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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Aug 02. 2021

프로포즈 실패의 슬픔과 깨달음

기획은 성공적인 프로포즈처럼 하라!





오빠. 나 폐쇄공포증 있는 거 아직 몰랐어..?



 때는 2016년, 우메다 헵파이브 대관람차 앞에서 야심차게 준비했던 나의 첫 번째 프로포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둘만의 공간에서 로맨틱한 프로포즈의 성공을 확신하던 자신감이 와장창하며 깨져버렸다. 막상 뚜껑을 열자 내가 준비한 기획이 오답이라고 판명되는데 단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오사카 우메다역의 랜드마크, 헵 파이브 대관람차 (사진출처: https://umeda-sc.jp/en/hep-five/)



 내 기억 속에서 8년을 만난 그녀는 분명 대관람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정신을 차려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연애 초기에 놀이공원에서 우리가 함께 탔던 리프트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 딱 감고 한번 타 준 것뿐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게 다였다.


 밤을 지새우며 서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들을 더듬어봤다. 그녀는 친오빠가 했던 짓궂은 장난 중에서도 순간 어둠 속에 갇혀버리는 이불 보쌈 놀이가 그렇게 무서웠더랬다. 돌이켜보니 오랜 시간 만나왔지만  흔한 패러 글라이딩이나 짚라인, 번지점프를 같이 해본 적도 없었다.


 아차 내 실수다. 데이터는 항상 변한다. 리프트를 함께 탔던 것 역시 수년 전 단 한 번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고베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시다





 2일 차 여행의 목적지는 오사카에서 조금 떨어진 고베라는 항구 도시였다. 아침 일찍 고베로 출발하는 역의 플랫폼 위에 서서 나는 여전히 커다란 백팩을 메고 있었다. 여자친구는 여행 첫날부터 더울텐데 왜 이렇게 큰 백팩을 메고 다니냐고 걱정 반, 의아함 반의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어왔다.




 저녁에 추울 수 있으니 혹시몰라 가디건을 챙겨 다니는 거야. :)


 눈물을 머금은 핑계는 잘 먹혀들었고, 그녀의 시선을 거두는 데 성공했다. 사실 가방 안에는 스스로 '프로포즈 킷(Kit)'이라 불렀던 현수막과 한국에서 공수해온 작은 드라이플라워, 왕다이아반지가 담겨 있었다. 늦여름날 짐을 한가득 넣은 백팩과 내 등 사이는 금세 땀으로 가득 찼다.




 고베에 도착하자 어제 실패한 프로포즈를 오늘은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왔다. 프로포즈 장소를 물색하던 나는 어제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관람차를 마주했다. 마음이 쓰렸다.



 이윽고 일본의 3대 야경이라는 고베의 메리켄 파크가 한눈에 담기는 근사한 장소를 발견했고, 여자친구 몰래 저녁을 예약했다. 이 곳이야 말로 어제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확신했다.


 칵테일을 마시고, 약간의 취기를 빌려 어제의 아픔을 잊어냈다. 자신감을 끌어올려 다시 프로포즈를 시작하려고 하는 찰나에 여자친구는 말했다.



오빠 아니야. 아니야. 여기서 하지 마.



 본능적으로 분위기를 알아차린 여자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격렬히 프로포즈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첫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터라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황급하게 프로포즈를 멈춰버렸다. (이런 소심쟁이 같으니라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한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프로포즈 선언문'이라고 준비한 종이를 꺼내며 선서 동작을 하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음식점이 떠나가도록 큰 목소리로 읽을 것이라고 오해했다고 했다. (안되려고 하니 이렇게도 안될 수 있구나..? OMG)


 결정적으로 내게 맛있는 음식과 멋진 야경이 어우러진 그 장소가 아내에게는 질긴 스테이크로 기억될 썩 근사한 장소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고베에서 보란 듯이 두 번째 고배를 마셨다.




프로포즈 실패로 배운 기획의 3원칙





1원칙.

그때는 옳고, 지금은 틀리다.

고객의 현재 상황에 공감하라. 영원한 정답은 없다.


 수년째 만나온 사람이라고 한들 그 사람의 취향과 선호도, 그가 처한 환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떡볶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사람도 몇 주전 떡볶이를 먹다가 심하게 얹힌 후로 떡만 보면 손사래 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당일의 컨디션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우리의 고객 역시 마찬가지다.


 기획을 위해 데이터를 참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획자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수년전 데이터를 참고하거나 잘 나가는 기업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복붙(ctrl+c & v)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녀와 리프트를 탔던 기억은 무려 프로포즈 시점을 기준으로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데이터를 참고하되 그것이 최신의 것인지, 오래됐어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2021년 발표에서 2010년도 통계자료를 근거로 내민다면 신뢰할 수 있을까? 데이터가 언제나 정답은 아니다. 데이터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유효성이 현격히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2원칙.

