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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Mar 31. 2022

매일 꿀잠을 자는 사람은 행복하다

다락방 창으로 들어온 오후의 봄 햇살. 회색 러그 위에 몸뚱이만 한 밝은 네모를 그려낸다. 식곤증에 햇살을 이불 삼아 러그 위에 눕는다. 따뜻하다. 스르르 잠이 든다. 햇살이 움직여 얼굴을 간질인다. 잠결에 조금 위로 움직인다. 그러기를 몇 번. 해는 서쪽으로 낮게 걸어가고, 나는 동쪽으로 조금씩 도망간다. 삼십 분쯤 다투다 잠에서 깬다.     


낮잠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아침잠이 없어 늘 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찍 자면 되련만, 미적미적하다 대개 자정 무렵 잠자리에 든다. 생체 시계는 놀랄 만큼 정확하다. 여섯 시가 되기 전에 항상 눈이 떠진다. 늦게 자도 마찬가지다. 해가 빨리 뜨는 여름에는 덩달아 기상 시간도 빨라진다.  

    

온도가 올라가면 몸도 노곤해지는 법. 봄이 되면 낮잠이 더 간절해진다. 보통 이십 분 정도 자고 길어도 삼십 분을 넘지 않는다. 낮잠을 자지 않은 오후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뇌와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직장 다닐 때도 그랬다. 점심을 빨리 먹고는 의자에서 쪽잠을 즐겼다. 그래야만 오후 일을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나도 잠이 많은 평범한 아이였다. 중3 학기 초였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갈아타고 1 시간 반쯤 가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8 시 반까지 도착해서 자습하라고 말씀하셨다. 7 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씻고 밥 먹다 보면 항상 아슬아슬했다. 어느 날 좀 늦게 교실에 들어가니 지각생 여러 명이 교단에 서 있었다. 선생님은 지각생들을 한 명씩 면담하고는 매를 들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너 고등학교 어디 갈 거야?”  

  “공고 갈 건데요.” 

  “그래? 넌 늦게 와도 돼.”     


인문계 고등학교를 희망했던 앞의 친구들과 달리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적당히 해도 웬만한 공고는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매를 맞지 않은 기쁨보다 친구들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 관심 대상에서 빠진다는 것, 장래가 다르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실업계로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일깨워 준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다음날부터 삼십 분 더 일찍 학교에 도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여섯 시 전에 일어나는 습관을 지닌 계기가 됐다.     



사당오락(四當五落).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라며 입시생들을 독려했던 말이다. 빌 브라이슨은 그의 저서인  ‘바디-우리 몸 안내서’에서 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한 시간 늦추면 출석률과 시험 성적이 오르고, 교통 사고율, 자해 비율, 우울증도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또 수면 부족이 질병이나 알츠하이머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잠을 많이 자는 것, 늦게 일어나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다. 게으르다고 여긴다. 적게 자고 그 시간에 일하거나 자기 계발하는 것이 미덕이다.


나도 그렇게 여겼다. 일찍 일어나 출근 시간 한 시간 전에 직장에 도착하는 것이 내게 정한 규칙이었다. 평생 그렇게 일하니 성실하다는 인정은 받았다. 몸 사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십여 년 전, 회사 내의 연이은 사건으로 5 개월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자며 일한 적이 있다. 자정 넘어 퇴근해서 잠깐 눈 붙이고는 아침 7 시까지 출근하는 식이었다.

      

잠 부족은 바로 몸의 고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직장 현실은 냉정했다. 내가 힘들 때, 다들 입으로는 고생한다고 걱정해 주지만, 속으로는 불똥이 튀지 않기만 바란다. 노동이 직장에 몸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행위임을 깨달았다. 그 일로 몸 관리와 잠의 중요성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무리해서 일하지 않는 것을 새 규칙으로 추가했다.      


퇴직한 지금도 6 시 전에 잠이 깬다. 한 시간쯤 아침 운동을 하고는 아침밥을 준비한다. 습관을 고치기 쉽지 않다. 요즘은 스마트워치로 잠을 관리한다. 잠을 충분히 자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자면 수면 시간과 효율을 알려준다. 추세를 분석해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 잠의 질은 나쁘지 않지만, 이번 주에도 이틀이나 다섯 시간 이내로 잠을 잤다. 나이가 들면서 잠이 더 줄 텐데 걱정이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은 참 잘 지은 것 같다. 매일 꿀잠을 자는 사람은 행복하다. 잠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대통령도 서민도 모두 평등하다. 오히려 많이 가진 사람이 걱정도 많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출근할 곳이 없어진 지금, 눈 뜬 상태로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도 있다. 6 시 이전에 일어나는 원칙이 조금씩 흔들린다. 다행이다. 이제는 적당한 선에서 몸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오늘 낮잠은 정말 달았다. 밤잠도 이렇게 달콤하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꿈을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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