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없어지는 시간, “나”의 재정의
전업주부를 영어로 Domestic Homemaker/Housewife 혹은 Stay-at-home Mom 이라 칭하는데
내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Housewife보다는 Stay-at-home Mom에 가까웠다.
내가 답답했던 부분은 -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부분 그리고 meritocracy에 길들여진 사회생활을 했었기에 자기효능감 및 생산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 관점이 있었다.
1. 남편의 경제적인 위치, 사회적인 위치 와 내 인생이 연동되기 시작했다.
파트타임 일을 했지만 건강보험도 남편 직장 가입자로 분류되고 남편의 급여가 나의 생활비가 되었다. 직장에서 남편의 직급은 ㅇㅇㅇ 직급의 부인으로 새로운 사회적 이름status 를 부여받았다.
물론 아이의 탄생과 동시의 ㅇㅇ의 엄마라는 status도 생겼다.
2. 나는 차선순위가 되었다.
아기를 어렵게 가졌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큰 불만은 없다. 재취업 5년차에 접어든 지금 아기를 생각했을 때 “그 시간은 참 감사하고 귀한 시간”이다. 임신부터 출산후 2년 넘게 엄마 품 안에 (품을 수 있었던) 자식이었으니까. 공무원도 선생님도 아닌 내가 육아휴직이 부자연스러운 업종에 다시 돌아왔다. 주변 워킹맘들에게 이 이야기를 넋두리하듯 나누곤하는데 자기 아이를 두돌 이상 직접 키웠다는 포인트에서 많이들 부러워한다. 보통 3개월 출산 휴가후 복직하거나, 눈치보면서 3개월 육아 휴직을 붙여쓴 경우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럼에도 그 기간을 (굳이) 묘사하자면 임신기간동안 나는 “태아의 안녕”이 최우선순위였다. 병원 방문스케쥴을 중심으로 나의 일상은 재편성되었고 방문하는 장소, 먹는 음식 등 - 나의 육체는 태아의 인큐베이터로 용도가 변경ㅋ?되었다.
결과적으로 상당히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아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출산 이후에도 나의 시ㆍ공간 그리고 의clothing,hygiene, 식food, 주mobility가 훨씬 큰 강도로 제한되었다.
아기가 기상ㆍ취침 하는 시간, 대ㆍ소변 보는 시간, 식사하는 시간, 어린이집에 머무는 시간, 병원 방문 시간 등 에 따라 움직였다. 나의 잠, 습식, 체력은 그 이외 시간에 챙기기 시작했다.
물론 잔여체력이 나보다 많고 좋은 분들은 그 시간도 본인을 위해, 가정을 위해 높은 생산성을 뽐내며 과실을 맺었지만, 나는 어찌 늘 지쳐있었던 것 같다.
3. 진화가 아닌 퇴화
나의 지적능력이 퇴화되고 세상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외모도 차선순위였기에 놀이터에서는 소위 생얼, 산발머리, 옷매무새도 늘 분리수거용 외출 스타일의 차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이집 하원후, 나와 비슷한 차림, 아니 몰골?의 엄마들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흡사 하원후 엄마들의 놀이터 드레스코드인 것처럼!
사회생활은 동네맘들과 놀이터 수다, 맘까페 댓글, 중고거래를 위한 소통이 전부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가해질만한 큰 이벤트는 없었다. 어제가 오늘 같았고 오늘은 내일 같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나는 늘 꿈에 주변인들이 등장하곤 한다. 블랙박스 이벤트인식 기능처럼 나의 뇌가 이벤트로 인식할만한 사건이 없었던 모양이다. 직장생활을 그만둔 후에는 꿈속 등장인물이 1~2년 전 나의 주변인 그대로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채, 반복해서 등장했다. 나의 무의식 세계인 꿈 조차 정체를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경제ㆍ사회ㆍ지적으로 성장해야만 의미를 찾는 그런 사람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나의 속마음을 여러번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 있었다.
추천 서적 :
정아은 작가의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https://m.yes24.com/Goods/Detail/90114128?pid=157529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업데이트해보기로 결정했다.
다시 “greedy job” 세상속으로
재취업 모드 돌입!
https://www.reuters.com/world/claudia-goldin-wins-2023-nobel-economics-prize-2023-10-09/
3편에서 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