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스럽지 않은 공무원.
이 구역의 아싸는 나.
당신이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저는 관심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싶은 건 당신이 가슴 저리게 동경하는 것이 있는지,
당신 마음속 깊은 바람을 감히 충족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지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사랑을 위해, 꿈을 위해, 그리고 삶이라는 모험을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 MBTI 중 Enfp 성향 중략 -
나의 MBTI는 Enfp이다.
그때그때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이따금 Infp로 나오기도 하는데, 외향/내향만 오갈 뿐 언제 해도 늘 같은 결과다(약간의 조울증 성향이 있는 바, 울증일 때는 Infp, 조증일 때는 enfp가 나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읽다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재기발랄한 활동가 : 살짝 미치면 인생이 즐겁다!
겉보기에는 낙천적이고 명랑한 사차원 같지만 어떤 일에서나 의미를 추구한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풍부하고 호기심이 많아, 예체능계의 창조적인 일이 적합하다. 조직에 소속되거나 남이 내 일에 터치하는 걸 싫어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못 견딘다. 한마디로, 공무원에 가장 맞지 않는 성향인 것이다.
입사 초기에 그것을 인지한 후, 이 조직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싸에 속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더랬다.
공무원 조직이 싫었던 이유 중 하나는, 꽉 막힌 조직문화였다. 주로 It 업계에서 말 그대로 자유롭게 근무하던 내가 공직에서 일하며 처음 든 생각은 답답하다, 였다. 일하는 방식이나 사고도 그랬지만, 복장 하나하나 지적받을 때에는 정말 순수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살짝 흘러내리는 오프숄더 상의는 NO, 안이 비치는 옷도 NO, 짧은 바지도 NO, 표 나는 염색도 NO.
진한 색감의 매니큐어까지 눈치 보이던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이다.
그 답답한 속에서 숨을 쉬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
나는 사람에게서 힘을 받는 사람이었다. 운 좋게도 여러 발령지에서 그런 좋은 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사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누군가는 은근히 욕하고, 또 누군가는 대놓고 주의를 주면서.
공무원스럽다, 란 말이 있다. 입사 초기, 내가 종종 들었던 말이 바로 공무원스럽지 않다, 였다.
튀어서 좋을 것 없는 조직생활에서 자꾸 튀어 보였나 보다. 하지만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도, 승진에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닌 나는 그때그때 지적받은 것은 지키되 내 개성을 억지로 누르진 않았다. 나는 나 자체로 인정받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모습이 썩 달가워 보이진 않았으리라.
지금도 공무원스럽다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획일적으로 공무원 전체를 몰개성적이고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이 조직에 동화되어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낀다. 굳이 피곤하게 부딪히기 싫으니까 적당히 맞춰가자는 생각.
아, 좀 공무원스러웠나(긁적).
나의 아싸 여정기.
17년 간의 공직생활 중.
육아휴직 6년. 3년의 시간선택제 전환 근무. 가족돌봄휴직 1년. 그리고 현재 질병휴직 중.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그야말로 간신히 이 직업을 버텨오고 있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그런 까닭에 공직의 꽃이라는 7급이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민원 업무를 전전하며 어설프게 몸을 담근 채였다.
제도는 있으되 대부분 일, 이년씩만 쓰던 육아휴직을 두 번에 나눠 총 6년을 다 썼다. 뿐만 아니라 법 개정으로 새로운 제도가 생길 때마다 나는 마치 얼리어답터인 양 제도들을 먼저 활용했다. 시간선택제 전환 근무, 가족돌봄휴직 등등.
어쩔 수 없이 회사에선 이런저런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승진은 안 할 거야? 남들도 애들 다 키우는데 너만 굳이 왜?
하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제도들 덕에 나는 양가의 도움 없이 아이들을 키우고, 여전히 공직에서 버티고 있다. 아마 그런 제도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미 퇴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침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개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끌며 회사로 향하거나.
공무원 17년 차.
지금 나의 목표는 20년을 채우는 것이다. 정년퇴직은 못해도 적어도 명예퇴직까지는 조금 더 버텨볼 참이다. 아직은 한창 더 돈 들어갈 일이 많은 아이 둘이 있고, 남은 시간 공직에서의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아싸 여정기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