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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jjoo Aug 06. 2019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The Art of Bel Far Niente

50분 동안 힘겹게 요가를 하고 나면 3분 정도 매트 위에 대자로 누워 사바사나Savasana라는 휴식을 취한다. 사바Sava는 ‘시체’라는 뜻이다. 즉, 시체처럼 몸과 마음에 완전히 힘을 빼고 쉬는 것이다. 가끔 요가 선생님은 이때까지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인 이유는 바로 이 사바사나를 위해서라고 말하곤 했다. 그만큼 휴식은 우리 몸과 마음에 중요하다. 


그런데 사바사나는 ‘휴식’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사바사나를 하는 동안에는 머리도 비워야 한다. 비워질 리 없겠지만 말이다. 동네 요가원에서는 사바사나를 3분에서 5분 정도 하지만, 요가 선생님인 케이트가 말하길 10분 정도는 해줘야 한단다. 

3분도 못 참고 요가실에서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바쁘기 때문이겠지만, 50분 동안 열심히 움직여준 몸에 그 정도의 쉼도 허락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Foto : @gerihirsch

전한 휴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렇다. 

집에서 일하다 보니 딱히 휴식시간이 없다. 일하지 않는 동안에도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검색하거나, 머릿속으로 열심히 아이디어를 찾는다. 여유가 생기면 하릴없이 휴대전화를 손에 쥔 채로 먹방을 보거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화제의 글들을 읽는다. 몸은 쉬지만 머리는 여전히 풀가동이다. 왜 이렇게 쉬지 못할까?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법을 알고 있다. 누워서 멍때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낼 줄 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늘 일에 치이거나 텔레비전, 인터넷, SNS 같은 데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한 시간도 아무 일 하지 않고 보내기가 힘들다.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제대로 쉬지 못하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리자베스 길버트가 쓴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벨 파 니엔테(bel far niente)라는 달달한 표현은 ‘빈둥거림의 미덕’이라는 뜻이다. (중략) 그들에게 빈둥거림의 미덕은 모든 노동의 목표이자 가장 축하해야 할 최종 업적이다. 더 신나게, 더 격렬하게 빈둥거릴수록 인생에서 더 큰 성취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돈이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점심 먹고 난 뒤에 꿀 같은 낮잠,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마시는 에스프레소, 석양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한여름밤 담벼락 아래에 의자를 내놓고 친구 혹은 가족과 나누는 담소. 이탈리아인들 생활 곳곳에 이 ‘빈둥거림의 미덕’이 녹아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게으름이나 나태함이 아니라 휴식에서 오는 순수한 즐거움을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완벽하게 즐기고 음미할 줄 아는 능력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늘 빈둥거리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가 본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근면 성실했다. 단지 그들은 돈을 위해 삶의 여유를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이탈리아에서 몇 년을 살았어도 내게는 그 능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상태에 너무 익숙하다. 성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바쁠수록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남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시간에 가만히 쉬고 있으면 죄 짓는 기분이 든다. 사회적으로 뒤처진 낙오자가 되는 느낌이다.

 


장 근본적인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에 서투르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해야 할 목록’을 만든다.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나 해야 할 일들을 인터넷을 뒤져가며 열심히 찾는다.

명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늘 어딘가로 달려가려고 하는 마음도 가만히 멈추는 일이다. 마음을 없애려는 의지도 갖지 않는다. 의지로 하는 것엔 늘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어떤 것을 원하는 마음도 없어야 한다.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두고 열린 마음으로 그저 바라봐야 한다. 알아차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상을 하면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평온할 수 있다. 순간에 존재함으로써 어떠한 죄책감이나 불안도 갖지 않는다. 

늘 이런 상태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아니, 노력한다는 말엔 애씀이 들어가 있다. 예전보단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연습 부족이다. 이제는 ‘벨 파 니엔테’를 연습해야 한다. 

어쩌면 다시 한번 이탈리아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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