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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ug 09. 2023

영문과 나온 엄마의 자녀 영어 강박증

영어에 왕도는 없다

(8.5에 쓴 글을 고쳐서 다시 올리다)


이번 여름 방학에 첫째의 영어 과외 선생님을 모시게 됐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있는 대한민국의 여느 부모들처럼 학원, 과외, 홈스쿨을 적절히 경험해 보는 중인데, 아직까지 이상하게 답을 모르겠는 어려운 영어. 앞으로는 더 많은 공부들이 있을진대, 영어에 이렇게 많은 고민이 되는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 동기(?)도 사실 많아 보인다.


아이는 일주일에 2번, 셔틀버스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장장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머릿속에 정작 남는 건 별로 없었던 학원 10개월 다닌 후 한참을 놀고 있다가, 집에서도 혼자 매일 정해진 분량을 해보기를 조금 (남편과 나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화상 영어(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할 예정)도 시작했다가... 정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과외 선생님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고구마 백 개 먹은 듯 답답하고 답이 안 나오는 내게 참신하고 새로운 외부 수혈이 간절했다. 드디어 만나게 된 영어 선생님. MBTI 성격 검사로 자신을 표현하는 진정한 MZ 세대의 유학파로 자신을 소개한 좋은 인상의 남자 선생님과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수업은 벌써 4회 정도 진행했다. 선생님은 2번 정도 아이를 관찰한 후, 딱 봐도 우리 아이에게 한참 어려워 보이는 수준의 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확고했고, 일단 전권을 맡긴 나는 기꺼이 따랐다.


하지만 아무리 맡겼대도 내 할 일이 절대 줄어들 수는 없다. 일단 교재의 Unit 하나를 한 주도 아니고 하루에 끝내고 있다는 선생님 말에 의아해서 어느 날 책을 펼쳐 보았다. 처음에도 그런 느낌이 없진 않았지만, 내가 보기엔 내용도 어려워 보일뿐더러, 역시나 우리 아이의 기초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이게 맞는 건가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말 우리 애가 이걸 한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호옥시 요즘 학원에서는 이렇게 공부하나? 아님 외국어로서의 영어는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요즘 트렌드인가.... 내가 한참 모르고 있었나... 근데 우리 아이가 정말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걸까.. 갈팡질팡하면서 책을 다시 덮었다. 복습을 하라는데, 어떻게 시키지? 아이와 싸우긴 싫은데..

엄마들의 커뮤니티에는 좋은 정보를 공유하는 무언의 규칙 같은 것이 있다. 나만 좋은 정보를 알아서는 득 될 것이 없다.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흔쾌히 정보를 오픈하고 알려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주위에 알려주고, 동질적인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서 더 많은 정보를 양산하는 선순환을 겪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방학에 아이에게 과외 선생님을 붙이기 전, 그보다 한참 전에 친하게 지내는, 선배맘이자 첫째의 친구 엄마인 동네맘께서 화상영어에 대해 뀌띔해 주었다. 정말 수만 번을 고민하다 100% 그분의 추천만 믿고 *** 회사의 화상 영어 수강권 12개월어치를 한 번에 결제했다. (이렇게 해야 싸다고 해서...) 일단 아무런 방법도, 대안도 없는 가운데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에, 갈대같이 흔들리는 내가 장고 끝에 시작한 *** 화상영어.. 요즘에 유사 플랫폼이 많은데, ***의 경우 튜터가 모두 북미권의 native speaker라는 점이 좋다는 동네 엄마. 현실적인 문제들로 선뜻 단기 유학이나 연수를 가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주 2회, 30분씩이라도 북미권 네이티브 선생님과 대화할 수 있다면 오. 나쁘진 않다.


