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B형, 아들 둘, 40대 워킹맘.
나에 대해 간단히 말해 보자면,
나이 드는 게 썩 반갑진 않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나이 들려 애쓰는 편이다.
소로의 삶을 동경하지만 사실 그렇게 살 자신은 없고(자연과 가까운 근교도시를 선호하지만 시내와 너무 떨어진 것은 노노, 아파트가 주는 안락함을 벗어날 만큼 부지런하진 못하다).
세상에 초연히 살고자 하지만 정작 귀는 얇아서 종종 이리저리 흔들린다.
별생각 없이 조용히 살고 싶었지만, 별생각 없이 살기엔 힘든 세상이란 걸 한창 실감하는 중이다.
아이들에겐 나가서 열심히 뛰어놀고 네 꿈을 찾으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공부 좀 하란 소리도 그에 못지않게 한다.
조금 엉뚱하고 약간 비현실적인 데다 쓸데없는 공상하는 게 취미인 허당 아줌마. 한마디로 철이 좀 덜든 어른.
그런 내가, 어쩌다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공무원이 되었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꽤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던 학구파였다.
그러던 것이 적성은 생각도 못하고 성적에 맞춰 들어간 기계공학과에 적응하지 못한 채, 4년 내내 엉뚱한 것들을 기웃대다 간신히 졸업만 했다. 졸업 후에는 학과와 전혀 상관없는, 그즈음 막 뜨기 시작하던 웹디자인의 세계에 텀벙 빠져버렸다. 졸업 후 거진 독학으로 공부를 하고 개인 웹사이트 하나 만들어 올려놓은 게 다인 채 겁도 없이 여기저기 이력서를 집어넣었다. 다행히 당시는 그 부문이 블루오션인 덕에 나는 운 좋게 취직을 하게 된다.
그렇게 5여 년.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즐거웠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들어간 대기업에 비하면 택도 없는 월급이었지만, 무엇보다 일이 즐거웠고 내 나름의 프라이드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해지는 창작의 고통과 그에 따른 필연적 편두통에 시달리며 탈출의 욕망에 휩싸이던 즈음, 나는 서른을 맞았다. 예정된 수순처럼 또래에 비해 이미 늦어버린 결혼을 서둘러하고 신랑의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와 전업주부가 되었다.
그러나 내가 자유의 기쁨을 만끽한 건, 딱 한 달이었다.
전업주부로서 출퇴근도 하지 않고 아직 아이도 없으니 그야말로 여유로운 생활이었지만, 하루종일 마냥 신랑만 기다리는 일상이 답답했다. 다시 일이 하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운 일을 찾아 여기저기 눈을 돌리고 있을 때, 딱 마음에 꽂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공무원이었다.
신혼살림을 차린 20평대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관공서가 하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관공서에 갈 일이 거의 없는 까닭에 집 근처에 있어도 딱히 관심을 가질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신혼집으로의 전입 신고를 하기 위해 난생처음 집 앞 행정복지센터(구 동사무소)에 들르게 되었다. 신고서 작성 후 신분증과 함께 담당 직원에게 건넨 나는 신고가 처리되는 동안 별생각 없이 사무실을 휘휘 둘러보았다. 민원은 몇 보이지 않고 직원들은 조용히 모니터를 향한 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의 그 광경이 얼마나 고요하고 편안해 보이던지.
순간,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앞의 직원이 앉아있는, 바로 그 자리에 앉고 싶어졌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당장 지방 공무원 9급 시험 일정에 대해 알아보았다. 마침 석 달 뒤에 시험이 있었다. 수험 계획을 짜고 인강과 교재를 준비하며 시험 수준이 어떤지 알아도 볼 겸 일단 시험을 신청했다.
그리고 삼 개월 뒤.
이게 웬걸? 시험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왔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한 번에 붙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워하며 나는 호기롭게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신랑이 출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나도 집 근처 도서관으로 출퇴근을 시작했다. 점심은 도시락이나 도서관 구내식당을 이용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다시 하루의 시간에 리듬이 생기고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일상에 활기가 돌았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앞서 말했듯이 학창 시절 엉덩이 붙이는 힘 하나는 자신 있었다. 열심히 하면 내년에는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 년, 주말에도 회사일로 바쁜 신랑과 마찬가지로 나는 주말에도 웬만하면 공부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인강과 교재, 문제집을 무한 반복하며 평균 점수를 높여갔다. 그러나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공부는 힘겨워졌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도착해 수십 번도 보고 또 본 교재를 펼치다 보면 정말이지 욕지기가 치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때 그 사무실의 정경을 떠올렸다. 그러면 나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아, 꿈은 이루어지는가!
일 년 뒤,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듣는 순간 진심으로 행복했다. 남은 생은 시민에 봉사하며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공직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의 첫 발령지가, 바로 집 앞의 그 행정복지센터였다. 한달 뒤 신규교육을 마친 나는 그렇게 바라고 꿈꾸던 그 자리(정확히 말하면 그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된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단순한(단순해 보이는?) 업무, 여유로운 일과 시간, 다양한 휴직제도, 신분보장(웬만해선 안 잘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6시 칼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공직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정년까지 계속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였다(거기에는 물론 공무원의 업무가 조금 만만해 보인다는 오만한 생각이 깔려 있었다).
월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연차가 쌓이면 차차 올라갈 테니(사실 웹디자이너의 월급도 썩 넉넉하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건 워라밸과 남은 생을 쭉 함께할 나의 일이었다. 이제 남은 인생은 공직에서 너무 치열하지 않고, 조금 쉽게 살아가리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러. 나.
내가 겉으로만 보고 어설프게 파악한 공무원의 실상은, 대부분 겪어보지 않은 자의 착각에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