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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Sep 08. 2024

30대의 삶 - 25

생산자와 수호자 

몇 달 전, 열댓 명 정도의 무리와 함께 MT를 갔었다.


보통 이런 MT를 가게 되면 신이 나서건, 경험의 부재의 이유에서건, 거의 열이면 열의 경우에 장을 봐간 음식과 술이 남는다. 나는 전날 마지막까지 사력을 다해 술을 마시다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씻고 나왔는데 무리 한 명이 프레시백에 본인 자취방에 필요한 남은 식자재를 새것처럼 깔끔하게 포장해서 챙겨가는 걸 목격했다. 생각해 보니 그 친구, 술자리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었다. 본인 체력을 위해 적절한 타이밍에 빠진 것이다. (아님 말고)


나는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었다. 사실상 2시경에는 모두가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밤을 붙잡고 늘어졌었다. 추억과 아쉬움을 핑계 삼아 독극물에 몸을 절여내며 혹사시킨 탓에 공금으로 구매하여 개꿀 아이템을 살뜰히 챙긴 그 친구와 대조적으로 나는 라면 한 봉지는커녕 휴대폰, 시계, 전자 담배등의 충전 선이 주렁주렁 달린 약 5만원 상당의 휴대폰 충전기를 놓고 올 뻔했다.




나는 천성적으로 좀 덤벙거리는 편이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거나 망가뜨리는 한편, 부주의하게 행동하다 다치거나 몸을 과도하게 혹사하여 잔병치레도 잦은 편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불나방처럼 살아가던 망나니 시절의 20대보다는 확실히 그 빈도가 줄어들기는 한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부주의한 스스로를 하루 곳곳에서 목격하여 하루의 말미에 머리를 감다가 말고 '그때 그러면 안 됐는데'라는 생각에 괴성을 지르며 애꿎은 두피를 혹사시킨다. 매일 더 완전해지는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에 비해 비슷하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마주하면 스스로가 상당히 한심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웬만큼 누적된 사회생활과 세월을 통해 학습한 지혜로 나는 '수습'의 처세술을 체득하게 되었다. 잃어버리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찾았고, 망가뜨리면 어떻게든 고쳐냈다. 그리고 수습을 하지 못할 일들은 되도록 벌리지 않거나, 잃어버려도 대미지가 없는 물건들 위주로 구매를 한다. (아직 다치고 아픈 것은 통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실 체득하게 되었다기보다는 연단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같다. 애초에 나는 기질적으로 철두철미하게 챙기고 검토하는 것보다는 수습과 해결의 역할에 최적화되어 있는 캐릭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덤벙대는 기질의 사람이 최소한의 사람노릇을 하기 위해 체득하게 된 처세술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직장을 떠나 사업을 전개하면서부터 더 이런 특성이 도드라지게 된 것 같다. 면밀하게 준비하려고 데이터를 쌓으면 쌓을수록 너무 과해지는 정보량 때문에 더 혼란만 부추기는 느낌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더군다나 아무리 빈틈없이 준비해도 늘 변수가 발생했다. 그래서 더 꼼꼼하게 챙기려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그래서 일단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지르고 수습하기를 몇 번. 말이 좋아 사업이지, 사실상 도박에 가까운 일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최적화시킨 탓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현재까지는 결과적으로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다.


다만, 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지난 행적을 돌아보니 이런 식으로 저지르고 수습하는 방식에서는 상당히 많은 손실이 발생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조금 알아보고 면밀히 살펴봤다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꼼꼼하고 살뜰하게 챙겼다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던 몇몇 상황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다수의 시작에 앞서 한 번씩 가볍게 두들겨 맞으니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서기 앞서 데미지가 누적된 상태로 진입한다. 그러니 게임에서 기대수익보다 저조한 수익을 달성하거나, 기대수익에 도달하더라도 이미 누적된 데미지 때문인지 수익이 석연찮게 느껴진다.


사업가라면 기회를 맞닥뜨렸을 때 적절한 타이밍에 저지르는 야인의 면모도 필요하지만, 자기 것을 살뜰하고 야무지게 잘 챙기는 것도 그것만큼이나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자기 것을 살뜰히 챙기는 친구, 직업은 또 자산관리사다.

직업병인지 성향이 그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는 아주 꼴사나울 정도로 살뜰히 자기 것을 챙기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본다. 내가 가진 '수습'의 캐릭터와 상당히 대조적이라 과연 내가 갖출 수 있을까 싶지만 노력하다 보면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타협된 나만의 캐릭터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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