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 더 헬! 공직 입사 한 달 만에 온 현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_베르세르크
단언컨대 세상에 편한 일은 없다.
편해 보일 뿐이지.
공무원~ 편해 보이는데?
그때 그 사무실을 둘러보며 내가 했던 생각이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다.
당연히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의 몫이고.
신규 교육을 마치고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집 앞 행정복지센터로 발령이 났다. 주소지 가까운 곳으로 편의를 봐준 것이겠지만, 뭣도 모르는 내게는 기적도 그런 기적이 없어 보였다. 그때까지만도 나는 그저 행복한 단꿈에 젖어있었다. 실상은 전혀 모른 채.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곳은 우리 시 내에서도 민원이 많기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법원이 지척에 있어 법원으로 들어가는 각종 서류들을 떼기 위해 일반인은 물론이고 법무사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하루에도 수십 장씩, 심하게는 백 장씩 맡겨놓고 가는 곳이었다.
그러면 내가 들렀을 때의 그 한산해 보이던 광경은 어떻게 된 것일까?
알고 보니 그건 민원과 민원 사이의 작은 틈 같은 거였다. 그러니까 내가 잠깐 봤던 그 고요한 시간은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민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다음 밀물이 밀려들기 직전의 짧은 순간이었던 거다.
첫날 배정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파도처럼 몰려드는 민원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 정도냐면, 아침에 커피를 타고 자리에 앉으면 커피가 식기 전에 제대로 마셔본 적이 드물고, 사람이 계속 몰리다 보니 화장실 갈 시간조차 없어 참다 참다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다. 민원이 잠시 끊긴 시간조차도 나중에 오겠다고 맡겨 놓고 간 서류들을 정신없이 처리해야 했다.
오 마이 갓!
세상 편해 보였던 그곳의 실체는 그야말로 왓 더 헬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것은 버텨낼 수 있었다. 업무야 적응이 되면 조금 더 빨리 처리해 낼 수 있을 것이고, 언제까지고 그 자리 나 그 사무실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를 진짜로 괴롭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자존감 하락이었다.
입사 몇 개월 만에 나의 자존감은 평생 겪어본 적이 없을 만큼 바닥을 치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딱히 누군가에게 대놓고 욕을 먹어본 기억은 없다. 누군가에게 욕할 일도 없었고.
그게 그때까지의 나의 정상적인 세계였다.
그런데, 민원대에 앉은 순간부터 나는 말 그대로 욕받이가 되었다. 아무나 들어와서 기분대로 내질러도 아무 말도 아니 죄송합니다, 부터 시전해야 하는 자리.
내가 일을 잘못 처리해서도 아니고, 그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자기가 제일 급한데 먼저 처리해주지 않는다고, 웃는 얼굴이 맘에 안 든다고, 아니면 그냥 자기 기분이 나쁘다고 막무가내로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다.
제일 처음 들은 욕은 "너 같은 X이 국민학교는 나왔냐"는 말이었는데 너무 당황한 나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했다. "네, 대학교까지는 어찌어찌 나왔습니다만." 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속상했을까.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은 욕은, 약간 술이 된 한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상욕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그는 쉴 새 없이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차마 듣고 있기 힘든 것들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을 어떻게 해버리겠다고 하는 통에 처음엔 덜컥 겁이 났다. 다들 경찰을 불러야 하나 당장 뛰어나가야 하나 눈치만 보고 있는데, 짬밥 좀 먹었다고 이내 상황파악이 됐다. 가만히 듣고 보니 진짜 누굴 해치겠다는 게 아니라 원래 말투 자체가 그런 듯했다. 나는 혹시나 소란이 일까 살살 구슬려가며 재빨리 필요한 서류를 떼주고 얼른 그를 내보냈다. 나가면서도 몇 번을 다시 돌아서며 욕을 내뱉던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사무실 내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 대해 살짝 말하자면 대단하게 내세울 만한 구석은 없어도 성실한 편으로, 공부도 사회에의 자립도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남에게 싫은 소리 잘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며 나에겐 나 나름대로의 프라이드가 있었다. 웹디자이너로 일할 때도 프로젝트가 잘못되어 윗선에 깨질지언정 자존감이 깨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몇 달 사이에 나는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온갖 욕을 먹으면서 스스로를 전혀 방어하지 못한 상태에서 점점 멘탈이 깨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보람이나 사명감은 없고, 그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그만두기도 쉽지 않았다. 일 년 남짓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 놓고 일 년도 안되어 그만둔다는 게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 마뜩잖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라 책임감마저 느꼈다. 게다가 나의 합격 소식에 너무도 기뻐하시던 양가 부모님께는 뭐라고 한단 말인가.
무엇보다 다시 도망치는 것 같아 싫었다. 웹디 5년 차에 들며 빠진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나이 서른에 마침맞게 결혼이란 제도로 달아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공직의 실상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디로 도망친다 한들 그곳은 또 다른 피난처가 될 뿐이니까.
그렇게 몇 달을 더 견뎠다. 그러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던 어느 저녁, 퇴근한 신랑을 붙잡고 더는 안 되겠다고 이제는 그만 퇴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에겐 너무 맞지 않는 일이라 평생 할 자신이 없었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다행히 신랑은 힘들면 그만두라고 선선히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십년지기 신랑의 든든한 위로를 받으며 나는 조금만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만두는 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지금 생각하면, 그때라도 그만뒀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