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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Oct 13. 2024

30대의 삶 - 27

완전을 추구하는 삶의 이면

잠실섹시라는 예명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만들게 된 이름이다.

장난스레 짓게 되었지만 입에 착착 감기기도 하고, 섹시 앞에 다른 지역명이 붙었을 때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탓에 깨나 잘 지은 이름으로 여겨 2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섹시'라는 단어의 의미 그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고 있다.


처음 나의 별칭을 들으면 우스워하거나, 나의 외모적 (선이 굵고 강한) 특성 탓에 이미지가 왜곡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긴, 30대 중반의 나이의 성인이 스스로 섹시 타령을 하고 있는데 꼴사납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이다. 다만, 내가 오랜 시간 그 별칭을 영위하며 누적된 고민의 무게를 인지한다면 썩 우습게만 여기지는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인지로 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에게 구태여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라고 하지만 지금 그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고 있다 데헷


나에게 섹시함이란 지덕체의 균형이 잘 잡힌, 비교적 완전하고 세련된 형태의 삶을 사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섹시하게 살고자 했던 남자로 기억되고 싶고, 묘비에 그렇게 기록하는 것이 내 꿈이다.

삶에 어떤 추상적인 목표가 있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 되는 필수적인 가치라고 생각한다. 존재는 원래 불완전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삶 또한 불완전하다. 그 혼돈 속에서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특정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것이 불완전한 삶을 자살 없이 유지하게 되는 본질적인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관념적 추구는 물리적인 성과로 평가되기 어려운 영역이다 보니 정도가 지나치면 한 번씩 인간을 지치게 만든다.


완전한 삶의 가치는 사회와 인간에게 인정받는 정도가 그 척도가 되고는 한다.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욕망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드러내는 sns의 중독과 부딪혀 내 삶의 불완전성을 마주하면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이상적인 어른으로 살고 싶은 욕망에 노력을 거듭해도 늘 마주하는 형편없는 스스로가, 그 평가의 주안점을 늘 사회에 입각한 타인의 시선에 두고 있다 보니 가끔 내 삶의 주인이 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잘 살고 싶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삶의 욕심.

그 기준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정한 범주 내에서 노력하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흡족할만한 기준을 명확히 하려고 해도 늘 '남들보다'를 떠올리게 되는 아이러니와 부딪혀 요즘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지 잘 모르겠다. 


소크라테스인지 아폴로 신전에 쓰여있던 문구인지 모를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의 깊이가 더없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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