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

인간은 자기의 운명을 창조하는 것이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_비르만

by 솜니오



마흔 넘은 나이에 덜컥 가슴에 들어와 버린 꿈 때문에 나는 인생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오로지 글을 쓰며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만이 가슴속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마흔 즈음부터 나는 여러 가지로 소진된 채 이따금 알 수 없는 공허감에 시달렸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잊고 지내던 것이, 아이들이 크고 손이 조금 덜 가게 되자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거나 온갖 유명하다는 강연을 섭렵했다. 어떻게든 고단한 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모두 다 임시방편이었다. 그렇게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일상에 지쳐 허덕이고 있을 때, 기적처럼 나를 찾아온 것이 소설가라는 꿈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가슴을 두근대게 만든 꿈에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호기롭게 3개년 퇴사 계획을 짜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곧 다가올 인사발령 시즌에 승진을 해서 동으로 내려간다.

2. 동에서 근무하며 상황을 봐서 자기계발휴직에 들어간다.

3. 일 년의 휴직동안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배워 기본 실력을 쌓는다(일 년 정도 정말 열심히 노력하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를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4. 복직 후 2년간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등단을 하여 2022년에는 퇴직, 전업작가가 된다.


와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계획이 아닐 수 없다. ㅜㅜ


앞서 말했지만, enfp인 나는 즉흥적이고 한번 어떤 것에 혹하면 잘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얼마 가지 않아 다른 것에도 시선이 돌아간다는 것. 그런 탓에 초반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하나 금방 다른 데로 빠져버려 진척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잠깐 끌어 올랐단 금방 식어버린 일이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글에 대한 태도는 좀 달랐다. 그것은 처음부터 일시적인 호기심을 뛰어넘어 글이야말로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나의 소명이라고 여기게 되었으니까. 나는 작가란 업을 천직으로 삼아 평생 묵묵히 글을 쓰며 살아가다 고요히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꿈이 생기자마자 나는 지인들에게 나의 새 꿈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를 잘 아는 친한 동생 하나는, 이 언니 또 뚱딴지같은 소리 한다며 타박을 했다(지금 생각해 봐도 A형 다운 그녀의 현실적인 충고가 당연하지 않은가! 이따금 땅 위로 둥둥 떠다니는 내가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어깨를 지그시 눌러주는 그녀가 있기에 나는 아직 지상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와는 또 다르게 나를 지지해 준 이들이 있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에 홍조를 띤 채 며칠이고 꿈꾸듯 이야기하는 나에게 선뜻 노트북을 사주며 격려해 준 신랑. 놀아달라고 조르다가도 엄마 글 쓴다고 하면 꾹 참고 기다려준 착하고 이쁜 아들들. 내가 하는 일이면 그게 무어든 늘 응원해 주는 나의 소울메이트 내 동생. 바쁜 업무 중에도 민망하기 그지없는 내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주는 나의 첫 독자 십년지기 라라언니. 그런 많은 이들의 성원 덕에 5년이 지난 현재도 나는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나는 글쓰기를 어디서 어떻게 배우는지, 얼마나 배우고 노력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쓰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마음만 앞선 채 초단기의 계획을 세워놓고 말 그대로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종일 근무 뒤,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며 글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었다. 타고난 저질체력인 나는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에 같이 잠이 들어야 다음날 출근이 가능했다. 아이를 재우고 밤에 글을 쓴다든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글을 쓴다든가 하는 일은 내게 있어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내겐 휴직이 필요했다.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운 좋게 계획대로 승진을 하고 동 민원계로 발령받은 나는 두세 달이 지나면서부터 플랜을 실행할 초석을 깔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공부할 온라인 글쓰기 강좌도 찾아놓고 계획도 다 세워두었다.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다음 인사 시즌에 휴직에 들어가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본격적으로 휴직을 준비하기 위해 행정과에 관련 서류를 문의하던 나는 순간 망연자실해졌다. "주사님, 저희 시는 아직 자기계발휴직을 시행하지 않습니다. 당분간 계획도 없고요." 아뿔싸, 혼자 꿈에 취해 너무 들뜬 나머지 그것까지는 진즉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그날 저녁, 글쓰기 강좌를 수강취소한 뒤 신랑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가라앉았다가도 금방 또 튀어 오른다는 것 아닌가.


