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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l 24. 2022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와 이문열의 지독한 오독

운동을 하면서 윌라 오디오북으로 이문열의 세계명작산책을 듣고 있다. '죽음'에 관한 중단편을 모아 놓은 한권을 다 듣고 지금은 '사랑'에 대한 중단편 모음집을 듣고 있다. 이 책의 여섯 번째에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가 담겨 있다.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의 원작자는 로버트 블로흐인데 아마도 그는 이 포크너의 단편을 패러디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거기서 영감을 얻었음이 틀림없다. 그만큼 이 포크너의 소설은 그로테스크한 여인의 삶을 담고 있다. 주인공 에밀리는 자신이 사랑한(?) 한 남자를 독살한 후 50년 동안 자신의 집 2층 침실에 두어 해골이 될 때까지 유지하였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에밀리가 죽은 후 마을 사람들이 그 2층의 방문을 부수어 열고 들어갔을 때이다. 그 장면을 포크너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The violence of breaking down the door seemed to fill this room with pervading dust. A thin, acrid pall as of the tomb seemed to lie everywhere upon this room decked and furnished as for a bridal: upon the valance curtains of faded rose color. upon the rose-shaded lights, upon the dressing table. upon the delicate array of crystal and the man's toilet things backed with tarnished silver, silver so tarnished that the monogram was obscured. Among them lay collar and tie, as if they had just been removed, which, lifted, left upon the surface a pale crescent in the dust. Upon a chair hung the suit, carefully folded; beneath it the two mute shoes and the discarded socks. The man himself lay in the bed.
그 문을 부술 때 자연히 거칠게 다루지 않을 수 없어서 온 방안에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무덤의 포장을 연상케 하는, 코를 찌르는 듯한 엷은 먼지의 장막이 신방으로 꾸며 놓은 이 방의 모든 것들 뒤덮고 있는 느낌이었다. 바랜 장미 빛의 침대 커튼 위에도, 장밋빛 전등갓 위에도, 화장대 위에도, 우아하게 늘어선 유리그릇 위에도, 그리고 호머 베론의 머릿글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퇴색한, 은으로 안을 입힌 남자용 화장도구 위에도--이 물건들 사이에 금방 풀어놓은 듯한 칼라와 넥타이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을 집어 들자, 먼지로 덮인 표면에 희미한 초승달 모양의 자국이 생겼다. 한 의자 위에는 단정히 개어 놓은 옷이 한 벌 결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구두 한 켤레와 벗어던진 양말 두 짝이 놓여 있었다. 사나이는 침대 위에 눕혀 있었다.


For a long while we just stood there, looking down at the profound and fleshless grin. The body had apparently once lain in the attitude of an embrace, but now the long sleep that outlasts love, that conquers even the grimace of love, had cuckolded him. What was left of him, rotted beneath what was left of the nightshirt, had become inextricable from the bed in which he lay; and upon him and upon the pillow beside him lay that even coating of the patient and biding dust.
오랫동안 우리들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채로 살이 다 허물어져 나간 해골의 깊은 쓴웃음을 내려다봤다. 사나이의 몸은, 한때는 포옹의 자세로 누워 있었던 모양인데, 지금은 사랑보다 더 영원한 쓴웃음마저 정복하고만 저 죽음이라는 긴 잠이 이 사나이를 간부(姦婦)의 남편으로 만들어 버렸다. 삭다 남은 희미한 잠옷의 흔적 밑에 엉겨 붙은 사나이의 썩다 남은 유해는 이제 그가 누웠던 침대에서 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사나이 위에도, 그 옆에 놓인 베개 위에도 참을성 있고 끈질긴 먼지가 덮개를 이루어 고루 뒤덮여 있었다.


When we noticed that in the second pillow was the indentation of a head One of us lifted something from it, and leaving forward, that faint and invisible dust dry and acrid in the nostrils, we saw a long strand of iron-gray hair.
그런 다음 우리들은 두 번째 베개 위에 사람의 머리 자국을 보았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이 그 베개 위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올렸다. 희미하고 눈에 안 보이는 메마른 먼지가 코를 툭 쏘는 것을 느끼면서 몸을 앞으로 기울였을 때 한 가닥의 기다란 철회색 머리칼을 보았던 것이다.


