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실섹시 Dec 10. 2023

30대의 삶 - 7

가장이 바로서야 가정이 바로선다

나는 월요일을 좋아한다.

주말동안 쉼을 통해 비축해둔 체력으로 활기차게 생산활동을 시작하는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잘 정비된 체력이 일주일동안 유지되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월요일 하루만의 노동삯으로 소진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이나 수요일즈음이 가장 피곤하고 힘이드는데, 그 이유로는 지나간 주말을 떠올리며 위안을 삼기에도, 주말까지의 남은 날들을 손꼽으며 버티려 해도 너무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런 피곤함에 신음하던 몇주전의 끔찍한 요일 중 하루였다.

아침 일정을 마치고 두번째 일정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끔찍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듣게 된 노래. Avicii의 The nights 라는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UtF6Jej8yb4 


나는 오래전부터 이 아티스트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 사람의 노래는 전부 다 들어봤고, 제목도 모두 알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이 노래는 나에게 아주 친숙하고 익숙한 노래다. 늘 아무 생각없이 듣고 넘기던 이 노래의 가삿말이 그 날따라 유달리 귀에 감겨 들렸다. 한마디 한마디 들어가다가 울컥해서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아빠는


나는 위로 누나가 셋이다. 사남매 집안의 막내 아들이다. 누나들과 나이 차이도 꽤 난다. 내가 태어났을때 우리 부모님은 40대셨다. 소위 말하는 '귀한 아들'의 표본같은 환경에서 자랐다. 


다른 가족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구성원들끼리의 유대관계가 꽤 돈독한 편이다. 나는 우리 엄마와도, 우리 누나들과도 친하고 깊이있게 소통하며 지내지만 아빠와는 뭔가 특별한 유대관계가 있다. 그것은 아마 집안의 분포된 다수의 성별과 다르다는 공통점에서 맺어진게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우리 아빠는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셨기 때문에 내가 더 우리 아빠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삶에 우리 아빠같은 모습의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 아빠는 50년대 생이시다. 아빠는 그때 당시의 대다수 집안이 그랬듯, 어려운 집안에서 어려서부터 늘 주경야독을 하며 학교 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엄청난 체력으로 어려서부터 성인의 삯을 받으셔서 집안의 가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셨던 우리 아빠는 늘 삯을 받으면 모조리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그렇게 소처럼 지독하게 일만 하다가 학교에서 소풍가는 날 어렵사리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나한테는 할아버지)한테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먹게 10원만 주시면 안되겠냐고 어렵게 꺼낸 말에 부모님께 먼지나도록 맞고 모욕적인 언사를 당하며 소풍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다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해달라는 것을 모두 해주기로 했다고. 돌이켜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아빠에게 철딱서니 없게 요구했던 대부분의 것들을 우리 아빠는 별 말 없이 늘 수용해주고, 응해주었다. 우리 아빠는 자신이 결심한 것을 실제로 일궈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빠를 존경한다. 


우리 사남매가 태어난 이후에 우리 부모님의 삶에는 본인들이 없었다. 한 가정의 수호자로써 본인들의 삶을 모조리 희생한 우리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키울때 '귀한 내 딸 혹은 아들'은 본인들과 같은 학대 혹은 희생은 없기를 바라며 우리를 키우셨다. 그리고 이런 기조는 내 또래들의 부모님들 다수도 그러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오냐오냐 자라며 철부지 어린애처럼 부모님께 이것저것 요구하고 떼쓰던 내가 어느새 결혼을 고민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내가 보고 자란 우리 부모님의 십자가를 내가 쓸 때에 이르니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한다는 것은 집단 혹은 무리를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중요하고 기본적인 '무리' 형태라고 생각한다. 혼자된 인간의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직 젊고, 사회적인 기능에서 도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선택과 신념을 존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선 내가 우리 아빠를 보며 배운 '가장'으로써의 기능을 잘하는 것이 앞으로 내 삶에 중요한 숙제다. 그래서 밤낮없이 일하며 혼자의 삶 그 이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태도의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 언급한 노래에 울컥했다. 그날따라 유독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해야될 일은 왜 끝도 없는가, 도망 치고싶다'는 생각이 몰려오는 와중 노래의 가사가 주는 메세지가 마치 우리 아빠가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He said, "Go venture far beyond the shores. Don't forsake this life of yours. I'll guide you home no matter where you are."
 
One day my father—he told me, "Son, don't let it slip away."
When I was just a kid I heard him say, "When you get older Your wild life will live for younger days Think of me if ever you're afraid."



내가 요구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손쉽게 해결해주시던 슈퍼맨 같던 아버지가 노쇠하심에 따라 점점 작아져 가시던 것을 피부로 느꼈던 때가 기억이 난다. 지금의 우리아빠는 슈퍼맨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의 많은 기능을 상실하신지 오래 되셨다. 그러나 우리 아빠는 가장으로써 취해야 할 정신과 태도를 유산으로 나에게 물려 주셨다. 우리 아빠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수도없이 도망치고 싶으셨던 순간이 있으셨을테다. 뭐 사실 실제로 몇번 도망치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빠는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늘 심기일전 하셨고, 늘 희망을 잃지 않으셨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 아빠는 가정을, 그리고 우리 엄마와 누나들과 나를 지키기 위해 자신만 믿으라고 하신다.


작가의 이전글 트레이너의 기본소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