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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자료 조사가 어렵다더니 하루 만에 말이 바뀌었다. 사실 나는 어떤 분야든 간에 취재와 자료 조사 과정을 건너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직 써 본 적은 없지만 이론상으로는 완벽하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잘 쓴 글을 보며 감탄하기보다는 티클만 한 실수를 잡아내는 것이 더 즐겁다. 그 실수가 내 전공이나 특기와 관련 있다면 금상첨화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티클'이라는 단어를 고쳐 주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을 것이다.
리모델링을 마치고 홈 카페를 만들 생각으로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를 장만했을 때 일이다. 바리스타 자격증도 없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없어 분쇄도는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원두는 몇 그램을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차근히 검색해 봐도 사람마다, 원두마다, 머신마다 말이 다 달라서 무엇을 신뢰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에 초보 바리스타가 연습 삼아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쇼츠가 떴다. 댓글 창은 훈수 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업로더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겠지만 '이 심리를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마니아들을 자극하는 영상을 올린 다음 '조언'을 기다리는 것이다.
자료 조사 없이 상상에 의존해 글을 쓴다. 검색에 잘 걸리도록 관련 키워드를 집어넣는다. 올린다. '조언'이 달리기를 기다린다. 댓글이 올라온다. '뭐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면서 글을 쓴다고 난리냐' '학교에서 뭘 배웠냐' '이 분야가 만만해 보이냐' 등등 인신공격 사이에서 도움 될 만한 내용을 쏙쏙 골라내 글에 반영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두부 멘탈인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을 것 같다. 역시 뭐든 정도가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