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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l 28. 2022

스탕달의 <바니나 바니니>와 이문열의 '이상한' 감상

윌라 오디오북을 통해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 '사랑' 편에 실린 스탕달의 단편소설 <바니나 바니니>를 들었다. 주인공인 바니니는 귀족 가문에 절세의 미모를 가진 19세의 여인으로 우연히 이탈리아 자유주의, 민족주의 지하조직인 카르보나리당의 열성당원이며 후에는 그 우두머리가 되는 비슷한 나이의 청년을 열렬히 사랑했다. 이 청년 또한 바니니를 사랑했지만 '조국'에 대한 헌신과 사랑은 그에 못지않게 간절했다. 이러한 사랑이 소설에서 다루어졌다면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바니니는 청년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그 청년을 제외한 카르보나리당 간부들을 모조리 잡혀 가도록 고발했다. 청년은 자신만이 남게 된 사실에 괴로워하며 자수를 하였다. 결국 소설의 막바지에서 쇠사슬에 묶인 청년에게 바니니는 자신이 고발자임을 밝혔고 그 청년은 격한 분노와 함께 그녀를 버린다.


자. 그 후 바니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스탕달은 마지막 단 한 문장으로 그 후의 바니니의 삶을 요약한다.

"그리고 신문은 그녀가 (아버지가 요구한 데로) 돈 리비오 사벨리 공작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는 이러한 결말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19세 여인이 정열적인 삶을 살아가는 혁명가 청년을 사랑하다가 좌절된 후에 이러한 결말은 당연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문열은 이 결말이 "충격적 반전"이라고 작품해설에서 말했다. 나는 이문열의 이러한 말이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아니, 그러면 그녀가 자살을 하거나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정상이란 말인가? 이문열은 여기에 이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바니니를 "사랑의 화신에서 영혼 없는 세속의 여자"로 떨어졌다면서 이 마지막 결말을 애석해했다.


도대체 이문열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바니니가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것에 대해 이처럼 혹독한 평가를 내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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