나는 사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물론 법대나 경영대를 갈 월등히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점수에 맞춰 인문대에 지원한 케이스는 아니다. 나에게는 영어교육과를 나와 40년간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엄마가 계시다. 아빠 역시 대학에서 영어과를 나오셨고 대기업에서 해외마케팅 등의 업무를 수행하셨다. 전공이나 직장 특징은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나라에서 한국사람답지 않게 영어 제일 잘하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우리 아빠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아빠의 영어에 대해 나는 동경해 왔고 그런 분위기 속 영어를 좋아하고 영미문화를 어려서부터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다. 사는 곳은 한국이지만 늘 미디어 속 영어가 흘러나오고, 학급에서 방학만 되면 미국 등지의 친지 집 방문 또는 여행을 다녀오는 학우들이 전체의 2/3는 족히 되는 초등학교가 있는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와는 달랐다. 나의 주변에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공교롭게도 외고에 진학하고, 대학에서도 영문과를 가니, 영어 friendly 한 집단에 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영어만큼은 이상하게 늘 자신이 있었다. 물론 가장 좋아하기도 했다. 우리가 학령기 때 해외파견근무를 지원하지 않은 아빠였지만 2년마다 여행을 나갔다. 간혹 부모님의 안식년 등으로 미국에서 1~2년을 지냈던 친구들이 경시대회 등에서 해외파로 분류되어 응시를 하면, 당시 해외 체류 경험이 1년이 물론 안되었던 나는 국내파였지만 늘 내가 자랑스러웠다.


우리 아이가 있는 곳에서 언젠가부터 나는 영어 라디오를 듣지도, 영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책도 거의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나마 한참 터울진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번역을 나름 왕성히(?) 한 탓에, 우리 둘째는 늘 내 무릎 위에서 엄마가 쓰는 글자들과 PC 화면 속 CAT 툴의 빨간 글씨와 형광색 알 수 없는 기호들에 관심을 잔뜩 갖게 됐다. 둘째에게는 storybook 많이 읽어 주었다. 몇 살 때는 챕터북 뭐가 좋다느니, 이 책이 AR 몇 점 대니 이런 생각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예쁜 그림책, 아이가 재밌어하는 책으로 읽어줬다. 즉 환경이 중요하단 이야길 하는 거다.

 
다시 첫째의 영어 화상 수업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이 시스템에는 실시간 화상 수업을 할 수 있는 PC 및 인터넷 환경이 중요한데, 가끔 기술적인 문제(technical issue)가 생기기도 한다. 오늘은 아이의 태블릿 기기가 문제였다. 지난번에 다른 튜터와도 비슷한 문제가 생겨 세션 하나를 날려버렸는데, 오늘도 기기가 문제였나 보다. 저번에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당황해하며 방을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첫째를 따라 들어가 엄마가 투입된다. 이 튜터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참을성이 많으면서 매너도 좋은 분이어서(영국인들은 최고다), Can you see us?라는 내 말에 채팅 창에서 메시지를 봐달라고 한다. 정확히 문제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태블릿 기기가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깜박하고 10분 늦게 접속하기도 했지만 연결 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무심한 튜터의 얼굴이 마치 화난 얼굴 보는 느낌이라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냉큼 내 핸드폰으로 접속을 하니 튜터가 소리친다. Yay~ 이제 잘 보인다는 의미이겠지.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무슨 작은 문제가 있었나 보다고 하니까 노우 프라블럼 하는 튜터. 연결 문제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오늘 세션에서 남은 미닛이 15분 정도밖에 없었다. 수업이야 매번 하는 것이니 오늘은 다른 걸 해보자고, 이야기나 해보자는 튜터. 그렇게 우리의 15분 간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영국인 튜터는 여러 이야기 중에 내게, 근데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한데 이러이러한 표현들이랄까 등등, 넌 도대체 영어를 어디서 언제 배웠니, **에게 너의 경험을 알려주어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왜 안 하니 등등 여러 질문을 했다. 가족을 가르치는 게 조바심과 감정이 앞서 쉽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사실 전적으로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이 모두 영어를 하셨고 영어를 전공했고, 어려서부터 영미권으로 여행도 많이 다녔으며 문화적 경험을 많이 했다. 뉴질랜드에 4주간 현지 패밀리와 홈스테이를 하며 학교에 다녔던 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고 영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반면 내 아들인 **이가 있는 환경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며 문화 자체도 영어권의 문화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둘째도 너무 어리고 현실적인 문제들로 먼 영미권 국가나 유럽 등지로 여행 가는 것이 어렵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진솔한 이야기에 서로 자기의 언어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흥미로운 토크가 계속됐다. **의 아빠는 영어를 할 줄 아니 라는 질문에 나만큼 잘하지 않아서라고 대답하려다 한껏 실망할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비즈니스에서 사용하지만 집에서 사용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때마침 둘째가 난입하였고 너무 사랑스럽고 멋진 가족이구나 하며 대화가 마무리되었다.

