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saengwriting Oct 25. 2020
10학년 여전히 베노아 공립 고등학교에서
10학년, 이때부터 아이들은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부모들도 아이들의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사립이나 특수 고등학교로 아이들을 옮기는 경우가 생겨났다. 나도 살짝 동요되었지만 찰리는 여전히 이 학교를 계속 다니면서 12학년 때 학생회장이 되고 싶은 포부를 다시 한번 이유로 들며, 공부는 자신이 알아서 잘하겠다며 나를 설득시켰다.
고등학교로 들어온 8학년부터는 학교 관련 모든 선택권을 아들에게 맡겼던지라 아들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나는 아들이 공부하는 데에 있어서는 한 번도 재촉하거나 강요해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는 자신이 알아서 하는 거라고, 엄마는 할 만큼 알아서 했으니까 너도 공부는 네가 알아서 하고 싶은 만큼 하라고 말했었고 그래서 공부하라는 소리는 단 한 번도 아들에게 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는 공부만 강요하신 옛날 분이셨다. 티브이도 만화책도 못 보게 했었고 그냥 공부만 하라고 엄청 강요하신 분이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방식을 싫어했기에 나는 아들에게 공부는 절대 강요하지 않았고 엄마랑 거실에서 놀자며 자신의 방에서 공부하는 아이를 자주 불러내서 방해는 종종 했었다.
나는 아들이 어릴 적부터 한 달에 한번 시립도서관에 가서 20권 이상의 책을 빌려와 매일 읽었었고 특히 방학 때는 이주에 한 번씩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밤새 책을 읽기도 했었다. 낮에는 몇 시간씩 앉아 그림도 많이 그렸고 그러면 어린 아들 찰리는 '엄마 또 책 읽어요? 엄마 또 그림 그려요?' 하며 몇 시간씩 책 읽고 그림 그리는 나의 옆으로 책을 가져와 같이 앉아 읽기도 하고 스케치북을 가져와 내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아들도 그렇게 그냥 습관이 들어버린 것 같다. 엄마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면 몇 시간 동안을 자신을 보지 않고 집중하니 아들도 그런 시간에는 자신도 공부나 책이나 뭐든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할 몇 가지들이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아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알아서 잘하겠다는 찰리의 말을 믿었고 그래서 좋았다.
테니스 시작
10학년부터는 축구 대신 테니스로, 단체 운동이었던 축구에서 개인 운동으로 바꿨으며 운동 욕심이 큰 아들은 테니스를 더 잘하기 위해 개인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웠다. 엄마인 나도, 찰리도 테니스가 축구보다 훨씬 비싼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하고는 알게 되었다. 나는 아들에게 '미리 알았으면 권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테니스를 먼저 권한 나의 실수니 감당해야지' 하며 우스게 소리를 한적도 있었다.
월반의 기회가 또 주어졌다.
아들에게 또 한 번의 월반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전과 같은 이유로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하지만 10학년부터 시작되는 화학 과목에서 시범 운영방식인 10학년 중 8, 9학년 때 과학 과목 성적 A 이상의 아이들 몇 명만을 뽑아서 11학년 화학 수업을 듣게 했다. 그래서 화학 한 과목만 11학년 수업을 듣게 되었고 나머지는 10학년 수업을 그대로 받았어. 그렇게 한 과목은 일 년을 뛰어넘어 12학년 때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한 과목이 빠지니 학교 수업 부분에서는 여유가 생겼으나 대학 강의를 하나 들을 수 있는 특혜를 얻어 점심시간을 이용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오가며 나는 일 년 동안 운전기사 역할을 했던 기억이 난다.
Honors Student
그리고 10학년 때부터는 9학년 때 6과목 모두 A를 받아 '영예스러운 학생'으로 특별 시스템이 뽑혀 학교에서 관리받기 시작했다. 아들은 영예스러운 학생으로 뽑혔고 아들 앞으로 한 명의 멘토가 또 생겼다. 전 학년 때 생긴 멘토와 영광스러운 학생 그룹에 뽑혀 두 명의 멘토가 아들에게 배정되었다. 이 멘토들은 멘티들에게 생기는 학교에서 받는 불편함이나 대학 진로 등을 언제든지 상담해주고 해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해 주었다.
