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보장이라는 계륵.

보험은 쉽게 깨는 게 아니다.

by 솜니오


공무원 탈출은 지능순?



요즘 공무원끼리 하는 말 중에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있다.

웃픈 현실이지만 이십 년쯤 전에도 그와 비슷한 결의 말이 있었다. 공직 생활 3년이 지나면 정년 때까지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공무원은 공무원법으로 신분보장이 된다. 형의 선고나 징계, 법에서 정한 사유가 아니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휴직, 강임, 면직이 불가하다. 한마디로 시장이라도 함부로 나를 자를 수 없다는. 그런 이유로 마음속으로는 의원면직(공무원 본인의 청원에 따른 면직처분)을 꿈꾸면서도 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탓에 정년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실상 공직에서의 업무 경력은 사회에 나와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받기가 힘들다. 아무 데도 써먹을 데가 없는 경력. 그러니 어중간하게 퇴사를 하게 되면 특출 난 능력이 있지 않는 한, 마땅히 다른 이직처를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설사 다른 대안이 있다 해도 퇴사 결정은 쉽지 않다. 공시를 준비하며 들어간 금전적 시간적 기회비용도 생각날 것이고, 주변(특히 부모님)의 만류 때문에라도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여기가 본인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루라도 더 어릴 때 퇴직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곳으로 이직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은, 어디든 그곳이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어서 빨리 다른 길을 알아보라는 경험자들의 조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앞서 이야기한 바처럼 나 또한 입사 초기부터 내 성향이 공직과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망설이고 재다 퇴사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미 삼십 중반으로 향해 가는 나이에 다시 다른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도전한다는 게 쉽잖아 어떻게든 공직에 나를 맞춰보려고 헛된 노력을 계속 이어가던 때문이었다.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각종 휴직 제도이다. 그중에도 육아휴직은 한 아이당 3년씩 보장이 된다. 우리는 두 아이를 계획 중이었으니 최대 6년까지도 휴직이 가능했다(비록 한 아이당 최초 1년을 제외한 기간은 무급휴직이지만 그게 얼만가!).


공직 생활 2년 차로 넘어가며 마침내 우리에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가 왔다.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입사 후 임신을 계획한 지 일 년이 넘어가도록 소식이 없어 걱정을 하던 차였다. 늦은 결혼에 이은 나의 공무원 공부 탓에 양가의 걱정이 적지 않았다. 서른넷의 첫 아이. 우리에게 와준 소중한 생명을 맞을 준비를 하며 나는 퇴사에 대한 결정은 조금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래, 힘들게 들어왔는데 이왕 들어온 거 최대한 공직의 장점을 누리자. 일단은 육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고, 퇴사에 대해서는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런데 그것이 영원히 나의 발목을 잡아버린 꼴이 되었다.




일 년 반의 휴직 뒤 복직. 나는 다른 동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물론 그곳도 적잖이 바쁜 곳이었지만, 첫 발령지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법원과 멀어지니 재산상의 문제와 관련된 서류가 아닌 단순 서류 발급이 대부분이라 민원과 다툴 일도 줄었다(재산 상속 문제에 얽힌 서류를 떼러 왔으나 자격이 되지 않던 한 초로의 남자가 떠오른다. 당시 임신 중이었던 내게 서류를 요구하며 고성과 욕설을 해대던 그는 남자직원에게 끌려나갔지만 퇴근시간까지도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하는 수 없이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갔지만 한동안 그가 다시 올까 마음을 졸였었다).


새로운 동에서의 일은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언젠가부터 중요한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초조감과 더불어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헛헛함이 떠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 자체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이고, 어떻게 해도 이전 직장에서 느꼈던 크고 작은 성취감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없는 게 괴로웠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안정감이 아니라 일의 의미와 스스로의 성장이라는 걸.



하루종일 무한반복되는 똑같은 작업. 어떤 민원이든 무조건 무한친절만을 강요하는 분위기.


그런 속에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커다란 기계 속 톱니바퀴 모양 영혼 없이 일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하는 일에 보람이나 의미는 물론이고 미래에 대한 비전 같은 것을 찾기 힘든 현실. 그곳에 나의 5·60대를 투영해 보면 볼수록 더 절망적인 기분이 되곤 했다. 여전히 퇴사를 꿈꾸며 하루하루 버티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루하루였다.


그러던 차에 둘째를 임신했다. 어찌어찌 벌써 공직 5년 차. 둘째 출산과 함께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가며 나는 남은 휴직 4년 반을 다 쓰기로 마음먹었다.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더 이상 공직에는 어떤 미련도, 미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육아휴직에 들어간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전업주부로의 삶에 푹 빠졌다. 몰랐는데 나는 살림과 달리 육아에는 제법 소질이 있었다(흐뭇~). 육아가 쉽다는 말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몸도 마음도 고된 일이다. 하지만 그 고됨보다 훨씬 더 큰 보람과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랑 혼자 버느라 늘 빠듯한 살림에 한창 바쁜 신랑 몫까지 도맡으며 남자아이 둘을 키우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지만 나는 행복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육아휴직동안 어렴풋이 휴직의 끝과 동시에 자연스레 공직을 떠나리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휴직이 다 끝나갈 때쯤 생각지도 못한 돌발 변수가 생겨버렸다. 신랑의 입장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서방, 나 휴직 다 끝나가는데 전에 말했듯이 복직 안 할래. 이제 그만둘까 봐."

"뭐? 안돼! 우리 지금 애가 둘인데."

"......."

"여보~, 당신은 우리 집 보험이야. 보험은 함부로 깨는 거 아니랬어~~~."

^^;;;;;


그렇다. 사랑은 변하지 않지만, 상황은 변할 수 있다. 신혼 때는 나만 생각했던 신랑이, 이제는 나만 생각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 누굴 탓하랴.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 알아서 들어간 길인 것을.


그리하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복직한 나는,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다시 민원대를 지키게 되었다. 매일 아침 희미해진 사명감을 그러모아 또 하루를 버티며 여전히 탈출을 꿈꾸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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