엄마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화상 튜터와 신나게 떠들어대는 것을 본 첫째의 느낌은 좀 색달랐나 보다.(집에서 늘 근엄하거나 혼자 오버하는 표정으로 영어를 말하는 엄마와는 달리) 첫째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까 말한 것 중에 ~~ 있잖아~ 나도 들었는데~ 블라블라." 그렇다. 사실 제일 좋은 선생님은 엄마.. 모든 것의 시작은 집에서의 "환경"이다. 이 뻔하디 뻔한 명제를 내가 몰라서 외면해 온 게 아닐진대.. 근데 나는 왜 그렇게 아이의 영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잘하는 듯 보이는 이웃집 아이나 엄마에 되려 주눅이 들며,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까지 느끼는 악순환을 겪어야만 했을까?


영어에 그렇게 자신감도 자부심도 많았던 내가, 살살 흥미를 잃기 시작했던 때는 대학원 석사 과정 때였던 것 같다. (영어나 어학 관련 전공이 아니다) 그 전공 역시 나처럼 외고를 나오고, 원래부터 영어를 잘했거나, 교환학생 등으로 영어 자신감으로 무장한 과정생들 및 선후배들이 아주 많았다.


어느 날 지도교수님과 지도 면담 중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난 말이에요, 어학이라는 게 결국은 메시지거든. 어떤 말을 하고자 하느냐 이거라는 거야. 땡땡씨는 네이티브는 아니니까, 우리 솔직하게 영어는 그럼 intermediate(중급)이라고 쓰면 될 거 같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건대 이 에피소드가 내 얘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시 같이 조교를 하던, 국내 다른 외고를 나오고 영어도 무척 잘하고 똑똑했던 동생이었는데 그 때 그 동생이 내게 이 얘길 해줬었다. 나도 왠지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그냥 여기선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해보겠다.)


이 말에 알게 모르게 그때는 이야기의 당사자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사실 정말 현실적인 얘기고 별 얘기도 아닌데, 누군가의 자신감에 아마도 물을 한번 끼얹은 사건이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래 나도 안다, 내가 native는 아니라는 걸. 하지만 나에게는 나만의 영어정체성이 있었는데, 그걸 뭐랄까 스스로 드러내지 못한 채 석사과정이 끝났다. 자기 생각을 무수히 잘도 발표하는 수많은 친구들 앞에서.. (차라리 남의 말을 세련되게 paraphrase 하는 게 편했던 나는 가설이라는 게 너무 생기질 않아서, 사회과학다운 논문을 쓰지 못하고 겨우 졸업으로 마무리한 게 다행이었다.)


나 역시 지금 와 생각하건대, 그때 교수님의 말처럼 언어는 곧 메시지, 그리고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같은 영어라는 형식으로도 내가 표현하는 것과 내 아들이 표현하는 것, 옆집 아이가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다를 수 있는 거다. 우리의 경험이 다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의 그 시절 자신감이 조금 없었을 뿐이었지, 내겐 나만의 경험과 나만의 영어 브랜드가 분명히 있었다.


나와 첫째 아들은 아까 펼쳤다가 접었던, 과외 선생님과 시작했다는 문제의 그 어려운 교재를 다시 꺼내 들었다. 나는 소리 내어 아까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그 문제의 지문들을 읽었고, 아이는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해준 자세한 부연설명까지 모두. 어라...

세상에 영어 좀 잘한다고 날고 기는 사람 깔렸지, 아이들 중에도 어렸을 적부터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영유아기 때부터 영어 능력은 천차만별. 이런 실력을 가늠하는 객관적인 척도야 방법론에 따라 많겠지만, 중요한 건 "공부에 왕도가 있을까."

단어를 모른다고, 공부 습관이 안 잡혔다고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언어와 "어떤 경험"을 하느냐 일 것이다. 새로 모신 과외선생님이 첫 미팅 때 내게 어떤 내용을 공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해서 내가 처음에 격하게 끄덕끄덕했었는데, 이 선생님이 핀트를 제대로 집고 계신 게 맞는 걸까 잠시나마 의문을 가졌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이리 변덕스럽고 또 조바심이 많은 것일까.

어쩌면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와 영어를 공부하는 경험에서 내가 엉뚱한 것을 아이에게 투사해서 나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내 걱정과 달리 자연스럽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대로 자신만의 언어 경험을 쌓아 가고 있는 중일 거다.

비단 영어만 그렇겠나. 인생의 모든 부분이 다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촌스럽게 영문과 나온 엄마의 이상한 강박 같은 것일랑 내려놓고, 아이의 자신감과 경험을 위해 앞으로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런 훈훈한 마무리로 오늘의 글을 이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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