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그릇이 많다. 신혼 때 장모님이 사준 반상기 세트부터 아내가 도자기 공부하면서 만든 것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퇴직 후, 주방 출입이 잦아지면서 그릇에 관심이 간다. 음식은 격에 맞는 그릇에 담아야 먹음직스럽다.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그릇에 음식을 내게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릇은 손바닥보다 큰 직사각형의 어느 접시다. 촌스러운 도기(陶器)다.
청자색을 흉내 냈지만 칙칙한 쑥색이다. 검은 점이 깨 뿌린 듯 흩어져 있어 싼 점토로 빚은 것임이 틀림없다. 접시라고는 하지만 굽도 없다. 두껍게 민 반죽을 가장자리를 살짝 말아 올려 그릇 흉내만 낸 정도다. 아무 문양도 없는데 오른쪽 위에 뜬금없이 ‘good’이라고 음각으로 표시해 놓았다. 표면은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전문가 솜씨에 비할 수 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나는 그 접시가 좋다. 좋은 이유를 대라면 하나도 댈 수 없다. 그냥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에 계란말이나 생선구이를 담기도 하고, 반찬 세 가지쯤 모양새를 갖춰 담은 후 식탁에 내기도 한다. 음식을 차릴 때 거의 빠지지 않고 식탁에 올린다. 그 접시는 딸이 중2 때 ‘방과 후 수업’에서 만든 것이다.
딸을 처음 만나던 날,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모습에 당황했다. 손가락, 발가락을 세어보며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다른 아기들과 섞여 있어도 누구나 내 딸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나를 빼닮았다. 딸은 커가면서 외모뿐 아니라 체질과 성격도 나를 닮아갔다. 많이 먹어도 살찌지 않고 빼빼한 모습은 나의 이십 대 그대로다. 시니컬하고 비판적인 성격은 나를 빼 박았다. 자기 결정성도 강하다. 사춘기 때는 아빠를 멀리했지만, 대학생이 되자 아빠를 챙기는 모습이 고마웠다. 밖보다 집을 좋아하는 취향까지 나와 비슷하다.
그런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먼 곳에 직장을 구해 독립해 나가자, 마음 한구석의 허전함이 컸다. 나이가 더 어린 아들은 더 멀리 있어도 애틋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딸은 그렇지 않다. 아들과는 필요할 때만 통화하지만(자주 전화하면 짜증 낸다), 딸과는 자주 연락한다. 아들은 “어느 남자도 누나 성격을 맞출 수 없다.”라며, 누가 대시하면 무조건 붙잡으라고 누나에게 충고한다.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내 딸이기 때문이다.
딸을 보는 내 눈에서 하트가 마구 나올 때면 아내도 질투하고 딸도 어이없어한다. 왜 딸이 좋을까? 사실 이유를 찾으려면 찾기 어렵다. 그냥 내 딸이라서 좋다. 요즘 자식 문제로 시끄러운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들을 볼 때 조금 이해되는 면도 있다. 자식에게 특히 딸에게 객관적이기는 쉽지 않다. 어쩌면 자연의 이치 또는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휴가를 맞은 딸이 아침 일찍 출발해 집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전역으로 딸을 맞이하러 가는 기분이 유쾌하다. 픽업해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즐겁다. 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점심을 준비했다. 집 된장으로 끓인 찌개, 계란말이, 차돌박이 간장 샐러드 등. 그런데 딸은 점심만 먹고 바로 친구를 만나러 간단다.
모처럼 딸과 지내고 싶었는데 친구에게 순위가 밀린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자존심 때문에 말은 못 하고, 밥에 딸이 싫어하는 콩을 잔뜩 집어넣었다. 딸은 아빠의 심기를 살피며 꾸역꾸역 콩밥을 먹는다. 심통 난 남편과 황당해하는 딸을 보면서 아내는 그저 킥킥 웃고 있다. 작년, 친지 결혼식에서 내내 울고 있던 신부 아버지를 보며 비웃었는데, 장차 내 모습이 될 것 같아 두렵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육아로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처가에 일주일 정도 가 있으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아내는 기쁜 마음으로 친정에 갔었다. 다음 날 침울해하며 돌아왔다. “출가외인이 남편을 내두고 혼자 왔다.”라는 장인의 불호령에 주섬주섬 짐을 싸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평생 배를 타고 고기를 잡은 장인은 어려운 살림에도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만 하신 분이다. 오랜만에 당신의 딸이 손주들과 왔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장인은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저 딸이 굳세게 가정을 꾸려나가기만 바란 것 같다.
이제 다 성장한 딸이다. 아직도 딸의 생활에 참견하고, 어려울 때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물리적으로 독립시켰지만, 정신적으로 독립시키지 못하는 나다. 여전히 중2 딸을 마음에 두고 있는 미숙한 아빠의 모습이랄까. 아니, 딸은 진즉 독립했는데 나만 애태우는 꼴이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가족의 개념도, 전통적인 아버지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일까? 답을 찾을 수 없다. 어떤 형태든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만은 여전하길 바랄 뿐이다.
딸이 만든 접시를 그릇장에서 꺼낸다. 한걸음 뒤에서 보니 역시 거칠고 투박하다. 누가 보더라도 못난이 그릇이 맞다. 그릇을 향한 내 마음은 여전하지만, 이제 서서히 거리를 두어야겠다. 꼭 필요할 때만 그 접시를 써야겠다. 딸이 결혼할 때 예쁘게 포장해서 사위 놈에게 인계해 줄 생각이다. 속은 쓰리겠지만 그게 딸의 행복을 위한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