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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Apr 14. 2022

쑤니비똥

코로나 시대의 일상 -  아내의 옷 만들기 


아내가 또 일을 냈다. 아침 식사하고 잠시 쉬는데 우체국 아저씨가 특급우편이 왔다며 초인종을 눌러댔다. 아내 앞으로 온 조그마한 소포였다. 열어보니 하늘색 비단 띠에 금박으로 ‘SOONEE VUITTON’이란 영어가 연속적으로 인쇄된 긴 라벨이었다. 옷을 사면 소매 바깥쪽에 붙어 있는 상표, 그것이다. 하나씩 잘라서 옷에 붙이면 된다. 

쑤니비똥 라벨


두 달 전 아내는 비어있던 아들 방을 옷 만드는 방으로 바꾸었다. 며칠 전에는 ‘쑤니비똥’ 브랜드를 론칭한다고 선언했다. 라벨까지 만든 걸 보면 본격적으로 옷 만들기를 시작할 모양이다. 경험으로 보면 이런 아내의 시도는 대개 실패로 귀결되었고, 후유증은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았다. 아내는 진짜로 내가 사표 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더니 현실을 인정하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푹 쉬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아내에게도 사표를 내라고 슬며시 꼬드겼다. 이왕 노는 김에 같이 신나게 놀아 볼 심산이었다. 은근히 직장 일에 재미가 없던 아내는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부부 실업자가 되었다. 계획상으로는 제주도, 조지아, 치앙마이 등을 돌아다니며 한 달씩 살아 볼 작정이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으로 그 계획은 당분간 실현 불가능한 꿈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가 터진 것이다.




사악한 남편의 꼬임에 넘어간 아내는 나갈 직장이 없으니 적응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까지 겹쳤다. ‘평생 원수’라는 남편과 24시간 집안에서 붙어 있어야 할 상황이었다.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봄이 되자 아내는 화분 분갈이하고, 꽃을 심으면서 옥상 정원 가꾸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장미가 만발한 오월, 수국이 품위 있는 유월은 경쟁적으로 피는 꽃들로 심심하지 않았다. 한여름에는 제라늄과 란타나가 예뻤다. 국화가 몽우리를 맺을 무렵, 아내는 뭔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 찾다가 문화센터의 ‘의류 패션’ 강좌에 등록했다. 곧 옷 만들기가 적성에 맞는 또 다른 소일거리임을 깨달은 것 같다.


신혼 때, 심심해하는 아내에게 사주었던 미싱은 너무 구식이었다. 힘이 없어 두꺼운 천은 다룰 수 없었다. 아내는 강좌가 시작된 지 얼마 후, 보상판매의 유혹에 넘어가 새 미싱으로 바꾸더니, 추가로 오버록 미싱까지 구매했다. 내친김에 아들 방의 옷장을 내다 버리고 긴 작업대를 설치했다. 제법 전문가다운 봉제 시스템을 갖추었다. 아내가 옷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자, 덩달아 내 자유시간이 많아져서 좋았다. ‘잘한다.’라며 아내의 사기를 북돋아 주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옷 만드는 데는 모델이 필요하다. 더욱이 배우는 단계에서는 시제품을 입어 주고 평가해 줄 사람이 필수적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아내의 1호 모델이 되었다. 아내의 첫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두꺼운 남방을 벤치마킹한 밤색 집업셔츠였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들어맞게 마련이다. 그 옷을 처음 보았을 때 북한 인민복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아래 주머니는 없었고 대신 가슴팍에 커다란 앞주머니를 하나 달아 놓았다. 그나마 너무 안쪽에 달아 옆구리 쪽에 주머니가 있는 셈이었다. 천이 두꺼워 단추 구멍 만들기가 어려워지자 소매 끝은 그냥 꿰매 버렸고, 앞 단추는 지퍼로 변경되었다. 옷깃은 너무 작고 뻣뻣해서 원숭이 귀처럼 바짝 선 모습이었다. 


장점은 단 하나 담요가 연상될 정도로 따뜻하다는 점이었다. 추운 다락방에서 입기에 딱 좋았다. 종일 다락방에서 소일하는 나는 따뜻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옷을 줄곧 입었다. 고무된 아내는 이어 나의 잠옷 바지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럴듯했다. 한 번 빠니 팔부, 두 번 빨자 칠부로 쪼그라들었다. 곧 반바지로 바뀔 태세다. 아내는 시제품용 옷감으로 잘 팔리지 않던 대폭 세일 제품만 샀고, 모두 나의 전용천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었다. 아내가 듣던 강좌도 기약 없이 연기되다 폐강되었다. 기초를 어느 정도 배운 아내는 유튜브를 보고 실습을 반복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붙자, 첫 아이를 가진 조카며느리에게는 임신복을, 자신의 일상복으로는 원피스를 만들었고, 두꺼운 기모 천으로 티셔츠를 여러 장 만들었다. 예의 바른 딸이 지나가는 말로 잠옷 하나 예쁘게 만들어 달라고 하자, 첫 공식 주문에 신이 난 아내는 완성품을 두벌 사고도 남을 고가의 천을 주문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잠옷을 딸에게 입혔다. 천이 좋은 만큼  그런대로 보기에 좋았다. 그때 흡족한 딸이 제안한 상표가 ‘쑤니비똥’이었다. 


평소 명품가방 하나 사주지 못한 남편에게 불만이 있었는데, 딸이 제안한 쑤니비똥이란 이름은 꽤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상표로 비광이나 똥광이 제격이겠지만, 아내는 딸을 반 협박하여 ‘SOONEE VUITTON’ 라벨을 인터넷에 주문했다. 게다가 라벨을 옷 속이 아니라 옷 밖에 붙이겠다고 고집하는 것을 보면, 조만간 그 라벨을 붙인 인민복을 입고 마트에 가는 나의 모습을 볼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얼마 전 아들 생일을 맞아 가족 네 명이 다 모였다. 모두 쑤니비똥 잠옷을 입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매년 겨울이 되면 서너 벌의 홈웨어를 샀었는데, 올해는 아내가 만든 옷으로 따뜻하게 나고 있다. 아내가 열정을 쏟을 일이 생겼다는 점은 다행이다. 정원 일이 없는 겨울에는 더욱 그렇다. 



코로나가 모든 것에 나쁜 영향만 준 건 아닌가 보다. 외식을 자제하면서 집밥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좁은 집에 가족끼리 부대끼면서 서로의 존재와 소통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던 인간이 자연의 반격에 무력함을 깨달은 것은 덤이다.


아내는 다시 직장을 찾는 눈치다. 올해도 마음 놓고 다니기 어려울 것 같으니, 소일거리를 찾는 게다. 일자리보다는 쑤니비똥을 계속 운영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다만 더 세련되게 만들어 아내의 작품을 입고도 당당하게 활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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