반복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환자는 놀랍게도 무덤덤했다.
그런데 특별한 순간이 찾아왔다. 퇴원 전날 병동에 담당 간호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는데 뇌사자가 배정(allocation)되었으니 퇴원을 미루어 달라는 것이었다. 바로 환자에게 설명하고 우리 모두 뇌사자의 장기 적출(harvest)을 기다렸다. 실제로 뇌사자의 간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이식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적출팀에게 연락을 받기 전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뇌사자의 간 상태가 양호하다는 연락을 받았고 환자가 동의하면 바로 수술이 진행될 터였다.
교수님이 직접 환자에게 찾아가 4번째 수술인 만큼 성공하기 쉽지 않고, 그 확률조차 50%라고 설명했다. 50%의 확률은 절대적으로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환자의 예후를 고려했을 때 이번 기회에 수술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씀하셨다. 선택의 시간으로 1시간이 주어졌다. 장기 이식 수술은 ‘허혈 시간(ischemic time)’이 매우 중요하다. 허혈 시간은 적출된 장기가 혈액 공급을 받지 않은 시간을 말하는데 말 그대로 촌각을 다투는 골든 타임이 된다. 약속한 1시간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빗발쳤다. “그분 수술받으신대요?” 나는 머뭇거리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전날 밤 수술 가능성에 대해 들었지만 반나절 만에 큰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병원 측에서 빨리 포기 의사를 밝혀야 다음 순위의 환자가 이식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환자가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바심이 났다. 이 순간에도 시간을 흘러가고 있었다.
“결정하셨나요?” 나는 눈가가 빨개진 채로 하릴없이 복도를 오고 가는 보호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환자의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내 마음은 아이가 수술을 받았으면 하는데 본인의 의사가 더 중요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 또한 목이 메었다. 만약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어머니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말을 전하면 좋을까 한참 고민한 끝에 입을 떼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기다리면 다시 한번 뇌사자가 배정될 기회가 올 거예요. 사람은 마지막이라고 하면 더 촉박하게 느껴지고, 그러다 보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니까요. 오롯이 환자의 행복만 생각하세요.”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결국 환자는 이번에 수술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너무 힘들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간절한 말과 달리 여느 때처럼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끄럽지만 나에게는 건강과 행복은 동일 선상에 있다고 여겼던 적이 있다. 건강이 나쁘면 행복과 거리가 멀어지고, 건강을 되찾으면 다시 행복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과 행복은 비례관계가 아니다. 몸이 아프더라도 행복할 수 있으며 반대로 신체는 건강해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분들을 통해 행복은 어떤 선택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의학적인 이유를 대며 환자에게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질병의 치료보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다양한 선택을 한다. 어떠한 선택이든지 후회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우산을 챙겼는데 날씨가 맑다든지, 유통기한이 고작 며칠 지났다고 별 탈이 있을까 싶어 마신 우유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든지 말이다. 우리에게 미래를 관통하는 예지력이 없으니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 당시로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통해 행복해지리라 믿기 보다는 행복을 선택하는 자세를 가지면 어떨까?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더라도 나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이번 교훈을 통해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매일 능동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끌려다니는 삶이 아닌 행복해질 권리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땅의 모든 간호사가 그러하듯 나 또한 유니폼을 입기 전에 거울을 보며 항상 다짐한다. 환자의 행복은 곧 나의 행복이며, 그들 곁에 누구보다 오랫동안 머무는 간호사가 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