이 마지막 세 문단은 히치콕의 <싸이코>를 연상케 한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병적인 집착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히치콕의 '싸이코' 아들이 해골이 된 어머니 곁을 지속적으로 지켰던 것과는 달리 에밀리는 어느 순간부터 그 방을 방치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녀가 그 시체 곁에 누워 있기도 했다는 것은 '철회색 머리칼'을 통해서 알려준다. 그러나 문을 부수고 들어가야 했다는 것은 아주 오랜동안 그곳을 드나들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해준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의 이문열 선생께서는 에밀리가 죽기 하루 전까지 그곳에 들어가서 옆에 누웠다고 엉뚱한 작품 해설을 한다. 아마도 그가 그런 오독을 하게 된 것은 위의 첫 번째 문단에서 "이 물건들 사이에 금방 풀어놓은 듯한 칼라와 넥타이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을 집어 들자, 먼지로 덮인 표면에 희미한 초승달 모양의 자국이 생겼다. 한 의자 위에는 단정히 개어 놓은 옷이 한 벌 결려 있었다."는 다소 애매한 묘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문열은 무엇보다도 베개에 있던 '철회색 머리칼'을 증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에밀리의 머리칼이 철회색을 변한 것은 적어도 40년 전쯤이다. 다음의 묘사를 보자.


And that was the last we saw of Homer Barron. And of Miss Emily for some time. The Negro man went in and out with the market basket, but the front door remained closed. Now and then we would see her at a window for a moment, as the men did that night when they sprinkled the lime, but for almost six months she did not appear on the streets. Then we knew that this was to be expected too; as if that quality of her father which had thwarted her woman's life so many times had been too virulent and too furious to die. When we next saw Miss Emily, she had grown fat and her hair was turning gray. During the next few years it grew grayer and grayer until it attained an even pepper-and-salt iron-gray. when it ceased turning. Up to the day of her death at seventy-four it was still that vigorous iron-gray, like the hair of an active man.
그런데 우리가 호머 베론의 모습을 본 것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게다가 미스 에밀리의 모습도 그 후 당분간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흑인 하인만은 장바구니를 들고 드나들었지만 앞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 열릴 줄 몰랐다. 이따금, 잠깐 동안 그녀의 모습이 들창문 가에 비치곤 했지만--마치 그날 밤, 석회를 뿌린 사람들이 본 것처럼--거의 여섯 달 동안이나 그녀는 일체 거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우리들은 그럴 수도 있으려니 생각했다--그것은 여자로서의 그녀의 생활을 무참히 꺾어 놓고만 그녀 부친의 그 성품이 너무 지독하여 쉽사리 지워 버릴 수 없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에 우리들이 미스 에밀리를 만났을 땐 그녀의 몸은 뚱뚱해졌고, 머리칼은 반백이었다. 다음 2, 3년 동안 그녀의 머리는 점점 회색으로 바뀌었다가 마침내는 변색의 극한에 다다라 마치 후춧가루에 소금을 섞은 것 같은 철회색(鐵灰色)을 띠기에 이르렀다. 일흔 넷이라는 나이로 죽을 때까지 그녀의 머리 빛깔은 활동적인 남자의 머리칼과 같은 정력적인 철회색을 끝내 간직하고 있었다.


에밀리의 머리 색이 철회색이 된 것은 그녀가 호머 베론을 독살한 지 아무리 늦게 잡아도 4년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40년 넘게 머리 색깔이 철회색이었다. 그런데 이문열은 엉뚱하게도 이 철회색 머리칼로 보아서 에밀리가 "죽기 하루 전까지도" 해골이 된 호머 베론 옆에 누웠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한다.


이문열이 이처럼 오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에밀리의 호머 베론에 대한 변태적 집착을 미국 남부 귀족의 고귀한 자존심이 만들어낸, 다소 그로테스크하기는 하지만 소중한 사랑으로 추켜 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이문열이 왜 굳이 에밀리의 사랑을 고귀한 것으로, 그리고 미국 남부 귀족의 흔적은 마치 사라져서는 안되는 위대한 것인 양 만들려 하는가도 쉽게 이해는 간다. 그는 일찍이 전두환 시대에도 그들과 동행하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인물임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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