무비판적인 낙관론은 필패를 부른다.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은 감?'


 감에 의존한 실행은 필패를 부른다. 어떤 기획이든 철저한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법이다.


 수많은 아이디어 중 '될 놈'을 찾는 방법을 소개한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에서는 긍정 오류의 위험을 경고한다. 저자는 구글의 혁신 부서에서 일하며 수많은 혁신 프로젝트의 실패와 성공을 경험했다.


 그는 대부분의 실패는 긍정 오류로 인해 발생한다고 했다. 긍정 오류는 잘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잘되지 못한 경우를 말하는데, 그 과정에는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나 결정이 옳다는 것에 확신을 갖기 위해 그와 관련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설문조사나 고객 인터뷰 역시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창구가 될 확률이 높다.

 

 나 역시 대관람차 안에서의 프로포즈를 떠올렸을 때 '성공을 확신할 수 있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있었다. 우연히 '놀이공원에서 하는 고백이 성공 확률이 높더라'라는 연구를 봤을 때 역시 나는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우리에겐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예측하기 위해 보다 체계적인 도구가 필요하다. 그 도구는 무엇일까?





3원칙.

최대한 잘게 쪼개 시도하라!

프리토타이핑의 중요성

 

 우리는 보통 고심 끝에 생각해낸 아이디어가 최고라 여긴다. 때로는 이건 무조건 통할 거야!라고 확신한다. 또한, 거창하게 시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매몰비용은 커진다. 실패에 따른 상처도 무지 크다.


 비즈니스에서 뼈아픈 실패의 대부분은 작은 시도가 아닌 거창한 준비와 실행에서 온다. 더군다나 작고 빠른 실패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도 프로토타입을 만들다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프리토 타이핑이다. 프리토 타이핑은 '마치 일어난 것처럼, 그럴싸하게’ 조건을 만들어 고객의 반응을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디어/서비스/비즈니스가 고객에게 통하는지 미리 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기획의 치트키가 어디 있을까?


 예를 들어, 세탁 후 건조와 옷을 가지런하게 개어주는 올인원 제품을 떠올렸다고 상상해보자. 시장과 고객의 반응을 알아보고자 프로토타입 제품을 개발하려면 수많은 연구개발인력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한다.

 

 반면 프리토 타이핑은 고객이 실제로 그 서비스나 제품이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만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즉,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그 안에서 숨어있는 사람이 빨래를 수거해 재빨리 건조하고 옷을 개서 세탁기 하단의 보관함에 정해진 시간 내에 올려놓는 식이다.




빨래를 개주는 기계, 폴디메이트



 우메다 헵 파이브 대 관람차에서의 프로포즈를 기획했을 때 나에게 필요한 첫 번째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그 계획을 꽁꽁 숨기는 것이 아니라, 여행 동선을 먼저 공유했어야 했다.


 나는 사실 깜짝 이벤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여행 계획에 헵파이브 대관람차는 꽁꽁 숨기기 바빴다. 한 번도 그녀에게 정보를 흘린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이번 여행에서 대관람차는 꼭 타보고 싶은데 어떠냐고 미리 물어봤다면 대참사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행에 앞서 기획안 통과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스몰토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봤는데 어떠신가요?", "요즘 이런 트렌드가 유행이던데, 마케팅에 반영해보면 어떨까요?"라는 '프리토 타이핑'형 아이디어들을 넌지시 던져보는 것이다. 힘겹게 공을 들여 기획안을 작성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노력과 비용이 들면서도 이 아이디어는 통하는 놈인지 판단해볼 수 있을 것이다.










교토삼굴(狡兔三窟)

: 꾀가 많은 토끼는 세 개의 숨을 굴을 판다.

 

 기획을 할 때 당신의 기막힌 아이디어와 기획안이 최고의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100%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버려야 한다. 내게도 우메바 헵 파이브 대관람차는 처참히 실패하기 전까지 최적의 프로포즈 장소였다.


기획(企劃) : 꾀할(기), 그을(획)

 

 일을 꾀하여 계획한다는 기획의 의미처럼 기획은 상상으로 빚어진 계획일 뿐이며 현실로 옮겨진 실행은 아니다. 즉 기획은 언제나 현실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행의 영역에서는 언제든 새로운 변수가 등장한다. 성공적인 기획 그리고 결과를 위해 프리토 타이핑을 적극 활용해보자. 또한 변수를 충분히 포용할 수 있는 여유공간을 마련하거나, 미리 작게 실행해보는 것, 최악의 경우 차선책을 마련해두는 것이야 말로 기획 고수의 핵심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에서 프로포즈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나는 프로포즈 실패를 통해 또 한 번 기획의 기본기를 배웠다.





 * 벌써 수년 전 이야기네요. 결국 프로포즈는 삼고초려(?) 끝에 성공했고, 이쁜 딸까지 낳아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



[참고 도서]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 - 알베르트 사보이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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