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가는 길.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by 솜니오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

<만델라>




센터에서의 상담이 거의 끝나갈 즈음 정식으로 MBTI 검사를 했다. 갓 공황에서 벗어나고 있던 때라 어렴풋이 Infp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의외로 결과는 Enfp.



집에 돌아와 결과지를 읽어본다.


쓸데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 침식되어 버리면 벗어나기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구나. 올해의 내가 딱 그 상태라 그전에는 와닿지 않았던 말들이 뇌리에 딱 꽂힌다.


대신 원래 긍정적인 성향이라 또 금방 벗어날 수도 있다.

이 말에 희망을 걸어보지만 역시 마음이 조금 착잡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 나의 장단점을 꼼꼼히 읽으며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보려 애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상담을 다니며 나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잘 알지 못한다.


우선 나를 정복하리라. 그러면 이 길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리라.


그러다 별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MBTI를 검색해 본다. 마우스를 굴리다 우연히 나온 개그맨 강유미의 MBTI별 상황극 Infp 편을 재생한다.


음........ (. _ . );;


괜히 봤다. 조금은 과장된 Infp 주인공의 소심함에 절로 기분이 가라앉는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못하고, 그저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놓고 혼자서 힘들어하는 모습.


고쳐야 해. 고쳐야 해. 머리를 꽁꽁 찧다 뭔가 놓친 것 같은 생각에 이번엔 Enfp 편을 돌려본다.


아....... (✪o✪)


거기엔 물론 조금 소심해서 혼자 상처받기도 하지만, 어디서든 뜬금없는 상상 속에 잘 빠지기도 하고, 기분이 나빴다가도 먹는 거 하나에 금방 기운을 회복하는 완전 허당 스타일의 캐릭터가 보인다.


돌연 나는 뭔가가 그리워진다. 어딘가 익숙하고도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기분.

그때, 가슴 한구석에 볕이라도 들듯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딸깍, 소리와 함께 버튼이 켜진다.


찾았다!!!


그건,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이따금 감정의 기복이 있지만 대체로 기분 좋고,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하고, 무엇에든 호기심이 솟구치는, 허허실실... 인생의 무게가 늘 조금은 가볍던 나의 모습.


어쩌다...... 잃어버렸을까?







연초 시작된 공황으로 여전히 아등바등 용을 쓰는 채다.


어떻게든 이겨내려 책도 읽고 강연도 듣고 상담도 받으며 여러 가지로 애를 쓰고는 있지만, 한번 끌려든 깊은 우물 속에서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조금씩 빛을 향해 다가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돌아보면 언제고 그림자처럼 따라붙고야 마는 불안.


그러다 보니 이전의 내 모습, 내 감정 같은 것들을 잘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까맣게 그을려버린 앨범처럼 아무리 노려보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 얼른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은데, 정작 제 모습조차 떠올릴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목적지도 모르면서 핸들을 붙잡고 끙끙대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런데 딸깍 소리와 함께 머릿속 버튼이 켜지는 순간,

그동안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수요일만 되어도 주말이 다가온다고 들뜨던. 완전히 지쳤다가도 맛있는 식사 한 끼면 마냥 행복해지던.

하늘이 맑아서, 구름 모양이 특이해서, 바람에 쉭쉭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나무들이 정겨워서.

그처럼 별거 아닌 일상에 유난스레 꺅꺅 소리를 내지르며 행복해하던, 늘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땅 위를 살짝 떠다니듯 지내던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얼마나 애타게 찾아헤맸던가!



이제야 나는 목적지를 찾았다.


여전히 희미하지만 나에게로 향하는 길이 저기 어디쯤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본래의 '나'의 모습을 찾았으니 이제 더 헤매지 말고 곧장 나를 향해 가야지. 한 발 한 발 오래 걸린 만큼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겠다.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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