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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Apr 06. 2022

백서향과 말똥

올레 14-1 코스를 걸으면서


올레 14-1코스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 마을회관에서 오설록 녹차박물관까지다. 서부 중산간 지대를 관통한다. 한쪽 끝만 고리 모양의 올레 망에 붙어 있어 리본처럼 펄럭인다.  

    

오설록 정류장에서 내려 역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단정하게 깎은 소년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녹차 밭을 지나면 올레 14-1코스가 시작된다. 섬 식물들이 정글을 이루는 곶자왈이 계속 이어진다. 육지의 길과 사뭇 다르다. 제주의 깊은 속살을 느낄 수 있다. 이십여 분을 걸었지만, 반대쪽에서 오는 올레꾼들은 아무도 없다. 가끔 들리는 산새 소리만 외로운 산행에 함께한다. 

     



어디서 일까. 낯선 향기가 간헐적으로 바람에 실려 온다. 학창 시절, 버스 앞자리 여학생의 덜 말린 머리에서 나던 걸까? 엘리베이터에서 맡았던 것 같기도 하다. 향기는 진해졌다가 희미해지길 반복한다. 길가 숲에는 흰 꽃이 아름다운 관목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작은 꽃들이 무리를 이루고, 꽃  무리 여러 개가 나무 전체를 덮고 있다.

제주 백서향 - 향기가 정말 강하다

      

향기는 그곳에서 나고 있다. 제주 백서향이다. 가까이 가니 향이 폭발적이다. 천리향의 꽃은 분홍색인데 백서향의 꽃은 흰색이다. 더 소박한 느낌이다. 낯선 곳에서 맡는 향기가 싫지 않다. 백서향은 올레길을 따라 군집으로 자생하고 있다. 삼월은 백서향이 꽃 피는 계절이다. 

    

걷다 보니 가끔 향기를 방해하는 냄새가 있다. 희미하게 올라오는 말똥 냄새다. 이 길은 말도 같이 다닌다. 순한 놈들만 풀어놓아서인지 길에서 만난 말들은 경계심이 없다. 하지만 놈들은 예의가 없다. 좁은 길 복판에 거리낌 없이 실례해 놓아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애당초 이 길의 주인은 말이었다. 좋은 목초나 샘을 찾아 말들이 다니던 길을 올레란 이름으로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방목하는 말의 똥 냄새는 강하지 않다. 모양도 단정하다. 모닝 빵 한 봉지를 쏟아놓은 것 같다. 그렇지만 똥이란 사실만으로 나는 코를 찡그린다. 

     



도시에 사는 나는 냄새에 민감하다. 특히 축사 냄새를 싫어한다. 귀촌을 꿈꾸며 몇몇 후보지를 정해 놓고 내가 살만한 곳인지 살펴보고 있다. 인근에 축사가 있는지가 첫 번째 고려사항이다. 위성사진을 보고 축사 비슷한 것이 있으면 일단 제외한다. 축사가 없더라도 ‘가축사육 제한구역’인지 확인한다. 정착한 후에 축사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초식동물인 말이나 소의 똥 냄새는 덜하고, 잡식성인 돼지 똥 냄새는 멀리 간다. 어릴 적, 나는 시골에 살았다. 집마다 소나 돼지를 키웠다. 농사를 짓지 않던 우리 집도 뒷간에 붙은 돼지우리가 있었다. 돼지 냄새로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도시에 오래 산 지금은 그것을 피해야 할 악취로 규정하고 있다. 

    

14-1코스 최고봉인 문도지 오름 정상에 도착한다. 백서향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문도지 오름은 사유지로 목장이다. 오름 정상에서 보는 제주 풍경은 장엄하다. 가까운 저지 오름, 동쪽의 한라산, 그리고 서쪽의 해안선까지 거칠 것이 없다. 

     

돗자리를 펴고 점심으로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정상 여기저기에 말똥이 흩어져있다. 냄새가 덜 난다고 생각하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한 시간 전만 해도 혐오 대상이었는데 지척에 있어도 괘념치 않는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두 마리의 말이 우리 옆으로 다가온다. 살짝 무섭다. 녀석들은 우리 음식에는 관심이 없다. 풀을 뜯으며 자기들끼리 즐기고 있다.  

문도지 오름에서 본 제주 풍경

   



냄새의 사전적 의미는 ‘코로 맡을 수 있는 온갖 기운’이다. 즉 후각에 의해 구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한다. 세상 많은 것에는 냄새가 있다. 살아있는 것에 냄새가 없으면 뭔가 수상쩍다고 느끼게 된다.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주인공 그루누이는 냄새에 대한 초자연적인 감각을 지녔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냄새가 없는 그에게서 악의 기운을 느끼고 멀리한다. 사람에게도 고유한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아침, 저녁으로 샤워하고 옷도 자주 갈아입는다. 냄새는 그렇게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몸에서 뿜어내는 저급한 분위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퇴직 후 옅어졌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심, 돈을 좇는 물욕, 굳어 버린 고집 등 버리지 못한 것이 많다. 말똥만 보고도 코를 잡은 나처럼,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TV 인간극장에서 백 살이 넘은 김형석 교수의 지금 사는 모습을 보았다. 삶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직도 학자의 풍모와 너그러움이 넘친다. 따르는 제자들도 많다. 그분 같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의 나의 삶이 주변 사람들의 기피 대상은 되지 않길 바란다.

     



한 시간쯤 더 걸어 종점인 저지마을에 도착한다. 축사 냄새가 심하다. 흑돼지 농장이 근처에 있는가 보다. 코를 찡그린다. 사람 사는 마을에 냄새나는 것은 당연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여전히 축사를 피하게 된다. 그래도 이제는 ‘절대 안 돼’에서 ‘할 수 없다면’ 쯤으로 완화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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