다음날부터 나는 나의 3개년 퇴사 계획을 급선회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하고자 한다면 길이야 어디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금방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시간선택제 전환 근무.

휴직에 대한 차선책으로 그즈음 막 시행되기 시작한 시간선택제 전환 신청을 하기로 했다. 시간선택제 전환 근무란, 보통 1년씩 전환 계약을 해서 정해진 시간만큼만 근무하는 제도이다. 주로 오전근무나 오후근무를 하는 데,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월급도 딱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시선제 전환은 아직 시행된 지 얼마 안 된 제도였다. 우리 동에서 최초임은 물론이고, 전 동에서도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한 정도. 당연히 나의 시선제 전환에 대한 시선이 고울 수 없었다. 다들 굳이? 하는 표정을 애써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시선제 전환으로 인한 빈자리에 대체인력까지 배치되는 지라 동장님의 승인이 떨어졌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시선제를 하는 내내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들을 견뎌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3년 연속 나는 시선제 전환 근무를 했다. 그 사이 여러 동에 시선제가 늘어나며 요즘엔 딱히 유별난 일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누구도 반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때문에 매년 시선제 연장을 할 때마다 돌아오는 걱정 섞인 시선과 회유(?) 등이 있었지만, 나만의 계획이 있었기에 꿋꿋이 계약을 연장했다.


그. 러. 나 그 기간 동안 계획대로 글이 잘 써졌느냐 하면, 그렇다고 말하기는 또 어려울 것 같다.


처음 시선제 전환을 하며 나는 오후 시간을 온전히 글을 쓰는 데 할애할 생각으로 한껏 들떴다. 한데 실상은 생각과는 좀 달랐다. 4시간 근무를 줄였으니 4시간이 고스란히 보장될 거란 생각은 그야말로 착각이었다. 오전근무 후 퇴근하고 나서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아이 간식을 먹이고 학원을 보내고 나면 첫째가 하교했고, 집안일을 잠깐 하고 돌아서면 저녁이었다. 종일 근무를 할 때보다는 훨씬 여유롭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었지만, 글을 쓸 시간은 크게 늘지 않았다.


그러다 이듬해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들은 몇 달이나 학교를 가지 못한 채 온종일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만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내가 시선제로 전환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양가의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대로 방치되었을 테니까. 마침맞게 그 시기에 시선제를 하며 아이를 돌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하지만 집에서 종일 돌봄을 하는 통에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졌다.




그런 속에서 나의 글쓰기를 구제해 주었던 것이 바로 토요일 4시간.


토요일 4시간. 여름휴가 중 잠깐 들른 도서관에서 우연히 읽게 된 책의 제목이다.

주중에는 바쁜 업무와 일상에 치여 틈을 내기 어려운 현대인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토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네 시간을 고스란히 투자하라는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건 글 쓸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고민하던 당시의 내게 딱 들어맞는 해법이었다.


이후 토요일 오전만은 어떻게든 지키려 애썼다. 동네의 노부부가 운영하는 한적한 커피숍의 2층은 토요일 오전이면 늘 내 차지였다. 서너 시간 죽어라고 글을 쓰다 오후 한두 시쯤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에야 나는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주말 아침 가슴에 노트북과 꿈을 안은 채 카페로 향하던 그 순간, 내 가슴은 얼마나 설레었던가.


그렇게 2년 여를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생각과 달리 눈에 보이는 성과는 금방 나오지 않았다(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ㅠ).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꿈만 저만치 앞서갈 뿐, 실력은 별반 늘지 않고 계획했던 시간은 점점 다가오면서 나는 자꾸만 조급해지고 있었다.


언제쯤 온종일 글만 쓸 수 있을까?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글만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마음이 온통 타들어가고 있는 사이 2021년이 왔다. 무어든 결과를 내고, 결단을 내려할 할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이제까지와 달리 기대보다는 초조함과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로 한순간에 무너졌던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하며 자산시장에 광풍이 불어왔다. 부동산. 주식. 코인.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일상을 치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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