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나는 스스로를 망가져버린 인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이미 벌어져버린 일이었다.
보통 밤 열시면 아이들과 잠자리에 든다. 저질도 그런 저질체력이 없는 지라 남들 다 보는 밤 열 시 드라마는 이미 포기한 지 십 년도 더 되었고, 어쩌다 주말에 심야영화라도 하나 보고 난 다음날이면 여지없이 몸살과 편두통에 시달린다. 가끔 회식이나 모임이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래야 일 년에 한두 번. 웬만하면 취침 시각을 어기지 않는다.
그런 나이지만 일 년에 딱 하루, 밤늦도록 시계를 응시하며 버티는 날이 있다.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의 12시. 새해 타종식을 기다릴 때이다. 보신각 앞으로 달려가서 사람들과 함께할 수는 수는 없지만,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는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2020년 12월 31일. 그 밤에도 나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제야의 종 타종행사는 취소되었지만 미리 사전제작된 영상이 중계되고 있었다. 잠시 후 카운트다운에 이은 종소리가 거실에 낮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왜일까. 그 순간 새해에 대한 기대 대신 뜬금없이 가슴이 싸해온 것은.
그날밤 나는 알 수 없는 묘한 불안감으로 뒤척이며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미 그 순간에 다가올 해의 운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나를 괴롭히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뒷산 너머로 신년의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나의 3개년 계획도 마지막 해로 진입했다. 하지만 호기로왔던 시작과는 달리 새해로 접어들며 나는 자꾸만 초조해지고 있었다. 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쫓기는 듯한 기분에 시달리며 정작 글에는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를 쫓고 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너무도 촉박한 계획을 세워두고선 나는 2년 내도록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누구도 날 보고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소설을 써야 한다고 강요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한 것은 내가 아닌가.
이제는 현실자각타임이다.
현실은 소설 같지 않다. 꿈을 꾸는 건 자유지만 간절히 꿈꾼다고 반드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의 계획은 너무 성급했다. 글을 2년 넘게 써보고 나서야 뒤늦게 그것을 깨달았다.
무어라도 해낼 수 있을 듯 가슴속에 솟구치는 열정만이 전부가 아님을, 글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음을, 그리고 나는 정말 어떤 베이스도 없이 완전 맨땅에서 시작한 것임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한을 바꿀 생각은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더 채찍질했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달리는 방법밖에 모르는 고장 난 기관차에 다름없었다. 조금 더 열심히, 더 열의를 다해 노력하면 가까운 시일 내 제 입에 풀칠 정도는 하는 전업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보람도 의미도 없이 돈 때문에 목이 매여있는 회사 대신 진정 하고픈 일을 하며 밥벌이는 하는 것. 내가 바라던 건,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이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흔들려 버린 것이.
돈이야 당연히 많으면 좋겠지만 살아오며 크게 돈에 연연하며 살아오진 않았다. 형편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어릴 때 형편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한, 나는 늘 그때보다 풍족했다. 신랑과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한 살림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마냥 기쁘고, 주위에 산책할 수 있는 공원과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로또를 주야장천 사던 시절도 잠시 있었지만 그것 또한 반은 재미였다.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인 딱 그 정도.
그러던 내가 돈에 절실해졌다. 나는 오롯이 글을 쓰고 싶었다. 전업작가가 되어 마음껏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이 있고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고 보니 마음 가는 대로 손쉽게 직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적어도 작가로서의 소소한 수입이나 공모전 당선 같은 최소한의 자격 정도는 갖추어야 떳떳이 퇴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요원하기만 했고, 나는 점점 더 다급해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세상이 돌변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방에서 온통 부동산, 주식, 코인 이야기 같은 것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산시장에 그야말로 광풍이 불어왔다. 결혼 후 십수 년간 묵묵히 저축만 해오던 우리 부부는, 열심히 살아온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이른바 벼락거지란 것이 되어버렸다. 동사무소 주변의 새 아파트들의 가격이 자고 나면 뛰고, 자면 나면 또 뛰고 하는 사이 변두리의 우리 아파트는 꿈틀 몸을 한번 떨다 말았다.
그제야 재테크에 눈을 뜬 신랑은 뒤늦게나마 경제공부와 주식공부에 뛰어들었고, 덩달아 나도 주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미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공부도 할 겸 시작한 것이었고 가지고 있는 여유자금이래 봐야 얼마 되지 않는 것이어서 처음엔 부담이 없었다. 그러나 초심자의 행운(?)을 몇 번 겪으며 그만 생각이 바뀌어버렸다. 멀리 돌아가지 말고 이참에 주식으로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두고 퇴사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게 전업작가로 고정수입을 얻는 것보다 훨씬 쉬울 것 같았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주식으로 먹고살기가 전업작가로 먹고사는 것보다는 쉬울지언정 주식에도 거기에 맞는 적성이 있다는 것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식으로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것도.
주식에서의 수익과 손실에 대한 나의 감각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랐다. 천 원이고 만 원이고 조금만 떨어져도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에 비해 수익에 대한 기쁨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적은 돈이라도 한 번 돈맛을 보게 되면 끊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몇 번 크고 작은 수익으로 돈맛을 알게 되자 주식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당장의 수익에만 급급한 채 오락가락하는 주가를 보며 가슴을 졸이기 일쑤였다. 배당투자를 하며 순간순간의 급등락에 휘둘리지 않는 신랑과는 확연히 다른 패턴. 그때쯤 그만뒀어야 했다.
하지만 미적거리는 사이 초심자의 행운은 끝나고, 당연한 수순대로 한 종목에 대부분의 자금이 물려버렸다. 사실 그래봤자 주식 레슨비라 치고 넘어가면 끝날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러나 본전 생각에 나는 그것을 놓지 못했다. 조금만 기다렸다 손실을 만회하게 되면 처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도 떠난 주가는 돌아오지 않고 나는 점점 더 애가 끓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전전긍긍하며 고민하던 어느 날 밤, 결국 그 일이 터져버렸다.
그밤 나는 자는 아이 옆에서 핸드폰을 쥐고 누운 채 미국주식시장이 열리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장이 열리자마자 주가는 쭉쭉 떨어지기 시작했고,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그래프를 어쩔 줄 몰라하며 보고 있던 그때였다. 철렁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내려앉는가 싶더니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사방의 어둠이 목을 꽉 죄여오는 것 같았다. 겁이 난 나는 다급하게 불을 켠 뒤 억지로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손을 벌벌 떨며 가지고 있던 주식을 다 팔아버렸다. 더는 이 판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두려움에 떨며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만 했다. 마치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숨을 헐떡대며 창밖의 어둠이 방으로 새어 들어올까 겁에 질린 채. 그날부터 방의 불을 끌 수 없었다. 불을 끄는 순간 시커먼 어둠이 전신으로 들이닥치는 공포와 함께 숨이 막혀왔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내 속에 이제까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들어와 버린 것을.