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눈물.

나를 찾아가는 여정

by 솜니오


그렇게 세 번의 마법 같은 순간이 나를 찾아왔다.



이대로는 정말 죽을 것만 같은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심리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릴 때만 해도 사실 크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절박했을 뿐.


그러나 두 달 남짓의 상담을 거치며 나의 증상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좋아지고 있었다. 매 회기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집요하게 나란 존재를 파헤치는 과정 속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그날은 4회기째 상담을 마친 주의 주말로 나는 느지막이 아침을 먹은 후 소파에 드러누워 영화를 감상하던 중이었다. 한 달여간의 상담을 통해 끝도 없이 나락으로만 떨어져 내릴 것만 같던 불안감이 조금 진정된 터라 그만 방심했던 걸까.


주인공들이 어두운 창고 안에 고립된 채 쫓기는 장면을 한창 보고 있던 도중, 너무 과몰입해버린 것 같다. 한순간 화면 속 어둠이 시야로 돌진해오는가 싶더니 돌연 눈앞이 컴컴해지고 숨이 막혀왔다. 나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다급하게 신랑을 찾았다.


막혀오는 숨을 억지로 몰아쉬며 가까스로 주말을 버티고 맞은 상담날, 주말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나는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때의 공포와 불안이 컸던 만큼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버린 건 아닐까 너무 두려웠다.


우는 내게 티슈를 건네준 선생님은 내가 울음을 다 토해낼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내가 조금 진정되자 모든 게 나아가는 과정이라며 나를 안심시킨 그녀는 그날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씩 나열하도록 주문했다.


나는 천천히 그날의 감정을 되짚었다.

방금 감정을 다 내뿜어서일까, 아니면 선생님이 손을 꼭 잡아줘서일까.

되새기기조차 두렵던 기억을 나는 한결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이윽고 내가 그것을 끝내고 나자 그녀가 말했다.

이제 내가 나의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들과 정면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된 거라고.

내가 나의 감정들을 알아내고 받아들였으니 그것을 이겨낼 힘 또한 내게 있다고.


과연 정말 그럴까?

우울과 초조에서 시작해 불안과 극심한 공포로 이어져 생긴 공황.

나는 이제야 그것들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 걸까.


곧이어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 이제 눈을 감고 그것들을 마음속 강물 위로 던져 버리라고.


나는 그 말대로 눈을 꼭 감고 갓 이름을 붙인 그 감정들을 흐르는 강물 위로 차례차례 던져버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착한 어린아이처럼 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다 괜찮아질 거라는 그 말 하나에 기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그날 오후, 아이 간식을 챙기던 나는 문득 숨쉬기가 훨씬 편해져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아침까지만도 숨도 못 쉴 만큼 치받던 불안과 두려움이 정말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마치 강물과 함께 저 멀리로 흘러가 버린 것처럼.







상담 회기가 지날수록 나는 차차 안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언제 다시 터져 나올지 모를 발작처럼 가슴 언저리가 간질대는 것은 여전했다.



상담 7회 차.


우리는 상담시간 내내 문답을 주고받으며 끈질기게 '나'에 대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마침내 나를 괴롭히던 주된(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였을지도 모를) 원인을 찾아냈다.


그것은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실제의 나와 외부로 보여주어야 하는 나 사이의 갭으로 인해 내가 혼란을 겪고 있다는 거였다.


여태껏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나는 보헤미안적 삶을 동경하는, 현실감도 조금 부족하고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집안의 장녀로 어릴 때부터 내게 주어진 역할은 그와는 많이 달랐다. 착하고 듬직한 장녀로서의 기대와 동생들에 대한 책임감. 나는 그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수행해 냈고 딱히 그것이 나를 힘겹게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나는 몰랐지만 사실은 버거웠던 것 같다(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생각 자체를 묵살해 왔을 뿐).


그리고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린 지금, 그 시절의 책임감과는 또 다른 책임이 나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다.



나의 천성과 타인의 기대치 사이의 괴리.


어떻게든 그것을 끼워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었던 걸까? 선생님이 그 모든 것들을 내 앞으로 콕 끄집어낸 그때에서야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걸 몰랐구나. 그래서.... 그렇게 힘들었던 거구나.


상담을 마치고 나오다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바람으로 선생님을 안아버렸다. 다 이해한다는 듯 가만히 토닥여주는 선생님께 연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발걸음이 사뿐했다. 그동안 혼자 아무리 돌아봐도 알 수 없던 것들이 그제야 눈앞에서 선명해지고 있었다.


다음 상담까지의 일주일 동안 그 주의 상담내용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간간이 가슴 언저리에서 꿈틀대는 감정들을 조금은 고요해진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하면서.






상담 8회 차.


센터에 발을 들이자 실내를 흐르는 고요한 음악이 나를 반겼다. 그것이 어찌나 좋던지 나는 선생님을 보자마자 오늘 센터에서 들리는 음악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입가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음악은 늘 흐르고 있었어요.


아......


상담실로 들어서자 선생님은 새로운 종이 한 장을 내미셨고, 우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탐구했다.


나를 보는 방법은 많고도 많았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나 또한 그만큼 많았다.


그것은 얼마나 신기한 경험인지.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던지. 그런 나를 선생님은 어쩌면 이토록 세세히 잘 알아봐 주시는지.


철학 토론 같기도, 강의 같기도 한 그 한 시간이 너무 즐거워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간신히 떼며 센터를 나왔다. 이제 상담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한 시간 동안 여러 가지로 고조되었던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솟구쳤다.


여기 와서 세 번째의 눈물.


매 순간의 눈물이 의미가 달랐지만 이번 눈물은 이전의 두 번의 눈물과는 또 다른 의미의 눈물이었다.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하던 나인데, 그런 나를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온전히 공감받은 데 대한 감격의 눈물.


그래, 참 힘들었어. 그래도 선생님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드리며 센터를 나섰다.






그렇게 눈물을 닦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앞 유리 위로 펼쳐진 하늘을 오랜만에 올려다보았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이 어찌나 고운지, 감탄을 연발하다 문득 며칠 전 우편으로 보낸 원고 생각에 후후 웃음이 났다. 그걸 쓰는 동안 얼마나 힘들고, 또 얼마나 좋았던가. 행복감이 밀려들며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소소한 일상의 기쁨. 이런 잔잔한 행복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는 새삼 느꼈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잃고 난 뒤에야 알게 되는 건지.


나는 다시 한껏 숨을 들이켰다 길게 후- 뱉었다. 숨 쉴 때마다 명치께에 늘 아릿하게 뭉쳐있던 것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가 마구마구 하고 싶었는데, 막상 도착할 즈음에는 몸이 노곤해져 있었다. 이런 기분 좋은 피로감은 또 얼마만인지. 겉옷만 벗어던지고 침대 위로 털썩 드러눕자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부드러운 파도처럼 잠이 밀려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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