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달라스-마이애미-리마
저녁 비행기라 낮이 다 된 오전에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남미에 가면 10시간 버스를 타는 일도 허다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인천 공항으로 가는 4시간 버스는 버스 오래 타기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를 탔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AA 체크인 줄로 가서 보딩패스를 받았다. 비행기를 탄 지가 꽤 오래된 것 같아 처음 비행기를 타는 사람처럼 공항에 도착한 게 설렜다. 내가 진짜 홀몸으로 지구 반대편 남미에 간다는 사실이 이때까지만 해도 잘 믿기지 않았던 것 같다.
첫 비행기는 인천에서 출발해서 달라스로 가는 비행기였다. 10시간 정도의 비행기였는데, 여행 첫 비행기 치고도 꽤나 지루했던 것 같다. 바리바리 쌌던 짐들이 계속해서 신경 쓰이기도 했고, 비행기에 사람도 거의 다 차있는 데다 몇 년 만에 긴 여행을, 그것도 혼자 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한 가지 신기했던 건 예전에 비해 기내 영화가 굉장히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내가 유럽여행을 갔던 2013년만 하더라도 한글 영화가 고작 2-3편 정도에 오래된 영화만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과장을 조금 보태서 넷플릭스만큼의 영화 개수가 있었던 것 같다(인터페이스도 넷플릭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했다). 덕분에 노트북에 준비했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인천-댈러스 비행기에서는 라이온 킹, 어바웃 타임 이렇게 두 편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달라스 공항에서의 환승 시간은 2시간이었다. 2시간이란 시간이 여유로울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달라스에서 환승 과정이 생각보다 좀 복잡했다. 우선, 가장 큰 중요한 점이 짐을 다시 찾아 부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국 게이트를 나와서 다시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짐을 다시 부치기 위해 나는 체크인 카운터에 줄을 섰다. 우리나라 공항을 생각하며 금방 줄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항공사 직원들의 일처리 속도가 너무 느렸다. 후에 생각해보니 이미 나는 3개 비행기에서 모두 체크인되었고, bag drop에 짐을 바로 맡기면 됐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체크인 줄에 서있어야 할 것 같았다.
또한, 미국 내 국내선이다 보니 한국인이 많았던 인천-댈러스 비행기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보안 검색 과정 중에 신발까지 모두 벗어야 하는 등 보안 수준이 더 강력했다. 삼엄한 분위기 속에 실수로 여권이랑 보딩패스를 들고 통과했더니 보안검색대 직원들이 경멸스러운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이 곳은 서비스 강국 대한민국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실감했다. 기내 짐도 검색이 엄격한 데다가 일처리 속도도 느려서 환승하는 내내 불안했다. 비행기를 오랜만에 타니 Terminal과 Gate, 그리고 Seat도 조금 헷갈렸는데, sky line이라는 DFW 공항 내 전철을 타고 거의 시간에 맞춰서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달라스에서 마이애미는 2시간 정도 걸렸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후 당연히 짐을 찾지 않았는데, 다음 비행기 게이트 앞에까지 가서야 갑자기 짐을 찾아 야했지 않나 불안해졌다. 그래서 출국 보안대에서 나가서 짐을 찾지 않아도 되는지 묻고, 괜찮은 걸 확인한 후 다시 게이트로 갔다. 공항이 큰데 짐을 메고 움직이려니 땀범벅이 됐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약 두 시간 정도 대기 후 리마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인천에서 달라스, 마이애미까지는 AA의 비행기를 탔다면, 마이애미에서 리마까지는 코드셰어를 통해 실제 탑승 비행기는 LATAM 소속 비행기였다. 뭔가 본격적으로 남미를 가나 싶었는데, 첫 관문부터 남미의 벽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비행기가 지연된 것이다.
처음에는 12시 비행기가 1시로 지연됐다고 들었다. '아, 이 정도는 남미에선 아무렇지 않다던데..' 하면서 기다리는데, 그다음에는 비행기가 언제 뜰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공지가 들려왔다. 최종적으로 7시간 정도가 지연된다고 안내받았고, 공항에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아침에 리마에 도착해서 여유로운 하루 일정을 계획했던 나는 앞으로의 계획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달라스 공항에 이어 또 한 번 남미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 한국 분들이 몇 분 계셔서(주로 초등학교 선생님) 같이 얘기도 하고, 라탐에서 준 바우처로 샌드위치도 먹으면서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여행의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아침 8시가 돼서야 결국 비행기를 탔고, 100달러를 현금으로 보상해 준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후에 기술하겠지만, 이 보상도 결국 받지 못했다.
마이애미행 비행기는 우리나라 제주도를 가는 비행기 정도로 작지만, 다음 환승에서는 다시 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휴대폰 충전이 정상대로 되고 있다는 점이 훨씬 편안하게 해 줬다. 그리고 북미-남미를 잇는 항공편의 수요가 크지 않은 탓인지 비어있는 좌석들이 많았고, 피곤한 사람들은 빈 줄로 가서 3~4자리에 걸쳐 누워서 편하게 비행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리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겨울이라 히트텍에 패딩까지 껴입었던 나는 여름인 남미에 도착하고 짐을 찾는 동안 땀을 많이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계절이 다른 줄은 알았지만, 같은 지구에서 같은 시간에 이렇게 기온이 차이가 난다는 게 한편으론 신기했다. 리마의 따뜻한 날씨가 덥지만 기분 좋았다. 무사히 남미에 도착했고 이제 막 여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