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과 나의 평행이론
어느덧 입사한 지 11년이 지났다. 신입 때는 3년만 경력 쌓고 퇴사하겠다는 생각으로 버텼었고, 3년 차 이상 되는 선배들을 보면 이런 곳에서 오래 살아남으셨다는 생각에 경외감이 절로 들었다. 누군가는 1,3,5년마다 퇴사 위기가 찾아온다고 말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매년 퇴사 위기가 찾아왔던 것 같다.
신입사원 때 친하게 지냈던 착한 사람들은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악랄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신입 때는 순진무구했던 사람들도 오랜만에 만나 함께 일을 해보면 순진함은 싹 빠지고 교활함만이 남아 있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월급의 달콤한 때문이었다. 학생 때는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도 500원 더 싼 곳을 찾아다녔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카페에 들어가기 전에 메뉴판의 가격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고 한 번 커진 씀씀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회사라는 성에 갇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10층짜리 정사각형 모양의 건물은 나에게는 일종의 성과 같았다. 이 성 밖을 나가면 모든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성 밖으로 쫓겨나지 않으려 더 발버둥 쳤다. 하루 14시간 이상을 근무하기도 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말에 출근해 일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나의 모습이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같은 장소로 출근하고 회사 로비에서 직장동료를 만나면 무의미한 인사를 반복했다. 반복되는 업무, 팀장의 똑같은 훈계, 위기경영에 돌입하겠다는 경영진의 메일까지 같은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트루먼은 섬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트루먼이 떠나지 못하도록 막는다. 트루먼쇼의 제작진은 어린 시절 꿈이 탐험가라는 말에 트루먼이 섬 밖을 나갈 생각을 못하도록 트루먼 앞에서 그의 아버지가 익사하도록 만든다.
5년 전 만난 팀장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에게 계속해서 미생을 보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도 않고 특히 현실적인 직장인의 드라마는 더더욱 보기 싫었다. 팀장은 1주일 간격으로 2~3차례 물어봤고 내가 아직 안 봤다고 얘기하자 정색하면 화를 냈다. 결국 팀장의 성황에 못 이겨 미생을 보게 되었고 다 보고 나서 팀장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회사 밖은 지옥이야.”
팀장은 대리, 과장급들의 퇴사를 막기 위해 늘 안간힘을 썼다. 옆 부서 직원의 이직 소식을 들을 때면 “분명 새로운 직장 가자마자 후회할 거야.”라며 우리에게 지금 이곳이 지상낙원인 것처럼 설명을 했다. 팀장에게 가장 희소식은 이직한 직원이 새로운 직장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는 소식이었다. 그 얘기를 할 때면 아무리 바빠도 직접 회의실까지 예약해서 전체 팀원들을 불러 놓고 얘기를 했다.
"들었지? 여기만큼 좋은 곳은 없어. 다른 곳 갈 생각하지 마."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하다
회사가 지상낙원이고 회사 밖은 지옥이라고 늘 강조하던 팀장.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밖의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퇴사하고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유튜버, 퇴사 후 출간한 브런치 작가, 투자에 성공해서 파이어족이 된 블로거 등등을 보면서 그들을 동경하는 날이 반복 되었다.
'나는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부러워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이제 이 지상낙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퇴사에 대해 고민하던 나와 진실의 문 앞에서 고민하던 트루먼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퇴사 이후에 어떤 삶이 펼쳐질까?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등등 수많은 고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는 줄어들고 고민은 많아질 것이라는 것을.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했을 트루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활짝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불안감을 감추기 위한 웃음이 아니었을까? 회사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의 마지막 모습이 활짝 웃는 밝은 표정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내 불안함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