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Sep 03. 2020

이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만남뿐 아니라 헤어짐도 중요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reneefisherandco]


중국에서 유학할 때의 일이다. 유학생 기숙사는 2인 1실이었고, 룸메이트끼리는 자연스럽게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가끔 방청소나 생필품을 함께 쓰는 사소한 문제로 다투기도 했지만, 한 방에서 지내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생기게 되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아래층의 한국인 여학생 두 명은 더 각별한 사이였다. 한 분은 유학생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고, 다른 한 명은 조기유학을 와서 유학생 중 가장 어렸다. 둘의 나이 차이는 열 살 가까이 났지만, 사이좋은 언니-동생처럼 보였다.


한국인 동생은 조기유학을 왔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 보였다. 가끔은 본인을 조기유학 보낸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한국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 방학 때 친구들 교복을 빌려 입는다고 했다. 향수병 때문에 힘들어할 때마다 룸메이트는 친언니처럼 따뜻하게 챙겨 주었고 그렇게 둘은 타지에서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작별의 순간과 아쉬운 기억


그렇게 1학기, 2학기가 지나갔다. 대부분의 어학 연수생이나 교환학생들은 1년 과정으로 오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곧 만나게 될 한국의 가족들,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정들었던 이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걱정이 마음속에 뒤엉켜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식당에 가기 위해 방을 나왔는데 아래층에서 기숙사가 떠나가라 우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 서럽게 울고 있었기 때문에 큰일이 났다고 생각해 부리나케 아래층으로 내려 가보니 어린 한국인 동생이 울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러했다. 룸메이트 언니가 예정된 날짜보다 이주일이나 일찍 한국으로 귀국했다는 것이다. 아무런 얘기도 없었고 정말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갑자기 쪽지 한 통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쪽지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울면서 작별하는 게 너무 마음 아파. 그걸 감당할 수 없어 이렇게 갑자기 떠난다. 미안해.'


1년 동안 가족 같이 지냈던 룸메이트가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어린 동생은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 동생뿐 아니라 대부분의 유학생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작별이었다.



첫인상만 중요한 걸까?


모든 인간관계에는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만남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헤어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마법의 O초' , '임팩트 있게 자기소개하는 법' 등등 대부분의 인간관계 기술은 만남에만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끝나고 우리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작별의 순간이 아닐까?


잠시 쉬어가는 쉼표(,)가 될 것인지, 강한 느낌을 나타내고 싶은 느낌표(!)가 될 것인지 아니면 깔끔하게 작별을 고하는 마침표(.)가 될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 룸메이트는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아 그런 행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 행동은 쉼표, 느낌표, 마침표도 아닌 최악의 말줄임표(......)였다.


수많은 사람과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중 일부는 함께 지내는 시간 동안은 좋은 관계였지만 마지막 작별의 순간 때문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반대로 일부는 지내는 시간 동안은 다소 트러블이 있었지만 좋은 헤어짐 덕분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처음 인간관계를 맺을 때 서로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헤어짐의 순간에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건 어떨까? 좋지 않은 마지막 인상 때문에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퇴색되지 않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해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