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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 soore Nov 01. 2020

안녕을 말할 시간


언제나 괴로움은 남은 사람들의 몫인가 보다. 기숙사 코리도를 가득 채우던 교환학생들이 하나 둘 떠나고, 먼저 떠나올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은 그곳에 그대로 남아 빈자리를 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금만큼 음식이 넘쳐날 때가 없었다. 싱싱한 채소 하나도 전전긍긍하며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해 냉동 채소 믹스를 먹던 예전과는 딴판으로 떠난 이들이 남기고 간 식재료가 넘쳐났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공용 주방의 테이블은 각종 브랜드의 설탕으로 가득했지만 주방세제는 다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학생들이 다 떠나간 웁살라는 유령도시라는데, 이 도시에 한국인 셋이 남았다. 규리 수민 수빈 우리 셋은 거의 모든 시간 함께 있었다. 각자 살고 있는 코리도로 돌아가면 텅 빈 복도를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함께 빵을 굽고 함께 설거지를 하던 이들이 모두 떠났으니 홀로 주방에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우리 셋은 창밖으로 분홍색 석양이 펼쳐진 나의 텅 빈 주방에 모였다.      


스웨덴에서 6개월을 잘 보냈으니, 오래 공들여 우리만의 작별인사를 해주자.    

 

하루는 기숙사 앞 슈퍼마켓 이카 ICA에서 빵을 한가득 사 왔다. 카넬불레(시나몬 롤) Kanelbullar, 셈라 semla, 메이플 피칸 파이 maple pecan pie 모두 매주 거르지 않고 사 먹었던 빵이었다. 작은 냄비에 물을 끓여 루이보스 티백을 두 개 넣고 세 컵에 나눠 담았다. 설탕과 우유를 섞어 자주 만들어 먹던 얼그레이 밀크티를 만들었다. 그 앞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웁살라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수민 언니와 같은 코리도에 살던 오스트리아 친구네 집에는 항상 파리 세 마리가 날아다녔는데, 안 잡고 내버려 뒀더니 하도 오랫동안 보여서 칵타-칵토-칵티라고 이름을 지어줬다고 하는데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깔깔깔 웃다가 또 한참 동안 조용했다. 한 명이 울기 시작하면 둘이 따라 울었다. 휴지가 부족해지면 한참을 웃었다. 우리 왜 이러냐면서.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매일매일 조금씩 작별인사를 했다.





기숙사는 매일 밤 10시 정각 플록스타 스크림 flogsta scream으로 시끄러웠다. 창문을 활짝 열고 아아아아아아아아 있는 힘껏 1분 동안 소리를 질렀다. 초반엔 열심히 동참했는데 한 달쯤 지나고는 시들해졌다. 창밖으로 들리는 괴성은 그저 알람처럼 시간을 알려줄 뿐이었다. 종강 후에 플록스타 스크림이 사라지자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학생이 없으니 소리 지르는 사람도 없었다. 규리 언니는 우리 중 가장 먼저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언니의 마지막 날에도 우리는 석양이 펼쳐진 주방에 모여 있었다.     


“마지막 날인데, 플록스타 스크림이 있을까?”     


“며칠간 없었잖아. 오늘도 없을 것 같아.”     


“기다려보자. 혹시 모르잖아.”     


밤 10시 정각이 되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 소리조차 없었다. 예상된 실망감에 창문을 닫으려던 그때, 외로운 고함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기숙사동에 사는 남자애 하나가 홀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직 웁살라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코리도 하나에 열두 명씩 살 던 3월만큼은 못했지만, 남은 이들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소리쳤다.

      

“아직 거기 있었어!!!!! 우리도 아직 여기 있어!!!!!”      


그렇게 1분 넘게 소리쳤다. 목이 다 쉬도록 소리를 질렀다. 거기 있었냐고, 그리웠다고,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로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창문으로 몸이 튀어나갈 듯 소리치던 서로를 바라보니 다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이게 정말 마지막인가 봐.     


우리 셋이 함께한 마지막 날 기적처럼 나타나 준 플록스타 스크림 덕분에 우리의 길었던 작별인사가 끝이 났다.


이제 정말 안녕을 말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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