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언제나 사람이다.
봄날은 그렇게 오고, 또 간다
사람은 사람이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사람 하나로 따스한 봄날이 될 수도,
사람 하나로 더없이 매서운 겨울이 될 수도 있으니까.
4년 반만의 복직.
그렇게 맘이 반쯤 떠난 상태로 공직에 어설프게 몸을 담근 채 복직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웬걸. 불쑥 출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그렇게 복직이 하기 싫었는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너무 오래 쉰 탓인 듯싶었다. 오로지 아이들에게만 향해 있던 4년 반이었다. 이제 조금 아이들에게서 벗어나고도 싶고, 나를 찾고 싶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나의 직장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마흔 넘은 아줌마를 이제 와서 넙죽 받아줄 곳은 내 직장 밖에는 없으니까.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곳이 좋건 싫건 간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나는 새삼 깨달았다.
그런 연유로 늘 가슴 한구석에 은밀히 품고 있던 퇴사의 꿈은 잠시 접은 채, 처음 공직에 입직할 때의 설렘마저 느끼며 복직을 기다리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어찌나 요상스러운지.....
봄날은 온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이래?
발령 직전 행정과에서 온 전화를 받던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디요? S동 말인가요??
(꾸벅,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동안 멍했다. 나의 새 발령지 S동은 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 동이었다. 민원 적고 일도 깔끔한 편이라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 중 하나였다. 기피지역만 돌다 보니 지레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언감생심 S동이라니.
그날 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밤잠을 설치다 아침 일찍 새 발령지로 향했다. 거리로 치자면 S동이 집과 가장 멀었다. 하지만 거리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공직생활에서의 봄날. 지금도 나는 S동에서의 짧은 시간을 그렇게 추억한다.
하지만 그건 S동이 다른 곳보다 업무 강도가 덜하다던가 진상민원이 적다던가 하는 이유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S동은 직원수가 적은 편이라 전체적으로 속닥한 분위기였다. 동장님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대부분 다 좋은 분들이었는데 특히나 내가 속한 민원계 직원들이 정말 좋았다. 오래 쉰, 나이까지 많은 직원이 복직했는데도 다들 싫은 내색 없이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금방 업무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K계장님을 만났다. 그녀는 내 직속 상사로 내가 공직에서 존경하게 된 첫 공무원이자 나의 공직 롤모델이다. 업무에 있어서는 자부심과 보람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고, 아랫직원과도 늘 격의 없이 지내는 계장님을 보며 나는 공직에서도 얼마든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늦은 나이에 복직해서 승진도 늦고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며 아등바등하는 내가 좀 딱해 보였던 것 같다. 계장님은 실제 이상으로 나의 노력과 능력을 높게 쳐주고 격려해 주었다. 그런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공직에서의 나의 미래를 다시 그려보고 있었다. 그런 미래도 괜찮아 보였다.
계장님이 애써 불어넣어 준 우주적 기운 덕인가. 얼마 뒤 나는 구청으로 영전(榮轉)하게 된다.
이후 의욕적으로 개발하고 추진한 내 시책이 성과를 내며 나는 처음으로 공무원상도 받고 승진까지 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그것이 다 K계장님 덕이라고 믿고 있다.
나의 봄날은 가고.
겉으로 보기에 구청에 올라가 승승장구한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물론 그곳에도 좋은 이들이 있었고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마냥 즐거운 시간만은 아니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그로부터의 반년은 내게 가장 힘든 기억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오직 단 한 사람 때문에.
S동에서 한껏 응원을 받으며 으쌰으쌰 구청 민원계로 향할 때만 해도 나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최선을 다해 한 번 일해보겠다는 의욕으로 가득 찬 채였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계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때문이었다. 그러면 언젠가 K계장님 같은 상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그래서 오버를 했나 보다. 적당히 했어야 했는데.
C는 구청 민원계의 차석으로 내 직속 상사였다. 그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 그리고 나는 그녀보다 나이는 많았을지언정 아랫 직원이었고, 나의 허허실실 하는 성격은 그야말로 우습게 보였던 것 같다.
구청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내년도 개발할 신규시책 제안에 대한 공문이 내려왔는데, 연례적으로 늘상 하는 일로 보통 계에서 형식적으로 하나씩 내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창 의욕이 솟던 나는 그 공문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C가 이미 시책을 하나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업무 시간 외의 시간까지 공을 들여 신규시책을 구상해 냈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나의 시책이 C의 것을 제치고 과의 중점시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이후 함께 근무한 반년동안 그는 내게 무시와 비웃음, 비꼼으로 일관했다.
그동안 나의 멘탈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눈 뜨고 출근하는 게 끔찍했고, 하루하루 버티는 게 지옥 같았다. 나는 공직에서의 미래 대신 다시 퇴사를 꿈꾸게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반년 만에 C가 타 과로 발령이 나며 더 이상 마주칠 일이 없게 되었지만, 반년동안의 가스라이팅은 내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다시 반년 뒤, 나는 승진을 하게 된다.
구청에서의 일 년. 상도 받고 승진도 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은 좋았다. 이내 시들해졌을 뿐.
그건 C 때문만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시책의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계획할 때가, 막상 상을 받을 때보다 더 좋았다. 나는 무언가를 반복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공들여 계속 다듬어가는 게 즐거운 사람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공직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K계장님이 가진 사명감을 가지기 힘들다는 것을. 자신의 업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계장님의 모습을 선망한 것이지 애초부터 공직은 나에겐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내가 진짜 행복해질 일은 무엇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은, 공직이 아닌 다른 것을 꿈꾼다. 여전히 퇴사는 하지 못한 채로.
가끔은 궁금해지기도 한다. C가 없었다면 나의 공직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돌고 돌아 난 다시 여기에 와 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운명처럼.
그래서 지금 나는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