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직장에 가기 싫어졌다. 누가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일이 버거운 것도 아니었다. 계속 다니면 월급은 꼬박꼬박 챙길 수 있는데 마음의 병이 생긴 것일까. '출근 시간 한 시간 전까지 회사에 도착하겠다.'라는 평생 지켜온 다짐이 깨졌다. 일찍 집을 나섰지만, 회사 근처의 공원에 차를 대고 라디오를 듣다가 출근 시간이 임박해서야 회사로 가는 날이 자주 생겼다.
다니던 직장이 한순간에 적폐로 몰린 탓이 컸다. 평생 해왔던 일을 부정당하는 현실에,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없었다. 직장의 목표가 흔들리자 나도 흔들렸다. 업무 중에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동료나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직장에서 일할 때 더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들이 직장을 얻어 독립해 나가자, 건강을 핑계로 미련 없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1년은 여행만 다니며 재충전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직장에 잘 다니고 있던 아내를 꾀어서 사표를 내게 했다. 돈 생각하지 않고 같이 서유럽을 한 바퀴 돈 후, 치앙마이, 조지아, 포르투갈 등에서 한 달씩 살아 볼 계획이었다. 그런데 퇴직 후 바로 코로나19가 터졌다. 결국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끝으로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집콕 신세가 되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늦어도 아침 7시에는 집을 나섰다. 갈 곳이 없어지자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매일 휴일로 여기고 늦잠을 자며 여유를 부렸다. 한 달쯤 지나니 삶이 무기력해지고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평생 지켜온 생활 리듬은 하루아침에 바뀌기 힘든가 보다. 몸이 찌뿌둥해지고 덩달아 마음도 나사 풀린 듯 휘청거렸다.
수영장에 등록했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한 시간 수영 강습을 받으면 그날 하루가 상쾌했다. 무엇보다도 출근하듯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갈 곳이 있다는 점이 좋았다. 몸이 아파도 한 주에 다섯 번은 수영장으로 향했다. 2020년 말, 코로나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천 명을 상회하자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달리기로 대체하려고 며칠 산책로로 갔지만, 마스크를 쓰고 달리면 너무 숨이 막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계단 오르기다.
아침 해가 뜨면 운동복 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집을 나선다. 호출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가볍게 몸을 푼다. 천천히 내려가며 가만히 거울을 본다. 꾀죄죄한 얼굴. 오늘따라 더 추레해 보이는 초로의 아저씨다. 지하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스마트폰의 FM 라디오 앱을 켠다. 결연한 의지와 함께 어둠 속의 지하 2층 계단실로 진입한다. 유도등의 희미한 불빛을 의지하여 사뿐사뿐 계단을 오른다.
지하 2층에서 내가 사는 꼭대기 층, 25층까지의 계단은 총 504개, 높이로 치면 70m가 조금 넘는다. 매일 6번 오르니까, 400m의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매주 한라산을 한번 오르는 것이라고 암시를 걸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릴 때는 엘리베이터 이용한다. 그 시간을 포함하면 50분 정도 걸린다.
계단으로 출근하는 시간은 계절마다 달라진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아침 7시 반쯤에, 해가 길어지는 여름에는 6시쯤에 집을 나선다. 계단 센서등이 그때쯤 되어야 꺼지기 때문이다. 어두운 새벽에 계단을 오른다면 나의 움직임과 함께 모든 센서등이 차례로 켜진다. 뒷동에서 보면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일 것이고 전기 낭비도 심할 것이다.
계단으로 출근한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주 5일 근무를 목표로 집을 나선다. 컨디션이 좋으면 하루 더 출근한다. 계단을 오르며 오늘 할 일을 정리한다. 백수가 과로사하는 법. 오라는 데는 없지만 할 일은 여전히 많아서 계획적으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어떨 때는 계단에서 글 한 편을 쓰기도 하고, 퇴고하기도 한다. 계단 오르기 덕분에 다리도 튼튼해지고 나를 괴롭혔던 갑상샘 기능 항진증도 잠잠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계단 오르는 횟수가 여섯 번에서 다섯 번으로 또 네 번으로 점차 줄겠지만, 지금의 아파트에 사는 동안, 계단은 나의 평생직장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