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희종 Oct 21. 2022

드디어, 도시락 시작.

새벽 6시.

만삭인 아내가 10월 아이의 어린이집 일정을 알려줬다.

생일파티, 소풍, 운동회, 할로윈..

아내의 말을 들으며, 휴대폰 다이어리에 일정을 넣는데, 걱정이 한가득이 되었다. 이번 달은 우리 아이의 생일파티라서 2천 원 상당의 답례품을 미리 구매해서 포장해야 했고, 소풍 준비물은 간식과 도시락이었다. 운동회에는 원래 엄마가 참석하는 것이지만, 아내가 만삭인 관계로 당일 복장만 챙기기로 했지만, 할로윈은 아이에게 특별한 분장을 준비해야 했다.

나는 이미 할 것이 정말 많았다. 이미 회사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신경 쓸 것이 많았고, 소설가로서는 또 새로운 도전을 위해 간간히 단편소설을 쓰기로 했었다. 그리고, 둘째의 예정일도 10월 말이었기에 출산 준비도 해야 하고, 아직 이사 후에 집 정리도 다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이의 스케줄이 4개나 있는 것이다.

"내가 언제 출산을 하러 갈지 몰라서 미리 말해두는 거야."

아내 역시 언제 갑자기 출산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쿨하게 걱정 말라는 말을 하고,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준비했다. 아이의 생일파티 답례품으로는 예산이 조금 넘지만, 예쁜 비니 모자를 구매했고, 아이의 생일선물도 미리 결제했다. 할로윈 의상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마녀 배달부 키키"의 검은 원피스와 싸리 빗자루를 구매했다. 그리고, 도시락.

아내는 나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 검색을 통해서 캐릭터 주먹밥 틀과 김펀치를 구매해주었고, 나는 미리 어떤 주먹밥을 만들지 고민해서 결정해 두었다.

그리고 소풍 전 날, 나는 내일을 위해 미리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두었다. 아침에 헤매지 않기 위해, 미리 주먹밥 재료들과 도시락통을 찾아 놨고, 배송이 온 주먹밥 틀과 김펀치도 아내가 옆에서 꼼꼼하게 씻고 있었다. 나는 인스타에서 본 계란 토끼를 만들기 위해 계란도 미리 삶아 놓았다.

새벽 한 시.

아이를 재우고, 집 정리를 좀 하고, 내일 도시락 준비를 사부작사부작하니 벌써 1시였다. 나는 알람 시간을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맞춰두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난 나는, 제일 먼저 밥부터 했다. 그리고 밥이 되는 동안 삶은 계란의 껍질을 까서 토끼를 만들기 시작했다. 실패를 예상해서 5개의 계란을 삶아 놨는데, 다행히도 하나만 실수를 하고 나머지 두 개를 성공했다. 난이도가 높은 건 아니었지만, 깨로 눈을 만드는 것이 여간 섬세한 작업이 아니어서 미리 사두었던 핀셋 집게로 심혈을 기울여서 겨우 성공했다. 도시락 통에 넣은 토끼에 허점함도 채우고, 흔들리지도 않게 하기 위해 샤인 머스캣을 손질해서 풀밭을 만들었다.

그때쯤, 주방에서 나는 소리 때문인지 아이가 잠에서 깼고, 아내는 나를 대신해 아이에게 달려가 달래고 다시 잠을 재웠다. 그 사이에 나는 주먹밥에 들어갈 재료를 손질했다. 장모님 표 멸치볶음을 잘게 다지고, 김치를 물에 씻어 같이 다졌다. 그러고 나서 완성된 따뜻한 밥에 참기름과 치즈 한 장을 넣고 다져놓은 재료들을 더해 섞기 시작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밥은 곰돌이 주먹밥 틀에 넣어 모양을 잡았고, 미리 만들어 둔 눈코입으로 완성시켰다. (원래 문어 소시지도 만들었지만, 아이 도시락에 자리도 없었고, 예쁘긴 해도 아직 아이는 소시지를 먹지 않아서 과감히 뺐다.)

 만들 것들을 도시락에 담고, 사진을 찍으니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이 되어 알람이 울렸다. 그렇게 우리 아이의 첫 도시락을 쌌다. 아마도 아내가 만삭이 아니었다면, 우리 둘이 함께 더 예쁜 도시락을 쌌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잠에서 깬 아이도 도시락을 보여주자 엄청 좋아했다.

소풍에 가서 먹을 과자와 함께 나눠 먹으라고, 포도까지 씻어서 잘 담은 뒤에 아이의 첫 소풍을 보냈다. 아내와 나는 하루 종일 아이가 밥을 잘 먹었을까? 도시락을 좋아했을까? 궁금해했었고,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담임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의 반응으로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님 계란 토끼 아버님께서 만드신 거예요?"

"역시."

아이는 오는 내내 소풍의 이야기를 조잘댔고, 밥도 아주 잘 먹었다고 했다. 선생님의 편지에는 아이가 소풍을 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아이에게 오늘 하루가 아주 즐거운 기억으로 남은 듯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도 계속 일을 하셨다. 그래서 항상 바쁘고 힘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한 번도 내 소풍에 김밥을 사서 보내지 않으셨다. 아니 오히려 엄마의 김밥을 좋아하는 날 위해 아무 날도 아닌데, 김밥을 싸주신 적도 많았다. 그 당시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던 것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참 대단한 일이었다.  머리로만 알고 있던 "정성이 가득 담긴 도시락"이라는 말이 직접 만들어 보니, 피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인지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어머니에게 아들 표 김밥을 한번 싸드려야겠다. 내가 받은 사랑에는 비교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키우느라 고생한 어머니에게 마음이라도 전하려면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