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장편소설
지함은 혼자 인사동의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카운터에 서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처음과는 다르게 훨씬 밝은 얼굴로 지함을 맞이 했다. 지함은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자 뭔가 수줍어졌다.
“혹시 퇴근이 언제예요?”
“한 시간 남았어요.”
“밥은 먹었어요?”
“아. 예.. 아까 먹었는데……”
“그럼, 저 근처에서 밥 먹고 올게요.”
“어? 혼자 먹어도 돼요?”
“아. 혼자 가도 밥은 같이 먹을 거예요. 아마.”
“아..”
그녀는 지함이 아직도 미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자신의 미래도 알고 있는 것이라고. 지함은 그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지금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뭐. 그녀와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함은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는 동안, 식당에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아직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손님들이 많았지만, 지함이 앉을자리는 있었다. 지함이 들어오자 할머니는 정말 너무 반갑게 뛰어나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손을 계속 쓰다듬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누구한테 잡혀간 줄 알았다. 말도 않고, 열쇠도 그대로 두고. 나는 뭔 일이 난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죄송해요. 일이 좀 있었는데.. 지금은 잘 해결이 됐어요..”
“그 친구는?”
“아. 잘 있어요. 원래는 같이 오려고 했는데, 제가 이쪽에 따로 볼일이 있어서 먼저 왔어요. 다음에는 꼭 같이 밥 먹으러 올게요.”
“고맙다. 고마워. 이렇게 다시 와줘서 진짜 고맙다. 나는 니들도 울 아들처럼 사라졌을 까 봐 며칠을 한 숨도 못 잤다.”
“할머니.”
“그래. 왜? 배고프니?”
“아니요. 전 이 장면을 꼭 보고 싶었거든요.”
“뭐”
그때, 입구에서 50대 중반의 한 남성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가 들어서는 순간,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안았다. 그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품에 안고 펑펑 울었다. 그들은 지금 이 세상에 둘만 있었다. 주방에서 쫄고 있는 찌개도, 다 먹고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 서있는 손님도, 아무도 그들의 세상을 침범할 수는 없었다. 지함은 조용히 주방에 가서 불을 끄고, 카운터에서 돈을 받고 손님을 보냈다. 그동안 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부둥켜안고 울고만 있었다. 그들의 시간이, 그들의 눈물이, 그동안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함은 알고 있었다. 그가 오늘 올 것이라는 사실과 그가 왜 그동안에 올 수 없었는지도 말이다. 그는 할머니의 미래를 통해 아들의 신상을 알아냈고, 그의 신상을 통해 함지가 과거를 살펴봤다. 그래서 그들이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고, 그들이 서로 궁금해할 그날의 사건도 말해 줄 수 있었다.
“아드님은 학생운동 주동자로 끌려갔었어요. 아마 이 사실은 본인도 몰랐을 거예요. 그렇게 끌려가서 고문을 당했거든요. 힘들었지만,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고 있었죠. 자신의 친구들의 이름도 대지 않았고, 그 어떤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죠. 그게 오히려 그들의 화를 더 부추겼나봐요 결국, 과한 전기 충격으로 기억이 모두 날아갔고요. 지방의 한 요양원으로 실려가서 20년을 넘게 살았어요. 20년 만에 정신이 들어오긴 했지만, 기억은 온전치 않았나 봐요. 그래서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서 조금씩 자신의 과거를 만들기 시작했고, 뭐가 무서웠는지. 그의 통장에 거금이 입금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았죠. 그런데, 아드님 혼자로는 모든 과거를 찾기가 어려웠나 봐요.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 거고요. 그 사이에 저처럼 할머니께서 도와주신 분들의 도움도 많았어요. 앞으로 하실 일이 많으실 거 같은데, 제 동생이 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아마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에 와서 아드님의 과거를 말해준다고 하니까. 할머니 제 동생이 오면 저한테 해주신 만큼만 안아주세요. 걔도 참 좋아할 거예요.”
그 둘은 지함의 믿기 힘든 이야기를 잘 듣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지함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함은 말했다.
“할머니께서 그동안 나눠주신 수많은 밥들이 제가 하는 몇 마디보다 수천 배는 더 귀한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랬듯이. 그냥 받아주세요.”
지함은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시간에 깜짝 놀라서 카페로 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카페 앞에는 흰색 원피스에 연노랑 색 가디건을 입고 있는 지연이 서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면서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노력해 보겠다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살면, 뭔가 저 앞에 서있는 그녀가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