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아주 오래된 어느 날, 아빠가 퇴근길에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소설책을 사 왔다. 열두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때 당시에 난 영어학원에 전기세를 보태주기 위해 책가방을 들고 집과 학원을 오가는 수고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to 부정사는 너무 어려웠고 5 형식은 더더욱 그랬다. 그저 하루 종일 닌텐도 슈퍼마리오나 할 줄 알았지 흥미나 특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무색무취의 어린이였다. 딱 반에서 20등, 전교 150등 그 정도. 가끔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 샘이 날 때면 거실 책장에 꽂힌 책을 뒤적거렸지만 그때뿐이었다.
아빠가 과자 대신 책을 사 온 것에 실망하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을 받아 들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명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첫째 장을 펼쳤다. 그리고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어 내려갔다. 세상에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있다니! 그날 밤, 작은 조명 아래서 지새운 밤은 내 인생을 뒤집어버렸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르도 주제도 중구난방인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도 수능을 앞둔 무렵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싹을 틔워 어느새 나무가 되었다. 책에 빠져든 첫 번째 기억이 나를 이루고 말았다.
꿈이 있는 것과 꿈을 이룬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숱한 공모전에 글을 써내고 그 도전만큼 많은 거절을 맞닥뜨렸다. 공들여 작품을 제출해놓고도 당연히 수상은 없을 거라 생각해 까맣게 잊고 지낸 적도 많았다. 그러다 몇 달 뒤 탈락 메일이 오면 혼자 심란했다. 몇 년째 같은 곳에 서있는 내가 한심할 때도 있었다.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데 나만 혼자 뒤돌아 서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 꿈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언젠가 스웨덴을 글로 기억하겠다며 써놓은 글이 노트북 파일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던 다니엘부터 버스정류장의 인연 티나, 집을 잃은 나를 거둬준 비웬과 자기 전 나를 꼭 안아주던 벤까지. 모두가 그 순간에 멈춰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기록한 시간들은 사진이 미처 담지 못한 것들을 담고 있었다. 그때의 기분, 그때의 감정, 그때의 바람과 그때의 그리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들이었다.
나의 스물한 살에 스웨덴이 있었다. 지나온 아픔까지 끄집어 보듬어준 따스함과 모든 게 낯선 나의 손을 잡아준 사람들. 잊지 못할 주방의 석양과 미래를 고민하던 밤. 네 상처 어떤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친구들. 내가 본 것은 우정 그 이상이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때가 왔다. 넘치는 사랑과 그리움을 안고. 나의 스웨덴을 안고.
My Swede Blues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