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을 꼽으라면 단연코 생일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잡채, 갈비 등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잔뜩 만들어 주셨고, 오후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고 케이크, 과자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더라도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은 대부분 수줍게 웃거나 무표정한 얼굴인데, 생일날 찍은 사진만큼은 환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점점 생일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1년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인데 왜 점점 생일에 대해 감흥이 떨어지는 것일까? 어렸을 때처럼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할 수 없기 때문일까?
착한 사람일까 아님 호구일까?
쓸데없는 걸 잘 기억하는 나는 옛날부터 친한 친구들의 생일을 대부분 외우고 있었다. 친구들의 생일날에는 전화를 걸어 축하를 해주거나 모임을 주선해 술집에서 조촐한 파티를 해주었다. 하지만 모든 친구들이 나와 같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내가 축하해 준만큼 돌려받지 못할 때는 서운한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기브 앤 테이크를 확인하는 건 카카오톡이 생기면서 더 심해졌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용하는 카카오톡의 맨 위에 생일이라고 뜨는 걸 놓칠 수는 없는 일.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주고받은 선물까지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항상 기브만 하는 나와 테이크만 하는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대학교 친구의 생일 알람이 떠 기프티콘이라도 보내줄까 하는 마음에 채팅창을 열었다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1년 전 그 친구 생일날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씁쓸함을 잊을 수 없다.
인간관계의 기브 앤 테이크
한 직장 동료는 올해부터 카카오톡 생일을 비공개로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매년 생일 때마다 본인이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아 서운함을 느낀 게 그 이유였다. 1년 중 가장 기뻐해야 할 생일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생일날 선물이나 인사를 주고받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원래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OO님이 베푸는 거에 대해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관계를 정리하고, OO님 생일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베푸는 사람이 있다면 소중한 사람이니 그분 생일 때 축하해 드리면 되죠."
직장동료는 나의 조언에 잠시 고민에 빠진듯했다. 그 직장동료는 올해부터 생일을 비공개로 바꾸고 조용한 생일을 보내게 될까 아니면 공개로 하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생일을 보내게 될까?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분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생일을 계기로 소중한 지인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을 그저 평범한 하루처럼 흘려보내긴 너무 아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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