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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욱이 Mar 22. 2023

눈요기

섭지 22. 03. 14




하루하루 날씨만 바라본다. 다음날 비가 내릴까. 그 다음날은 태양이 방긋 웃어주겠지. 뚫어져라 일기예보만 바라봤다. 3월 12일 토요일이다. 가로 4m, 세로 2m의 미닫이 창문을 열고 하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마주한다. 365일 중 몇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하늘은 놀랍도록 파랗다. 2022년의 새해 아침,  늘 마음속에 남아있던 아쉬운 1월 1일의 하늘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장기적인 코로나로 연락할 처지도 되지 못한다. 외로운 혼자만의 길을 나섰지만 생각치못한 맑은 날씨에 마냥 웃음만 얼굴을 뒤덮었다. 

오랜만에 성산 일출봉으로 외출을 위해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지만 단. 1분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25분이란 시간을 더 기다려야만 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라 여기겠지만 학교를 다닐 때 듣기 싫은 수업을 듣는 기분처럼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30분 정도 흐른 것 같은 느낌에 시계를 쳐다보니 이제 막 7분이 지났을 뿐이다. 


지루함 사이 그사이를 비집고 나오려는 또 하나의 무언가 있다. 아침 식사와 같이 마셨던 430ml의 두 컵의 물이 꿈틀거린다. 생각 않으려고 하지만 더욱 잊어버릴 수없는 고통이 밀려온다. 버스 정류장 주변을 둘러보지만 화장실을 찾기 쉽지 않다. 뒷편으로 카페가 있지만 화장실만 사용하기는 그렇다. 커피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입과 코는 아직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마스크에 봉쇄당한지 오래다. 잊자 잊자 두뇌를 조종하며 되새겼더니 조금의 여유가 있는 상태에 이르렀고 버스를 타면 잊어버리겠거니 생각했다. 스스로가 오만했을까? 한순간의 위험이 잠시 잊혀졌을 뿐 버스를 타고 20분이 지나며 한쪽으로 생각이 치우졌다.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 달려갈까. 정류장을 지나칠때마다 내렸어야 할까? 머리속은 수많은 생각으로 거미줄 역이듯 엉키고 설겼다. 몇 개의 버스 정류장을 지나 얼마남지 않은 목적지 성산일출봉 버스 정류장까지만 가자며 외치고 외쳤다. 딴 생각을 하면 잊을까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고쳐잡지만 저돌적인 방광이다. 눈앞에 있던 시계와 스마트폰의 지도를 돌려 남은 정류장 개수만 체크하기를 수십 번. 20개, 10개 다시 15개로 오락가락하는 시간에 짜증과 암흑이 늘어간다. 엎치락 뒤치락 눈앞이 빙글빙글, 더욱더 버스에서 내려야겠다 라는 중압감을 이겨가며 참을 忍 을 마음에 새겼다. 


가까스로 도착한 성산일출봉 정류장. 일말의 여유도 생각도 없이 엉거주춤 근처 화장실에 당도한 난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되찾았다. 이것만큼 더 큰 모험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급박한 순간이고 정말 아찔한 순간이다. 


무거운 짐을 틀고 평온을 등에 업고 나니 비로소 시끄러움 마져 소근소근 속삭임으로 들린다. 가벼워진 몸을 냉큼 광치기 해변으로 날렸다. 파도는 높지 않지만 바람은 거세고 해수의 수위는 다른 날과 다르게 높다. 자칫 썰물이 밀려와 아름다운 광치기 해변의 아마존을 잠식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하루다. 평온했던 마음은 고등어 조림을 쪼리 듯 입가는 메말라 왔고, 파란 하늘에 뜰 뜬 기분은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만큼 떨려오는 심장을 자중시켜야 했다. 앞으로 150m, 눈앞에 펼쳐질 초록 풍경의 세상이 눈앞에 미리 담겨졌다. 화산 활동으로 인해 분출된 용암이 굳어 생겨난 바위는 세계 전역을 돌아다녀도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수십번을 다녀갔지만 보고 또 보고 남겨야 할 명장면 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다행히 만조에 이르지 못한 해수면. 푸릇푸릇 돌에 낀 이끼가 사람을 불러모았다. 광치기 해변을 지나 섭지코지를 가야했지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서쪽으로 넘어가는 태양에 애만 탄다. 우선 첫째로 화려한 복장에 감귤 모양의 모자를 쓴 아이에게 눈길이 쏠린다. 누나와 동생의 캐미가 너무 재밌어 보인다. 스스럼없이 바다 위에 솟아오른 바위로 향한다. 둥둥 걷어 올린 옷이 물에 젖을까 엉거주춤 거리며 걷는 모습이 귀엽다. 1평 남짓 되는 바위에 올라 손을 흔들며 정복했다는 희열을 느낀다. 이제 곧 봄이 찾아 온다지만 어쩐지 은근히 더운 날씨는 바다에 발을 담근 아이들에 반해 이마에 땀이 맺힌다. 봄을 뛰어넘어 여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른다. 수천 킬로미터가 되는 남극의 얼음이 녹고, 2021년 100년 만에 폭우가 내린 독일처럼 3월의 더위도 지구 이상 기후의 하나다. 아이들의 유혹에서 벗어나 밀려오는 파도를 피해가며 150m의 모래사장을 더 걸었다. 100평 정도의 초록 평상이 파도에 쓸려 가며 맞아준다. 산 마루 정상을 정복하듯 발을 올렸다. 으라라 엉덩방아와 뒤통수가 깨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 한 두 번 당해본 게 아니라 찰나에 위기를 모면했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광치기 해변에서 병원 직행 버스에 오를 뻔했다.


(중략)


발이 빠지는 입자 고운모래와 탄탄한 모래를 내지르며 때 아닌 체력 훈련이다. 최소한 40분은 모래 위를 걷고 달렸다. 땀을 빼는 동안 언덕 위로 많은 사람이 지나갔고 모래사장을 박차고 달리는 말도 지나쳤다. 날씨가 맑으니 일도 많이 벌어지는 하루다. 지친 몸을 이끌고 반환점에 이르러 몸을 돌렸지만 하필이면 노란 유채꽃을 마주하고 말았다. 주차된 자동차 댓수에 예감하고 미리 도망쳤어야 했다. 떠나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뒷 꽁무니를 따라가는 것과  똑같다. 이제 두 번째  눈요기를 하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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