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 이야기.

내 속엔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아이가 있다.

by 솜니오



이따금 뜬금없이 그때의 감각이 생생히 되살아나는 때가 있다. 무심코 떠올린 작은 걱정거리가 순식간에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덮쳐오던 기억들.
다행히 이제 나는 그 위태위태하던 절벽에서 이만큼쯤 떨어져 있다. 요즘은 그 일이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처럼 여겨지도 한다. 방에 불을 끈 채 혼자서 잠을 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꼭 쥐고 있는 손아귀의 힘을 뺄 수는 없다. 처음 내게 왔던 때처럼 그것은 나의 평범한 일상에 언제든 다시 손을 뻗어올지도 모르니까.






이후 나는 남아있던 다른 주식들까지 모두 처분한 뒤 다시는 손을 대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값비싼(금전적이 아닌 정신적인) 대가를 치르고서야 나는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나는 한동안 방에 불을 끄지도, 잠을 자지도,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어떤 두려움과 불안이 가슴속에 가득 들어차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 신랑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신랑은 다 그렇게 배우는 거라며 괜찮다고 토닥여줬지만, 그는 나의 손실금액만큼이나 나의 불안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다 별 거 아니라고.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두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두려움의 대상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 더 초조했다. 그러는 사이 불안은 사방팔방으로 뻗쳐나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굣길에 아이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신랑이 운전 중에 사고가 나는 건 않을까?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온갖 말도 안 되는 상상들이 펼쳐지며 나를 괴롭게 했다. 세상의 모든 불안을 한꺼번에 다 떠안고 있는 듯한 기분.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언젠지 모를 어느 순간에 퓨즈가 끊어지듯 머릿속의 어떤 선이 끊어지고 나면, 나는 다시는 이전의 나로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끔찍하리만치 확실한 예감.


그때가 되면 늦을 것이다. 그전에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날부터 나는 필사적으로 사이트와 카페를 뒤져 신경정신과 몇 군데를 찾아냈다. 이러다 진짜 큰일이 날 것만 같아서, 그러면 정말 돌이키지 못할 거 같아서 너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나는 신랑을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상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나의 상태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병원을 찾아두고 나니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곳엔 전문가들이 있고, 언제든 필요할 때 달려가면 그들이 도와줄 테니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종일 장대비가 쏟아지며 낮인데도 어둑어둑한 토요일 오후, 가만히 비에 젖은 창밖의 풍경을 내다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숨이 막혀왔다. 순식간에 불안이 전신을 감싸며 나는 그만 정신이 아찔해졌다. 어쩔 줄 몰라하며 신랑에게로 달려갔지만 일주일 내도록 바빴던 신랑은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신랑을 깨울 수도, 그렇다고 신랑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나는 다급히 미리 찾아두었던 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다른 곳에도 전화를 돌렸지만 주말이라 이미 모두 문을 닫은 뒤였다.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월요일이 올 때까지는커녕 당장 머릿속에서 뭔가가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곳에 연결이 됐다. 나는 가뿐 숨을 몰아쉬며 지금 진료가 가능한지 물었다. 하지만 진료를 받으려면 미리 예약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 때나 내가 필요할 때 찾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전화를 끊은 나는 아이들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긴 뒤 집을 나섰다. 뭐라도 해야 했다. 이대로는 목구멍까지 들어찬 불안이 나를 다 집어삼키고 말 것 같았다. 세차게 내리치는 빗살을 헤치고 집 앞 약국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직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나의 상태를 설명하고 신경안정제 같은 것이 없는지 물었다. 하지만 처방 없이는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약국을 나와 다시 핸드폰을 뒤졌다. 다행히 근처에 아직 진료 중인 내과가 하나 있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운 좋게도 거기서 원하던 약을 구할 수 있었다. 신경안정제. 난생처음 그것을 손에 받아 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약국을 나섰다. 그런 뒤 집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약은 효과가 있었고 나는 그 주말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자마자 나는 신경정신과에 전화예약을 했다.

그러나 막상 예약날짜가 다가오자 병원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인터넷을 뒤져 나의 증상에 대해 인지하고 지금 내게 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불안은 여전했기에 나는 예약을 조금 뒤로 연기해 두었다. 일종의 안전망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예약을 미루었다. 결국 병원은 가지 못했다. 그동안 나의 상태는 들쭉날쭉했다. 좀 덜한 것 같다가도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를라치면 이내 숨이 막혀왔다. 그렇게 쳇바퀴 돌듯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신랑이 회사의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대해 알려주었다.






신랑 회사에는 매년 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심리 상담을 해주는 복지 혜택이 있다. 첫 육아로 서툴렀던 시절 큰 아이와 함께 몇 번 이용해 본 적이 있었는데, 전문가의 조언과 코칭은 아이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에 적잖은 도움이 되었다. 그 프로그램을 나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컴퓨터에서 가까운 심리상담센터를 뒤져 상담 신청을 예약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근무를 마치고 센터로 향하려니 다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하지만 나는 주저하는 대신 입술을 질끈 물며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나 혼자만의 몸이 아니었다. 신랑이 있고,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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