바이올린은 접고 색소폰만
바이올린은 10학년에 들어와 그만두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공부에 치중하고 싶어 진 아들의 결정이었다. 아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7년 동안 했던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색소폰은 지금까지 여전히 아들의 취미생활로 완전히 자리 잡고 있다.
10학년이 되자 색소폰으로는 최고의 실력자들만 모아 만들어지는 그래서 주로 11학년과 12학년으로 멤버들로 이루어진 빅 밴드부에 10학년인 아들도 뽑혔다. 그리고 색소폰 개인 레슨을 한 번도 받지 않고 혼자서 연습하여 3등급, 5등급 시험을 쳐서 A+을 받자 밴드부 총책임자인 선생님이 어느 날 직접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 등급인 6등급 시험을 위해 찰리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해 왔다. 그때까지는 악기 레슨을 위해 돈을 써 본 적이 없었고 누군가 나의 아들을 공부가 아닌 악기를 가르쳐 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해 온 적이 없었기에 그 당시 나는 꽤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전에도 초등학교 때 색소폰을 좀 더 고려해 보라는 말을 들었었고 레슨을 넣고 그쪽으로 재능을 길러주라는 제안을 음악 선생님들에게 여러 번 받았지만 악기는 취미라는 원칙대로 아들도 별로 원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도 색소폰이라는 악기에도 욕심 생긴 모양이었다.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그래서 6등급을 위한 일주일에 한 번 서너 달 개인 레슨을 받았고 6등급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받았다. 그렇게 짧게 레슨을 받고는 크라니넷이 전공인 밴드부 선생님은 자신의 소지한 색소폰 6등급으로는 찰리를 더 이상 가르칠 실력이 되지 못해 짧은 몇 달간의 악기 사교육은 막을 내렸다.
호주에서는 6등급을 취득하면 그 악기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꽤 높은 실력을 성취한 것이었다. 나는 아들이 5등급 뒤 7등급 시험 준비를 원했지만 6등급부터는 어려워진다는 밴드부 선생님의 권유로 6등급을 준비했었고 직접 준비시키고 가르쳐보고 시험을 치르는 찰리를 보고는 선생님도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인정하셨다. 7등급으로 뛰어넘어도 모자라지 않는 실력이라고 미안하다고 시험 치는 곳에서 만난 나에게 직접 고백하셨다. 하지만 나는 6등급 시험을 준비하는 아들이 등급 시험을 위해 연습한 지정곡 2개와 자유곡 한곡을 연습하는 몇 달 동안 너무 행복했었다. 지금까지 들어본 곡 중에서 아직까지도 제일 마음에 드는 곡이기 때문이었다. '아리아'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소폰 곡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한국 고학년들의 시샘
이때까지 몇 번의 월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이 있었다. 10학년이었지만 11학년 화학 수업을 받으며 11학년을 제치고 최우수 성적을 받으니 그 학년 아이들의 시샘을 2년 동안 그 학년들이 졸업할 때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한 학년 낮다고 덩치가 작지도 않았고 공부도, 스포츠도, 악기도 잘하는 아들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고 아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미움받은 재미있는 사소한 사건들로 이야깃거리를 더해주는 해프닝 정도로 치부해 버리며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왠지 한 살 많은 형들에게 미움받는 찰리가 안쓰러웠고 또 나름 한 학년 높은 11학년들이 받는 고통도 이해가 되었다. 분명 화학 선생님의 역할도 있었을 거라는 짐작이 된다. 찰리가 윗 학년을 이기니 찰리를 이용하며 비교하며 윗 학년들에게 당근이 아닌 채찍을 쓰셨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엔 웬만하면 월반보다는 같은 또래 학년끼리 경쟁하며 어울리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다시 한번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